- 영화리뷰

교관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8.10.24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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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화려한 불빛의 90년대 중반의 홍콩의 거리 속 사람은 사람이 그리워 외롭기만 하고, 상처받고 받은 상처는 그대로 흉터가 되는 도시 사람들. 어느 물건이든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어쩌면 물건이 아닌 것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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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입니다.
암호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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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유효기간이 끝나는 날.
물건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관계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걸까.
세상에 유효 기한이 없는 것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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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이 하나씩 구입하는 파인애플캔이 유통기한인 날.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 만우절에서 한 달 뒤인 날.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캔을 구입하는 건 나를 알아가는 것,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캔이듯 내 사랑의 유효기간도 마감하는 날.
유통기한을 지우고 싶다, 유효기간을 없애고 싶다.
유통기한이 다 된 음식은 폐기처분 되는 것이 마땅한 일.
그렇다면 내 기억과 추억도 폐기처분이 되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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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이 남았는데 폐기처분을 한 단 말이에요?
캔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있는 거 알기나 해요?
항의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폐기처분 되어야 하는 유통기한이 다 된 통조림 한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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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월 1일
맛있는 캔 속의 파인애플. 서른 개의 캔을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먹어 치우는 386.
나와 파인애플은 다를 바 없음을. 나의 사랑, 나의 기억, 나의 추억, 미련을 파인애플을 먹어치우듯 없앤다.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없애는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조깅으로 눈물 대신 땀을 흘리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붙들고 하소연하는 386.
개는 인간의 좋은 친구라 했는데 왜 지금은 나의 슬픔을 나눌 수 없는가
.
바에서 만난 레인코드에 선글라스 여인.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는 아이 같은 386.
파인애플을 좋아합니까. 대답 없는 그녀.
5개국어로 물어보는, 파인애플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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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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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을 믿고 싶어 하는 386.
영원한 것은 없다고 알고 있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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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영원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찰나가 모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
386은 그걸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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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와 샐러드 네 접시, 파인애플 서른 통, 접시만 한 햄버거.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공허함을 달랠 수는 없다.
배속의 또 다른 허기, 공동은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조깅으로 눈물 대신 땀을 흘린 386은 감정의 과격 대신 과식을 선택했다.
그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로
.
그녀의 구두를 닦는 일.
더러운 무엇인가를 깨끗하게 닦는 일.
유통기한을 늘이는 일
.
조깅을 하러 가자.
조깅은 감정의 분출을 막는 유일한 방법.
이 번잡한 도시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
새벽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과 집을 나가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간.
공기의 다른 층을 통과하는 시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
조깅 후 운동장을 떠날 때 삐삐를 버리자.
날 찾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때 울리는 비퍼 소리.
그녀의 축하 메시지
.
이 복잡한 도시에 혼자 고립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축하 메시지를 넣어준 이 여자를 나는 잊지 못한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적겠다.
시작하지 않은 관계는 끝나지도 않는다.
더 이상 무언가의 끝을 보기 싫다면 나 역시 시작을 말아야 하는 걸까
.
빗속을, 바를 가득 채우는 주크박스의
Dennis Brown의 Things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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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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