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하루
- 작성일
- 2019.7.14
유럽 도시 기행 1
- 글쓴이
- 유시민 저
생각의길
휴가를 여행지에서 보낸다면 정말 좋겠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만 하고 산다. 지난 봄부터 이렇다할 여행을 간 적이 없다. 무엇보다 집에 걸려 있는 일들을 해결해야 했고 레슨이 늘어서 그 재미로 즐겁게 지냈다. 그러다보니 여름이 오고 아직 여름은 많이 남아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나만은 아닌가보다. 7월은 일이 많으니 8월에 한번 가볍게 다녀 오자는 말만 한다. 그렇다고 이 책처럼 유럽 어디는 아니고 동남아 어디는 더욱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데서 가까운 어디든 갈까 한다. 주변인들 중 G는 파리를 거쳐 영국에서 지내고 있고, S는 아직 파리에서 며칠 보내는 중이다. 다들 행복하게 여행을 만끽하고 있겠지!
유 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1]이 출간을 예고할 때 시의적절하게 나온 것 같아 반가웠다. 작가로써 무지 좋아한다기보다 유럽이 좋고 도시가 좋고 기행이 좋은 것이기에 그리고 분명 내용면에서 유럽의 역사와 문명과 철학이 등장할 것이기에 기대를 한 것이다. 설렘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1권에서 선택한 여행지인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심도있게 전달해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누구나 여행은 가고 여행기를 쓸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써 내려 갈 수 있다. 한 때 지겨운 일상을 뒤로 하고 비현실적인 사진과 관념적인 어휘로 눈과 마음을 적셔주는 여행기들이 등장했었다. 읽고 나면 그냥 꿈꾸는 느낌이었다. 좋기도 하고 때로는 어설프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마음을 달래주었으니 설렘 그 자체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테네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몇 번씩 다녀온 도시들이다. 휴식을 원하는 여행일 경우 이 네 도시는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다. 도시의 개념은 휴식과 상반되기에 그보다 더 느긋하고 평화로운 장소를 선택할 것이다. 이 네 도시들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문명과 역사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장소들이기에 선택된 것이다.
아테네가 '멋지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의 모습이라는 표현은 당장 갱년기가 처음인 나에게 당황스러웠다. 하나의 표현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된 모양이다. 도시 아테네 처럼 한때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을 관리하고 다스리지 못한 채 늙어버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리고 그 허무함을 무엇으로 메꾸며 살아갈까.
찬란했던 문명은 여기저기 찢겨져 나가 볼품없이 현재에 자리하고 있다. 굳이 아테네를 가지 않아도 그리스 문명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치 이집트를 가지 않아도 이집트 문명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공간이 주는 의미를 온 몸으로 체화하고 싶은 본질적 욕망이 아닐까.
여행자는 아테네를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았다. 가능하다면 여행자의 검색으로만 멈추지 말고 또 한 권의 책을 찾아 읽어봄 직하다.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오가 반쯤 무너진 이유도 말해주고 있다. 어머... 그랬구나 하며 학습하는 느낌마저 드는 여행서다. 여행이란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알아가는 삶의 과정인 것 같다. 놀고 먹고 떠들고 관광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에 있는 바티칸을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했던 이야기도 동의가 되었다.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로마에 있는 4대 성당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모습에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신심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안에서 생겨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여행자는 아시시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을 만나면서 바티칸에서의 무거움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시시는 평화롭고 조용하며 프란체스코 성인은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동양과 서양의 중심에 있는, 한때 비잔티움이었고 한때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도시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의 저서 [이스탄불-도시와 기억] 덕분에 찾아갔던 곳이다. 작가인 여행자도 오르한 파묵의 글을 두어편 인용했고 나는 그 의미를 또 한번 새겨 보게 되었다. 더불어 파묵의 책을 다시 펼쳐 볼 생각이다. 이제는 터키라는 나라와 오스만 제국을 구별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유익하다.
이스탄불에 대한 글은 좀 길고 지루했다. 사실 들려 줄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아타튀르크의 의미와 현 정치상황은 역사적 근거에 의해 충분히 숙지되었다. 이스탄불의 풍경은 정말 놀랍다. 살아숨쉬는 도시이지만 옛 영광을 누려 온 메트로폴리탄은 더 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어떠한 언어로도 소통이 안되는 오직 터키어와 바디 랭귀지만 가능한 나라였기에 나에게 이스탄불은 그런 인상이 짙다. 터키어는 안되니까 남은 것은 오직 바디랭귀지뿐...그 당시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그걸로 소통했다.
드디어 파리! 나는 또 파리에 가고 싶어졌다. 올 여름은 안되고 가을에 갈까 겨울에 갈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말았다. 지금 사는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 며칠 날 잡아 떠났을 것이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도시가 바로 파리다. 프랑스라는 나라, 파리라는 도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도무지 우리 개념으로 설명이 안되는 역사성을 가진 나라, 그래서 마음으로만 흠모하는 그런 곳이 된 걸까. 파리라는 도시가 계획된 이야기, 랜드마크 에펠탑이 가진 의미는 꼭 한번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아울러 프랑스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도 따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여행 에세이이지만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여행서이다. 여행정보나 여행의 달콤함을 원하거나 내면의 고민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힐 책이 아니다. 가다보면 어느 새 역사 이야기이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여행은 시작되듯이 글 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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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