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_2020

좋은세상
- 작성일
- 2020.11.23
남들이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
- 글쓴이
- 무옌거 저
쌤앤파커스
지금 착하게 살고 계신가요?
느닷없이 '착함'을 물으니 당황스럽나요.
'착하다'는 것은 '예'라는 대답과, 배려, 희생의 빈도에 비례한 것 같습니다.
살제로 주변을 보면 그런 사람들을 착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착하다'는 말이 '호구'라는 말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에게 착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먼저 착해져야 합니다.
이 책 '남들이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는 남이 아닌 나에게 착해지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위에서 말한 '착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점점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착하기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바로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으로의 변신이죠.
남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듣는 것과 자신에게 착하게 사는 것은 반비례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은 너가 아닌, 그들이 아닌, 바로 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남이 말하는 착함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자신에게 착하기 위한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의 선량함을 먹이로 던져주지 마라.
결국 바보가 되는 쪽은 자신일 테니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끝도 없이 선의를 베풀어 주는 것은 오히려 잘못이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
나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사람만 그렇게 대하면 된다.
누구에게도 상처입히면서까지 남을 만족시킬 의무는 없다.
나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호의를 배풀어서는 안됩니다.
상대방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받은 호의도 '당연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기에도 부족한 인생입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을지라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당연히 여긴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는 진정한 호의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절망한 게으름뱅이'다.
혹시 지금 '절망한 게으름뱅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절망한 것으로도 모자라 게으름벵이까지... 정말 최악이네요.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먼저 스스로 우뚝 설 수 있어야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은 누워있으면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일으킬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선량함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공평함부터 따져야 한다.
만약 상대에게 선량하기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러면서 상대가 은혜를 모른다고 분개하려면 차라리 선량함을 입에 올리지 마라.
남이 힘든 것, 고생스러운 것은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배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도 마라.
'선량함'과 '공평함'.
이 책의 핵심 단어란 생각이 드네요.
쉽게 말하면 'give & take'입니다.
선량함을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공평하게 대했는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공평하지 않으면서 선량함을 요구하는 것, 이것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절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이 그은 인간관계의 경계선을 명확히 알려줄 수 있다.
누군가 나를 함부러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원인은 십중팔구 내가 먼저 선을 제대로 긋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끼는 첫걸음은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거절하는 방식보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제대로 거절하는 법을 배우려면 그저 부단히 연습하고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거절하는 것, 쉽지 않은 것은 저뿐인가요?
그런데 나를 함부러 대하는 사람은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인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선을 그어야 합니다.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이 또한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수많은 실패를 거치겠지요.
그래도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상대를 자신과 똑같이 건강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무조건 통제하려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만을 바란다.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오로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일 뿐,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밖에 없다.
이 글을 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러한 사람이 아니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귀로만 듣고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강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과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구분해야겠습니다.
이 둘의 절충은 또 하나의 숙제가 되겠네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이 상한다면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서로의 다름이 감정싸움의 도화선이 되어선 곤란하다.
예전에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다름이 곧 틀립이였지요.
그래서 많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둘을 올바로 구분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유일한 본성은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이기' 즉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선악이 아니라 '이기'야말로 진정한 본능이라 할 수 있다.
행동의 동기와 목적도 모두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에게 유익을 줄지, 해를 끼칠지는 모두 '이기'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행동과 수단에 불과하다.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 이 본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기'야 말로 '이타'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자신을 이롭게 하는 마음 없이 남을 이롭게 하기란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자신을 이롭게 함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남에게도 진정으로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이 무척 직설적입니다.
내용도 제목 못지않게 직설적입니다.
그래서 쉽게 이해하고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나도 남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선량함'과 '공평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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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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