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리뷰

잠스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8.9.30
[서평]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친밀성의 구조변동
정문수
1. 서 론
남녀 간의 사랑과 애정, 즉 에로티시즘처럼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여 유난히 관심이 넘치는 대화주제도 드물었다. 정신적 사랑의 영원불멸함에서부터 육체적 성애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류사회에서 흥미를 이끄는 이야기 주제로 에로티시즘만한 것이 없다. 왜 사랑과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이토록 특별한 관심 대상이 되었을까?
우선, 에로티시즘은 남녀(혹은 동성) 둘 사이의 친밀성과 상호의존관계를 강화시키며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인류세대를 끊임 없이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에로티시즘에 사회적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결혼과 가족의 형성, 출산 등 다양한 인간의 일생의 특정한 과정과 경로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를 통해 인간들의 삶 자체와 삶에 대한 태도가 규정되면서 사랑의 의미체계가 강화되고 확장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에로티시즘을 사석에서 흥미있는 주제로 즐겨 이야기했으나, 공석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이와 더불어 공사의 영역을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사회학의 딱딱한 학문적 분위기도 에로티시즘과 같은 내밀한 문제를 연구주제로 삼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앤소니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통해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문제시하여, 공적이고 거시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민주화와 대비되어 친밀한 일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인 소통과정의 민주화 과정을 관심있게 살피고 있다. 기든스는 사적 영역에서의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 비슷한 점을 찾는다. 즉, 공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에서 제시되는 민주주의와 사적이고 작은 수준에서 제시되는 에로티시즘은 개인이 각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든스는 공적인 영역에서 마찬가지로 성과 애정이 개입된 친밀한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와 자율성을 서로 인정해야 하며, 친밀한 영역에서 상호 관계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통해서만 자아의 미래를 성찰적으로 기획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2. 본 론
「기든스」는 낭만, 순수, 진실, 열정 등 사랑에 필요한 덕목으로 생각되어왔던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의 관계 양식을 재해석하려 시도한다. 특히 현대 이전의 ‘에로티시즘’적 사랑이라는 관념이 사회적 재생산의 필요에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현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밟고 있다. 기존에는 ‘에로티시즘’과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재생산의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고 여겼다. 즉, 전통적으로 새로 남편과 아내가 된 남성과 여성은 진실한 사랑이란 한번 발견되면 영원해야 한다는 관념에 억눌리면서 상호 간의 친밀한 감정이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이러한 관념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재생산을 담당하는 성별 분업이 남편의 임노동과 아내의 가사노동을 통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의 형태는 과거에는 사회적 재생산에 종속되었으나,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을 통해 피임과 낙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동성애, 양성애 등 기존에는 억눌려왔거나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랑의 관계가 사회의 전면에 등장되면서 개념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다른 여러 조건에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순수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로 설정된 것이다. 「기든스」는 이처럼 생물학적 재생산의 필요에서 해방된 탈중심화된 섹슈얼리티를 ‘조형적 섹슈얼리티’로 정의한다. ‘조형적 섹슈얼리티’가 현대사회의 새로운 친밀성의 양자관계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상당히 익숙한 개념 중 하나가 ‘낭만적 사랑’이다. 일반적으로 ‘낭만적 사랑’이란 개념은 아직 실제적인 사랑을 접해보지 못한 10대 소녀들의 판타지에 가까우며, 현실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실제적인 친밀성의 형태라기보다는 이상화된 비현실적 세계에 존재하는 관계양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세인들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개념을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미흡하고 어리숙한 의사소통양식에 대한 실망을 중화시키기 위한 조작된 이미지라 단정했다. 「기든스」는 이러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부정적으로 널리 퍼진 관념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해석을 시도하는데, 기존에 공유된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개념이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주체로 서서 능동적으로 사랑을 생산하고, 독립적인 행위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해석된 ‘낭만적 사랑’은 새로운 관계양식을 촉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통해 ‘상호적인 서사적 전기’를 써 가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든스」에 의하면 ‘낭만적 사랑’이 친밀한 상호 관계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순수성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에로티시즘’이 작용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품어왔던 이상적 대상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투영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자신의 내부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던 이상적 이미지와 합치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계속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든스」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고 정의한 이러한 관계로 인해 양자 간의 이상과 실제가 서로 불일치하면서 관계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즉, 서로 투사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일체감을 창조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이 친밀성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관계의 발전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타자에게 열어 보이는 과정에서 상호 협상과 이를 통한 인식과 습관·태도의 상호 변화과정은 필수적이다.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 즉,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과거로부터 서로 다른 기반을 통해 형성되어 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비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유대를 공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가는 사랑의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순수하고 합류적인 사랑의 양식이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사랑을 통한 관계가 개인의 자기정체성이나 인격적 자율성을 증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아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양자의 친근한 관계가 개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의 발전 가능성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도록 하며, 그러한 긍정적인 친근한 관계의 모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친근한 관계가 개인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는 무척 많이 존재한다. 특히,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사랑과 섹스 자체에 중독되어 스스로에게 질곡을 가하는 경우,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자신의 발전 보다 타인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더 지나친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경우 등 스스로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예인 것이다.
개인의 미래가 온전히 자신을 통해 개척되고, 스스로 미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즉 미래의 식민화(colonising the future)를 위한 자기-성찰적(self-reflexive) 모색을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를 감정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단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거 반성이 아닌, 자신의 과거를 감정적으로 뒤돌아보고 재구성하여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미래에 대한 성찰적 자기 기획도 가능하다. 이렇게 성찰적 자기 기획을 위한 대안적 방법론 중 하나로 「기든스」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배타적으로 누리던 감성적 이야기 방식에 남성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와 이성, 정복과 지배, 감성적 소통관계의 배제 등 남성적 서사구조가 횡행했던 인류역사를 상처와 질곡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감성적인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로 들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 서사는 외부에서 강제한 논리와 이야기에 스스로를 복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기 이야기에 대한 내적 근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모색하는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식민화하고, 미래에 대한 기획을 통해 개인적인 발전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3. 결 론
그 동안 앤소니 기든스의 학문적 관심 분야는 사회적 불평등, 복지국가 및 자본주의의 미래, 세계화, 생태적 위기 등 국가 혹은 세계적 규모의 사회 문제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영역은 단지 거시적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발전된 성찰성으로 충만한 전 지구적 세계에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당연시되며, 따라서 그러한 문제 제기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비판을 야기’ (U. Beck, A. Giddens, Lash, Reflexive Modernization, 1996 :15)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난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성찰적 근대화의 과정은 사적영역에서의 친밀한 일상세계에서의 상호 소통 관계를 성찰하는데도 필요하다. 개인의 자기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친밀한 관계에서 진행되는 개인적 관계의 모색과 발전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친밀성은 양자 간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제하는 억압적인 요청일 수도 있지만, 상호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협상하면서 관계의 모색과 발전을 모색하는 인격적 관계에서의 협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든스」는 이러한 관계가 공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인식한다.
「기든스」는 이러한 성찰을 통해 ‘친밀성의 구조변동’, 즉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관계회복이 기존의 거시적 사회질서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동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통해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정서적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상품소비를 통한 욕구충족이 부상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거시적으로 경제성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제성장의 논리는 현대사회와 사회체제를 지속불가능하도록 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친밀한 상호 관계의 논리는 끝없는 상품소비를 강요하여 생존을 유지하려는 현대자본주의체제에 맞서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성찰하게 함으로써,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