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8일, 제주여행 2일차입니다. 오후에 비예보가 있어서 아침 7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성판악 입구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닐 우의를 샀습니다. 성판악에서 관음사냐, 관음사에서 성판악이냐 의논이 있었지만 같이 출발하는 16명 중 산행포기자가 나오면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하산시켜 버스에 태워서 숙소로 보낸 후 그 버스가 다시 관음사에서 대기한다는 철저한 계획하에 성판악에서 출발합니다.

 

   어제 긴팔을 입어서 너무 더웠던지라 오늘은 반팔을 입었더니 약간은 선들하지만 곧 온 몸에서 열이 나겠지요.

 

 

   진달래밭에 있는 대피소까지 세 시간 예정입니다. 몇몇 선수들은 사라오름까지 찍고 오기로 합니다.

 

 

성판악 입구부터 아열대 밀림으로 들어가듯이 나무들이 울창합니다.

 

 

   검은 현무암으로 된 등산로를 보니 제주가 돌이 많은 삼다도가 맞네요. 울퉁 불퉁한 돌길을 걷다가 나무 계단을 보면 발바닥이 먼저 반가와합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호텔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펼쳤더니 배낭에 세워 넣었던지라 밥은 한 곳으로 몰려있고 김치국물이 새서, 예전 학창시절 기억이 납니다. 도시락 반찬이라야 뻔하고 뻔하던 시절 김치국물이 새서 교과서를 적시곤 했었지요. 도시락으로는 어쩐지 만족스럽지 않은 친구들은 또 사발면을 사와서 라면 국물을 마십니다. 산에서 먹는 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배가 부르니 일어나기 싫습니다. 일행의 반인 여덟 명이 도로 내려가겠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리지만 제가 가면 가고 안가면 안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돌격조에 합류하고 맙니다. 내려가는 친구들이 섭섭하지만 우리가 이제는 무리할 수 없는 나이인지라 강권할 수는 없습니다.

 

 

백록담까지 가는 길에는 바람에 따라 안개가 몰려다니며 좋은 시야를 허락하지 않는군요.

 

 

   인덕이 없는 탓인지 백록담은 물은 커녕 윤곽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전에 사라오름까지 갔던 친구들도 분화구에 물이 완전히 말랐다고 하니 백록담이 보였다고 해도 물이 별로 없었을꺼야 스스로 위로를 보냅니다. 먼저 내려간 친구들도 너무 섭섭해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고생고생 올라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간혹 만나는 진달래와 산죽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조금 빠른 친구들이 용진각 대피소에서 우리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난민 대피소같은 처절한 정경입니다.

 

 

   몇년전에 왔을 때는 계곡밑까지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반가운 흔들다리입니다.

 

 

   길고 긴 탐라계곡길,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끝은 있더군요. 전체 18.3km산행에 아홉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치기는 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몇 년 전 똑같은 코스에서 엉치뼈가 빠질 듯 아파서 고생하며 어기적 어기적 내려왔던 것에 비하면 근력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트랭글이라는 산행관련 앱으로 확인해보니 거의 4000Kcal를 소모한 것으로 나옵니다. 실컷 회를 먹어도 될 것 같네요. 감사하게도 버스를 타고 조금 후부터 비가 쏟아졌습니다. 우의를 써보지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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