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대한 관심을 접어둔 지 오랜만에 몇 가지 흥미를 끄는 요소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기존의 세계사 통사와 달리 단원을 세기로 구성한 점, 정치사 위주 서술에서 벗어나 주요 사건의 정치, 경제, 문화적 측면도 다룬 점, 그리고 다양한 해석을 담고자 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동안의 역사 서술은 서양, 강대국, 지배층, 남성, 농경민족 위주였기에 동양, 약소국, 피지배층, 여성, 유목민족의 목소리도 많이 넣고자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덕분에 그동안 세계사를 읽으며 궁금하면서도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을 알게 되었고 저자의 관점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중세 유럽에 퍼진 흑사병의 원인이 뭘까.

14세기 중엽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흑사병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저자는 몽골의 킵차크 칸국이 제노바의 도시 카파를 공격했을 때 포위가 길어지자 몽골 군 안에서 흑사병으로 죽는 사람이 나왔고, 그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 성 안으로 날려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가축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유목민족의 면역력이 강한 데 비해 정주해 살았던 유럽인의 면역력은 약했을 거라는 거다. 또 동아시아가 이모작을 하면서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한 데 비해 삼포제를 해서 분뇨를 거름으로 쓰지 않은 유럽은 훨씬 더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고 한다.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 '무굴'은 무슨 뜻일까.

16세기 초에 페즈가나 지역의 군주인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을 근거로 삼고 북인도를 침입해 승리했다. 1526년 델리를 중심으로 무굴 제국을 세웠는데, '무굴'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이라고 한다. 바부르는 티무르와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자처했다고 한다. 무굴제국은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년)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고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융합한 시크교가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언제부터 홍차를 즐기게 됐을까.

제인 오스틴류의 클래식 소설을 읽다보면 영국인들이 홍차를 즐겨마신다는 걸 알 수 있다. 왜 커피가 아니라 홍차인지 궁금했는데 마침 책 속에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포르투갈의 공주 캐서린이 크롬웰 사후 의회가 추대한 찰스 2세(재위 1660-1685년)와 결혼하면서 지참금으로 당시 포르투갈 영토인 인도의 뭄바이를 가져왔다고 한다. 뭄바이가 동인도 회사의 무역기지로 변모하면서 홍차가 영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반론은 무엇일까.

식민지근대화론은 식민지 지배가 가혹하긴 했지만 근대화를 이식해준 고마운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독자적으로 근대화에 들어섰거나 그럴 능력이 있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국은 남북국까지가 고대, 고려가 중세, 조선 전기가 근세, 강화도 조약 내지는 갑오개혁 이후가 근대"인데 '조선 후기를 근세로 볼지, 근대로 볼지의 문제가 남는다."고 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근대사회의 태동기로 간주한다고 한다. 정치 분야에서는 퇴보했지만, 경제에서 경강상인이 출현하고, 사회적으로 신분제가 완화되었으며, 문화면에서 서민 문화의 활성화가 이루어져 조선 사회도 독자적으로 근대로 가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중국과 일본도 각각 난징 조약과 메이지 유신과 상관없이 근대화를 이미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프랑스 혁명 때 여성들은 상류층에서 하류층까지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참정권, 이혼의 자유, 교육받을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남성과 동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하게 해달다고 요구했다고 하니 놀랍다. 올랭프 드 구즈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성평등하지 않다고 항의하며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을 선포했다고 한다. 하지만 혁명을 주도한 남성들은 모든 여성 단체를 해체시키고, 국민공회는 여성의 집회를 금지했으며 올랭프 드 구즈를 처형했다고 하니 다시 한번 놀랍다. 지롱드파인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제3세계'는 어느 나라들을 가리키는 걸까.

제3세계라고 하면 미국과 소련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신생국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흔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를 제1세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제2세계라고 하고,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비동맹 국가들을 제3세계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3세계도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앞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세계사를 읽으면서도 아리송한 채 지나갔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돼 무척 기쁘다. 그동안 획일적으로 제시됐던 서양, 백인,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동양, 유색인, 여성의 관점으로 사실과 사건을 이동하려고 시도한 점이 신선하다. 이를 통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느낀다.

-이 리뷰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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