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하나는 서점대상 1위!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서점 직원들이 뽑는다는 그 믿음직한 상이 아니던가. 장르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을 읽을 때 특히 일본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많이 신경쓰는 상이 바로 서점대상이다. 믿고 읽을 수 있으니까. 그들이 뽑은 건 그만큼 잘 나간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내가 이때까지 서점대상 작품을 읽어왔을때 충분히 감동하고 느꼈으니까.

내가 이 책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 하나는 제목 때문이었다. 뭐지? 싶게 만드는 저 문구. 분명 전쟁과 관련이 있을 법한 그 문구. 스릴러는 좋아하지만 첩보물은 좋아해도 전쟁이 소재로 쓰인 작품은 별로라 하는 편견 때문이었다. 거기다 일본인스럽지 않은 저 표지를 보아하니 이 내용이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 않음도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도 아군도 방해되면 죽여버린다고 하시는 분이야. 어떤 의미에선 숙청보다 무섭지.

178p

그렇게 피하고 외면했지만 이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손에 집어 든 이 묵직한 책은 그 무게 그대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잔뜩 남겨 주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지금도 전쟁이라는 것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 있기에 더욱 그 생각은 무거워지고 깊어지기만 한다. 대체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인가. 단지 그들의 영토가 탐나서인가 저들의 나라가 탐나서인가 그렇게 자신들의 영토로 소속시키면 그렇게 자신들의 나라의 땅덩이가 커지면 무엇이 더 좋기에 이리 큰 희생을 내가면서까지 대놓고 싸우는 것인가 말이다. 그저 모든 게 좋은게 좋다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는 정년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힘든 것일까.

평화롭던 마을이었다. 저들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세라피마는 엄마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마을 주민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갔다.

싸우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46p

엄마를 따라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십대의 세라피마에게는. 하지만 죽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대한 엄마에 대한 복수가 죽음을 이겼다. 그렇게 그녀는 여성 저격병 훈련학교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성들이라고 하지만 주로 십대의 여자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이 해야 할 훈련은 무엇이고 그들이 행해야 할 작전은 무엇이 될까.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했던가. 훈련을 마친 그들의 인원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마저도 다 지켜서 훈련을 하지 못하고 적진에 투입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을 있는 대로 모았고 훈련도 받지 못한채 전장에 투입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한국 전쟁 때 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임진왜란을 비롯한 왜군들과의 싸움이 있었던 조선시대에도 그랬을 것이고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일본인 작가가 쓴 세계대전 이야기다. 러시아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 독일과의 전쟁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만큼 사전 준비가 필수였고 큰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일본스러운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이름을 모르고 읽는다면 일본 작가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읽을 수도 있다. 장용민 작가였나 궁극의 아이를 쓴 작가. 한국 작가지만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그려냈던 작품. 갑자기 그 작품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나날을 셈하지 말고, 거리를 셈하지 말고, 죽인 독일인의 수를 셈하라.

220p

저격병. 앞서 싸우는 보병과는 다르게 몸을 숨기고 총을 쏘아야만 하는 임무를 맡은 그들. 쉽게 볼 수도 있지만 총을 쏘는 순간 자신의 자리가 발각이 되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임무의 그들이다. 병과가 다른 그들끼리 싸우는 것도 다반사이다. 외교관을 꿈꾸던 세라피마는 연필을 드는 대신에 총을 들었다. 누가 그녀에게 이런 인생을 준 것인가. 지금도 전쟁 중인 그 나라에도 이런 세라피마가 있지 않을까. 인간들이여 제발 평화롭게 살자. 그냥 살아도 인생은 그리 길지 못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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