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이름만으로도 상상력이 폭발할 것 같은 작가지만,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습니다. 『키메라의 땅』은 왜 그가 세계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려진 세계는 익숙하지만 두려웠습니다. 환경오염으로 점점 인간에게 해로운 지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생명체.

어릴 적 황사는 있었지만 미세먼지까지 걱정하지 않았던 기억과 달리, 오늘날 마스크 없이는 외출하기 어려운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뉴스에서 매일 전해지는 전쟁 소식과 맞물리면서 소설 속 상황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님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알리스는 진화 생물학 교수로, 망가져가는 지구 환경을 대비해 인간과 다른 혼종 생명체를 창조하는 ‘변신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공중을 나는 ‘에어리얼’,

땅을 파는 ‘디거’,

물속에서 사는 ‘노틱’.

알리스는 이 생명체들을 인간과 동등하게 바라보도록 설득하지만, 세상은 냉정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괴물로 규정하고, 결국 혼종은 지상에서 추방당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멈춰 선 문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순수해. 아직 인간 사회에 물들어 타락하지 않았어. 자기들이 어떤 세상에 내려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도 이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을까?”

인간은 성장하며 사회의 모순과 타락을 배우고 순수함을 잃어가지만, 혼종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수함과 본능, 그리고 인간 사회에 물들지 않은 시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만든 사회가 이미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키메라의 땅』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과 윤리, 과학적 도전과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새로운 생명을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인간은 왜 다른 종을 하등하게 여길까?”

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맴돌게 합니다.

특히 알리스가 창조한 키메라들을 끝까지 믿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새로운 존재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주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소설 속 혼종들은 인간과 달리 특정 종교나 역사적 감정에 얽매이지 않아 분쟁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순수함’과 ‘합리성’의 상징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물적 본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탓에, 결국 인간 사회와 완전히 융화되지는 못하고 갈등과 추방이라는 현실에 부딪혔죠.

베르베르는 상상력을 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아,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환경오염과 전쟁, 인간의 과오로 인한 파국,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까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 가장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생명체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둠으로써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새로운 존재 사이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키메라의 땅』은 몰입도가 뛰어나 단숨에 읽히지만, 단순히 재미만 주는 책은 아닙니다. 과학과 철학, 인간과 윤리, 생명의 의미까지 질문하며 독자를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인간과 생명,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낼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 『키메라의 땅』은 그 자체로 큰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