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기대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알고도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 섭취하게 되는 각종 음식물들에는 각종 항생제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자잘한 병들로부터 안전해질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나 보다.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생명체의 삶이다. '생명'이라는 말은 는 죽음의 대립어인데, 생명 자체에 이미 죽음이 내포 혹은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특히 인간은 이 죽음을 공포로 받아들이고, 가령 생명보험(종신보험)은 죽음을 담보로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의 삶보다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후세계에서 엇갈릴 길 때문에 현재의 삶에서 얻을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에 더 충실하지 못하는 종교들도 있다. 어쨌거나 이외에도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를 담보로 한 상품들은 참으로 많다.
정년퇴임을 하는 나이를 늘리건 줄이건, 실질적으로 정년퇴임을 할 수밖에 없는 연령층은 자꾸만 내려가고 있고, 비정규직, 대졸자들의 취업대란 등 고용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지금 우리는 이미 한 개의 직업에만 의존해서는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노년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이것은 노년을 앞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인들 모두가 공감하고 겪는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 T. Cicero, B.C 106~43)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천병희 옮김, 숲 펴냄)의 저자가 기원전 100여년 에서 50년여 전을 살다 간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나누고 있는 점 때문에, 마치 세계 혹은 인류의 시작이 2011년 전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사실을 늘 잊고 살아간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 감퇴는 오히려 노년의 가장 큰 축복이며"
"노년에도 정신활동과 농사일에서 절도 있는 쾌락을 즐길 수 있다."
노년에 이르렀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을의 끝은 첫서리가 내리면서 끝난다고 보아도 된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푸른 잎들은 단풍으로 물들고 떨어질 준비를 갖춰야 한다. 소멸을 준비하는 것 또한 생(生)의 중요한 단계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혈기방장한 시기와는 달리 그때에는 보이지 않은 세상의 질서를 감지하게 된다. 늙어서도 감각적 쾌락에만 휘둘린다면 나이값을 못하는 것이고, 육체적 쾌락에서 멀어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그야말로 '육체적'(이라고 표현하는 일반적인 쾌락)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발견하는 나이라는 점도 와 닿는다. 농사는 하느님과 동업을 한다고들 말하는데, 이제 비로소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에 편입되어 가는 때가 이르렀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농사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태어난 날은 오차가 있어도 대략 추정이 가능하다. 어떤 부부들은 사주가 좋은 날을 택해 제왕절개를 하거나 유도분만을 하여 맞춘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태어난 날은 큰 오차가 없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인간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시기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노인이라라는 것, 노인으로 불리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장수를 이미 누렸다는 점에서 젊은이에 비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영혼이 불멸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 된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구분짓는 것에 대해, 비록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해 서기를 쓰고는 있지만, 인간의 역사에서도 그 시점(기점)이 그렇게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노년에 관하여, 우정의 관하여>에 담겨 있는 생의 중요한 단계들, 관계 맺음에 대한 통찰에서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빛이 전혀 바래지 않을 생의 지침을 발견한다.

육체적으로는 쇠락하지만 정신적으로 완숙해지는 노년,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을 이용해서 소통할 수 있는 시기에 노년기의 네티즌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점은 어느 시대를 살아간 이들 못지 않게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 그런 세대간의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