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급생에게 비밀을 들켜버렸다!」 같은 라이트노벨을 연상시키는 제목 때문에 선뜻 볼 수 없었던 영화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로 번역되어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교내 최고의 인기남,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하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키리시마의 부재로 인한 혼란 속에 10대들의 심리를 포착해낸 수작. 교우 관계, 외모, 성적 등으로 매겨진 서열도 보이고 그 시절 청춘들의 고민들에서 약간의 질시와 공감도 느껴진다. 키리시마 없는 키리시마 이야기, 그리고 이 인물늬 상징 때문에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서클활동이 의무적인 데서 그치는데 비해, 일본의 교내 동아리 활동은 상당히 본격적이다. 튀지 않고 사회나 조직에 순응하는 편이 좋다는 그쪽 문화상, 사회성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장려되고 있다. 우리도 사회성 교육이나 문무일치 같은 취지는 비슷하나 교내에서 간단히 시간을 보내는데 그치고, 대체로 모든 서클의 자습화 혹은 영화감상부화 되는 경향이 짙다. 입시 위주 교육이라 예체능 역시 특기생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문화가 좀 다르다고 할까? 약간은 유럽이나 미국이랑 비슷한 느낌도 있다. 우리가 대학 동아리에서 만들 추억들을 고교시절에 미리 한다고 할까?

예시가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슬램 덩크」나 최근 인기가 많은 「하이큐!!」 같은 만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농구나 배구를 사랑하고 그만큼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하지만 모두가 프로 지망생은 아니다.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대학에 가기도, 취직하여 사회인이 되기도 한다. 픽션에 등장하는 것만큼 실력이 좋다곤 할 수 없지만 예체능의 경우, 아마추어로서 공연이나 대회활동에 참가하는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본다. 고교야구를 예로 들면, 야구부 선수들의 목표가 코시엔(전국고교야구대회) 진출인데 활약하여 프로 입단시 이점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대회 진출이 목표인 것이다. 열도의 반응은 프로야구보다 고교야구가 더 인기라 할 정도다.

동아리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사회인들의 취미활동도 넓어진다는 점이다. 학창시절의 관심사가 확장되어 아마추어가 늘어나면 해당 분야의 질적, 양적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추억들 덕분에 학창 시절의 향수를 그리는 작품들이 인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일본의 야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청춘물도 비슷하다. 벚꽃 날리는 배경으로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소년 소녀들, 여름 축제에서 유카타 입고 금붕어 잡기를 하거나 작은 폭죽놀이 하기, 신사 참배, 온천 여행 이런 류의 클리셰들은 모두 이미지로서 기능한다. 그 시절의 설렘을 재현하는게 우선이지 그 시절 느꼈던 고민이나 깨달음에서 오는 묵직한 울림이 없다. 그냥 추억을 소모하는 느낌?

그래도 이 영화는 여느 작품들과 달라 좋았다. 작가 아사이 료가 89년생인데, 취업준비생인 트위터리안들이 등장하는 「누구」라는 작품으로 최연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의 주인공이 10대라면, 이 작품은 20대 주인공들인 셈. 작가가 젊기 때문에 그 세대의 사고방식과 고민, 방황을 잘 살려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모두 있음직한 캐릭터들이다. 멀끔하고 잘생겼지만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고 방황중인 학생, 인기인 남친을 매양 기다리는 학생, 돈키호테 유형의 학생, 얌전하지만 누구보다 동아리 활동에 열성인 학생.... 교내를 돌고 도는 소문들에 대한 반응도 재미있고 각 캐릭터마다 부여된 스토리가 서로 얽히는 장면들도 섬세한 편이다.

다큐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꽤 현실적이다. 여학생 클리셰를 예로 들자면 기린 같은 존재, 욕망 속에 포장된 순수한 여학생이 아니라 호르몬 폭발! 다 부셔버리겠어! 라는 현실의 여학생이 등장한다. 진짜 여기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픽션 속에서도 리얼리티를 구현했다는 이야기다. 멋있어 보이지만 찌질하고, 찌질해 보이지만 멋있는 10대들의 고민을 지켜본 소감은....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 알았어도- 지나왔기 때문에 그 고민들을 별 것 아니라 치부하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겁쟁이가 되고 어떤 순수를 잃어간다는 자각 속에, 온전히 '나'를 위한 방황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시기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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