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로드 - 문명에 힘을 실어준 닭의 영웅 서사시
앤드로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2014)

1. 이 책이 나오자마자 주변에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이, 치박(치킨박사 --;)! 이런 책이 나왔어.” 아, 대체 언제까지 치킨이란 말인가? 특정 주제로 책을 냈는데(그것도 겨우 일 권 --;) 후속작이 나오면 당연히 긴장을 탈 수밖에 없다.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내 글에 오류가 뽀록 나는거 아닌가? 혹은 ‘아,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란 후회를 할까 봐. 영어가 짧아서 외국 사례를 기민하게 볼 줄 몰랐던 것도 솔직한 심정. 그런데 이참에 이따시만한 번역서가 나왔으니 긴장을 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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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는 과학 기술 전문기자다. 미쿡에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전문기자들의 수준이 집요한 수준에 이른다고나 할까. 저자는 인류학과 유전학, 역사학 등 세상의 모든 학문에서 다뤄지는 닭 문제를 다 훑어 놓았다. 특히 전체 유전지도를 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물인 닭의 기원인 야생닭 문제를 책 전반에 풀어 놓았다.
유전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변형 또한 손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닭은 끝없은 이종교배를 통해 살이 더 많은 닭으로 ‘만들어’ 왔다. 이걸 진화라고 할 수는 없다. 양계란 결국 과학적 선택으로 인간의 종을 개량하려는 사업의 원판이라고까지 얘기한다.

3. 닭의 이동경로는 ‘남아시아-중국-한국-일본’으로 추측되지만 이것은 언제든지 뒤집혀질 가능성도 있다. 곳곳에 남아있는 닭 화석(?)과 야생닭의 유전 연구로 ‘치킨로드’는 다시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금은 확대된 인간 가족의 구성원이다. 잡초와 벌레를 잘 잡아먹었으니 사람들과 식량 충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러 문화권에 남은 돼지의 터부는 사실 돼지랑 인간의 식량이 충돌해서다.

잘 키울 수 없으니 아예 먹지 말아야겠다가 먹으면 큰일난다로 굳어지는 현상 말이다(마빈 해리스). 그런 점에서 닭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으로 전 인류가 사랑하는 식재료다. 그리고 산업적 가치에서 보자면 달걀 흰자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가장 값싸고 쉬운 방법인데다가, 달걀에서 인풀루엔자 치료제를 생산해 낸다고 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는데 거대한 초국적제약회사들은 치료용 목적의 달걀 생산 때문에 양계산업에 발을 함께 걸치고 있단 사실이다. 그럼 달걀 많이 먹으면 독감은 안 걸리려나? 앙! 난 달걀 안 좋아 하는데...이런 저차원의 생각도 해 봤다.

4. 닭은 멸종이 아니라 ‘급증’으로 비운을 맞이한 동물이다. 미국의 양계산업도 독과점인데 특히 정치와의 긴밀한 결탁문제나 노동(자)의 문제, 사료 값에 개입하는 미국행정력의 문제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실

제로 하림을 추적할 때 타이슨푸드나 미국의 양계산업의 과정을 많이 참고했었다. 역시 미제가 좋은 것이여~ ㅠ

그리고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투계산업’의 규모가 그리 큰지 몰랐다. 유혈스포츠의 하나인 투계산업은 본래 에스파냐의 식민지 수익사업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 폐해도 엄청나다. 동남아시아의 유혈 스포츠 도박 (복싱, 무에타이, 투계 등등)의 성행 문제는 ‘스포츠 사회학’에서도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일요일 장정구가 나오는 프로권투 중계로 아버지 숨넘어갈까 걱정하던 때가 있었던. 지금은 복싱을 가난한 스포츠의 대명사니까. .스포츠야말로 계급의 지표가 확 나뉘는 영역이니까.
그리고 이 투계산업, 쌈박질 잘 하게 개량하는 산업의 메카는 또 어이없게 미국의 종계회사들이다. 내가 알기로 순계(이게 증조부모닭) 산업이야말로 부가가치가 엄청난 산업인데, 생명권력이란 걸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유전지도가 넘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봐야 한다. 그래서 GM문제가 안전성 논란에만 묶여 있는 것이 좀 답답하다. 생물학은 뜨겁다!

6. ‘닭고기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닭이라는 새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저자의 말을 듣고, ‘아, 닭이 새지’라는 새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미국의 양계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의 연결은 역시나 세계적 현상이고, 태국의 CP그룹 이야기도 좀 나온다.
닭도 자동차처럼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다. 새롭게 출시되는 닭은 모두 특정 시장에 적합하도록 (가슴살을 키운다든지, 한국형 삼계탕에 어울리는 장각 형태의 백세미처럼) 설계되는 하나의 제품이자 상품이다. 생명이란 감정을 넣지 않는 이상 모든 가축은 상품‘성’을 따지니까, 생명이란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작업이 자본의 역할이다. 그 단절 때문에 오늘도 치킨을 편한 맘으로 뜯고 마시겠지.

7. 읽은 지 두어 달 지나니 참으로 새롭다. 읽기는 한 건가? 그래서 남긴다. 닭의 기록 --; 생각보다 닭이 잘 발달된 기억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슬프다. 요즘은 돌고래와 아이큐 경쟁은 꿈도 못 꾸고, 이제 닭도 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