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스무명 남짓 한 대학교의 자그마한 계단형 강의실에서 그이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가슴 속에 끓어넘칠 것 같은 불덩어리가 최고였을 무렵,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겠단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난 뒤 첫 출근을 일주일 쯤 앞두고였다.

조용하고 말주변없는 드문드문한 말투로 똘레랑스와 맑스의 몇가지 명제를 우리 사회에 비춰서 설명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무렵 한겨레 정기구독을 권하는 그에게서는 그가 책에서 말한 '인텔리라는 천형'보다는 노동자와 서민의 모습이 보였다.

불덩어리를 키우고,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어준 직접적인 계기였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내 삶의 방향을 크게뒤흔들어놓은 책. 그리고 홍세화. 대학 때도 고시외엔 관심 없었던 내게 똘레랑스와 연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사람. 몇년이 지난 오늘 서점에서 다시 한번 책을 집었다. 원색 사진 몇장이 간간히 첨가되고 종이 질이 좋아졌고 표지 안쪽의 홍세화 씨는 흰머리가 간간이 보이는 홍세화 씨로 변했지만 내용은 그대로였다. 다시금 고민에 빠지게 하는 화두들도 그대로였다. 몇년이란 시간은 세상이 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가보다. 몇년전 나를 이끌었던 그 화두와 고민은,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이다.

망명자로 프랑스에서 보낸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다른 사회'에서 '똘레랑스'라는 가치를 생활 속 면면에서 체험한다. 경기고-서울대의 KS마크지만, 더불어 '빨갱이'라는 낙인은 그를 이역만리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이방인으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행정체계, 택시기사들의 노동조합, 그리고 아이둘을 기르면서 겪는 프랑스의 공교육까지 다양한 곳에서 프랑스 사회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가 느꼈고, 부러웠던 가장 큰 가치는 똘레랑스였다. 공공 운수가 파업을 해도 그들의 권리를 위해 불평없이 불편을 감수하는 시민들의 의식은 프랑스 혁명과 68운동을 거치면서 형성된 연대의식이다. 지금은 프랑스도 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로 폭동이 일어나고 우파 정부가 집권하면서 프랑스 제일을 외치는 등 똘레랑스가 많이 후퇴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최고조 였고, 진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강요하는 사회와 설득하는 사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젊은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회와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의 차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홍세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프랑스에 대한 사대주의적 감탄이 아니라, 그 사회가 형성하고 지켜온 가치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사회의 연대와 똘레랑스는 얼마나 진화했는가? 촛불문화제, 다시 돌아온 공안정국, 아직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왜곡된 인터넷 문화와 대책이라고 나온 사이버 모욕죄, 의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세대를 넘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