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나름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제법 들어본 적이 있고 어디 가면 지적이고 명석해 보인다는 평을 종종 듣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소개에서 취미 난에 '독서' 두 글자를 망설임 없이 쓴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아도 문제만 잘 풀면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교육환경은 핑계에 불과할 테고, 결국 스스로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많이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비독서인'의 삶을 살아가는 중,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중간, 기말고사 공부하면서 자판기 커피나 마시는 장소로만 여겨졌던 '중도', '연도' 등의 모교 도서관이, 알고보니 엄청나게 많은 책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 말이다. 또한 4년제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름 지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나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아성찰이 문득 있었다. 그래서 한번 독서라는 취미를 가지는, 나아가 '독서인'이 되어 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졸업을 앞두는 시점에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어보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독서;

그러나 원래 책을 읽지 않다가 갑자기 책을 읽으려니 버릇이 잘 되지 않았고, 몇몇 분야의 책은 좀이 쑤셔서 도저히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 전공인 지리학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해서 점차 독서의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전공책 몇 권 주문하기 위해 계정 만든 yes24에 리뷰를 모을 수 있는 블로그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고, 한두권씩 독서의 기록을 남기다 보니 벌써 몇년 째 '리뷰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독서 행태는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고, 다른 yes 블로거들에 비해서는 형편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직장생활에 바빠서 책의 권수도 현저히 줄어들어서, 스스로 반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SNS를 통해 알게 된 분(그분은 당연히 나를 모름)이 독서법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다른 분야 독서도 해보자는 의미에서 한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책 날개의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학벌이나 지적 능력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1년에 책을 10권도 읽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책 초반부에서도 '독서가'라는 사람 유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인간이 글자를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므로, '그 어려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기술이 있는 모든 사람은 자아정체성을 성장형으로 규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독서가' 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을 근거로 하고 있어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독서 분야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지적하면서, 이 시대 성인들 대부분이 고민하지만 거의 실천하지 않는 "새해 목표는 독서"의 방법을 친절하게 제시해 준다.

이 책은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독서가는 아닌, 초보 독서가들에게 권하는 쉬우면서도 다양한, 그리고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방법이 많다. 초보 독서가에게 독서가의 세계로 안내를 하는 것이다. 얇은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을 자랑하는 '다독(多讀)'을 권하는, 그리고 여자가 많은 카페에서 책을 많이 읽어라는 속물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해서 귀가 솔깃해진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독서를 시작했던 방법인, 지리학 서적들을 연계해서 읽는 방식인 계독(系讀)을 권하고, 오히려 '고전'은 권하지 않는다는 대목도 있다. 하나같이 내가 초기에 시작했던 방법과 거의 같아서 공감이 갔다. 내가 제대로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내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줘도 좋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너무 두껍지도 않으면서 초보자가 다독을 시작하기 좋은 책들.

그리고 이렇게 독서가의 입문 단계에 접어든 뒤에는, 수많은 분야의 책을 읽는 남독(濫讀)을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기존의 지식을 낯설게 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함양하라고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남독가로서 제래드 다이아몬드를 꼽아서 반가웠다. 나 역시 처음에는 책 제목에 '지리'가 들어간 책들을 읽었으나, 점차 다른 분야의 책인데도 지리적 관점, 안목,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책들을 찾아가면서 읽으려고 시도한다(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ㅠ). 그리고 이런 시도는 최근 학교교육에서 강조하는 융합인재와도 맥이 통한다. 이과반 학생들에게 세계지리를 가르칠 때, <총,균,쇠>를 팔아먹으며(?) 지리 공부를 권유하는 게 의외로 잘 먹히니 말이다. 또한 초보 독서가들에게 필요한, 조바심 내면서 빨리 읽으려 하지 말고 천쳔히 여러번 곱씹어 읽는 만독(慢讀)이라는 방법을 권하기도 하고, 어떠한 책을 쉽고 잘 읽기 위해서 저자의 관점에 주목하여 읽는 관독(觀讀)을 권하기도 한다. 이번 학기 소수정예 멤버들에게 독서동아리를 지도할 때, 선정할 몇 권의 책들을 관통하는 관점을 하나 정해서 천천히 곱씹어보도록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책 읽기의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와 함께 소개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십여년 전밖에 되지 않은 예전의 학생인 내 시절에도, 고등학생이 책 읽고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는 소리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고등학교의 독서교육 분위기는 제법 달라졌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 적성, 진로와 관련한 교과, 비교과 활동을 유기적으로 하면, 내신, 수능 성적 이상의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생기는데, 이를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활동 중에 하나가 독서활동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제법 일반화된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예전보다 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편으로 보인다(물론 독서의 목적, 방법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서 고등학교 현장에서 좀 더 체계적인 독서교육이 요구된다. 작년에는 사정상 독서교육에 관심을 많이 못 가졌고(그럼에도 무리하게 작가님을 초청하는 자리에서 준비가 잘 안된거 같아서 그분께 뜬금없이 죄송...ㅠㅠ)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독서교육에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독서가가 아니지만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하는(또는 가져야 하는)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다. 아직도 국영수 문제풀이만 하면 대학을 잘 가는 줄 아는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명문대생'보다는 '독서가'가 되었으면 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물론 새해 목표가 독서라는 말을 몇년 째 되풀이하거나, 그런 목표조차 세우지도 않는 성인들에게 구체적인 독서가로의 길을 찾도록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곁에 두고 수시로 읽으면서 독서에 임하는 마음을 다잡기에 좋은 책이다. 저자는 SNS에서 좋은 글들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의 다른 저술활동, 팟캐스트 등에도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자의 활동이 잘 되어서 여러 사람들이 독서의 힘을 믿는 '건전하게 지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