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 인종차별. 인류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지사들을 다시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과히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소재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빛을 받는 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함을 인식시키는 인간의 방법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탕이 되는 소재가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이런 류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런 부담에 손에 잡는 데 오래 걸린 책이었다. 왠지 읽다 보면 짜증이 날 것만 같았고, 굳이 시간을 들여 그들의 슬픔을 보고 싶지 않다는 애꿎은 감정이 책을 멀리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러나 우연찮게 집게 된 책은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픈 이야기지만 덤덤하게, 그러나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눈물을 기어코 쏟아내게 만드는 작품이었기에 그랬으리라고 변명을 해본다.

원제는 <The Land>. 번역하자면 대지, 땅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장소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한 소년이 우연한 기회로 그 땅을 떠난다. 그리고 갖게 되는 자신만의 땅. 저자의 이야기는 간결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만은 단순하지 않다.

백인 아버지와 그 노예 신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색 피부를 가진 유색인 폴. 뽀얀 깜둥이로 지칭되는 그의 정체성부터 이 책이 던지는 주제는 이야기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백과 흑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시대, 그 어느 곳에도 끼일 수 없던 한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는 달콤하지 않다.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스스로의 모습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단 그 시대 그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일까.

시대는 변해 지금은 예전처럼 대놓고 백과 유색을 나누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차별이 법으로 금지되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사람들의 인식도 보다 평등하고 바람직하게 바뀌어왔다. 그러나 충분할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보이지 않는 불평등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을 테고, 어딘가 누군가는 그로 인해 아파할 텐데. 그렇기에 정해진 배경에도 불구하고 폴의 이야기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를 울리는 것이리라.

1,2권으로 분책된 <대지여 꿈을 노래하라>의 1편에서는 폴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비의 권력을 등에 엎고 유색인답지 않은 유복한 삶을 보내던 어린 시절. 그러나 성장하며 알아가는 유색인으로서의 괴리감과 상처에 폴은 괴로워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유색인의 아픔을 깨달은 15살. 삶을 위해 무작정 숨어든 열차를 타고 15년간 발 붙였던 땅을 떠난다. 아, 그의 다음날은 어떻게 될까!

차별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그 차별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의 사람들 이야기는 역시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한 것만큼 읽기 괴롭지 않았다. 분노에 치를 떨며 읽지도 않았다. 그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와 번역가의 능력으로 넘겨도 좋을 듯 하다. 더해 진한 감동을 전해준 것도.

여러 권으로 나누어진 책의 첫 권을 덮으며 다음 권이 매우 기다려지는 경우는 쉬이 만나지 못할 행복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어서 다음 만남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폴의 매우 험난하겠지만 아마 끝내 미소 지을 결말이 궁금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