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던 중 다음과 같은 스크랩 기사가 생각났다.

제목은 ‘월가 CEO 사과 않는 이유는?’ 이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뉴욕타임스(NYT)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월가의 최고 지도자들이 사과에 인색하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비난의 대상은 골드먼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JP 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모건 스탠리의 존 J 맥,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브라이언 모이니헌 등이었다. 이들은 의회 청문회 등에 나와서 변명을 하거나,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 고작이라는 것. 이들의 유감 표명은 대부분 변호사나 회사 홍보 책임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회사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고 법망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 금융 총수들이 실수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큰 이유로 ‘주주들의 소송 빌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중략) 버지니아대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부르너 학장은 기업총수들이 사과에 인색한 이유로 ‘이들이 실수를 인정해오지 않았던 강한 에고(자아)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요타 자동차 그룹의 아키오 도요타 회장이 최근 회사의 어려움을 놓고 “구세주에게 매달려야 할 판”이라고 실토했던 것과 비교하면 미국 기업 총수들은 겸손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사랑, 배려, 용서, 화해 등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왔으나 ‘사과’에 관한 책은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아론 라자르 교수의 이 책 ‘사과 솔류션’ (On Apology)은 우리에게 ‘사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Apple 이 아닌 'Apology'.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사과의 가치, 역설, 조건, 과정, 동기, 공포, 타이밍, 지연, 협상 등과 사과와 용서, 사과의 미래 등에 대해 많은 사례를 통해 그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게 사과할 일 없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겠지만, 때로 우리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타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아니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사과와 용서에 대해 침묵으로 지나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헸으므로 사과를 해야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어도 이미 그 사람과 나의 사이 절반 거리는 줄어들지 않을까?

저자는 특히 1900년대 공적인 영역에서 사과가 급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를 새천년의 여명기로 들고 있다. 즉, 서기 2,000년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여겼기에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백지상태’로 출발하기 위한 의도가 많이 담겨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외에도 괄목할 만한 기술발전을 통해 촉진된 급속한 세계화를 들고 있다. 고속여객, 텔레비전, 휴대전화, 팩스, 이메일, 디지털 사진, 인터넷, 국제금융 등이 세계를 “모두가 다른 모두와 깊이 관계 맺는 총체적 관여의 세계” 즉, ‘지구촌’으로 좁혀 놓았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단체에 안 좋은 일을 행하고 그 절대 다수의 시야와 관심에서 영원히 숨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에 대한 인정은 피해 당사자에게 “잘못 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양측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또한, 가해자 측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P.114)

효과적인 사과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잘못에 대한 인정이라는 것은 이견이 있을수 없다. 그러나 때로 사과의 형식을 빌려 변명을 함으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해 전 강원도의 모 국회의원이 노래방에서 여기자의 가슴을 만진 사건이 연일 방송을 타게 되었다. 해당 여기자가 굳이 노래방까지 취재 동행(?)을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지만..여론이 드세어지자 사건의 제공자인 국회의원이 사과의 형태를 빌렸는데, 그 사과의 내용이 바로 변명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의정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처음엔 취중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가, 그 다음엔 식당아주머니인줄 알고 그랬다고.. 하여 전국규모의 음식점 중앙협의회까지 들먹이자 제대로 사과를 했던가?

그 다음엔 술하고는 상관없이 나도 기억이 안 난다.

진정성이 깃든 사과는 용서와 함께 양자 모두를 회복시켜주는 힘이 있다.

베트남전에서 연합군 폭격 임무에 참여한 헬리콥터 조종사이자 작전장교였던 24세의 존 플러머의 사례를 보자. 1972년 6월 8일 트랑 방 마을에 엄청난 폭탄과 네이팜탄이 투하됐다. 다음날 아침, 미 국방신문 Stars & Strips (성조기)에 그날 폭격에 대한 기사가 났고, 여기에는 아홉 살 소녀 킴 푹(Kim Phuc)이 불타는 마을에서 도망치는 모습이 담긴,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진이 함께 실렸다. 몇 년 뒤, 플러머는 “그 사진에서 소녀의 옷이 네이팜탄으로 다 타버린 모습을 보게 됐어요. 눈은 보일락 말락 했고, 공포에 사로잡혀 입은 크게 벌린 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으로, 팔은 이상하게 퍼덕거리는 게, 마치 자기 팔인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

‘제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어요.”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간 플러머는 알코올 중독과 두 번의 결혼 생활 실패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마침내 군납업자를 그만두고 연합 감리교 성직자가 됐다. 직업을 바꿨지만 자기 머릿속에 각인 된 그 사진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됐다.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너무 아팠다. 사진 속 장면은 꿈속에도 나타났고, 희생자들의 비명소리도 함께 들렸다. 플러머는 “그 소녀가 자기 눈을 들여다본다면, 그녀에게 한 짓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겪어왔고 깊이 뉘우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24년 뒤, 존 플러머와 킴 푹은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플러머는 그날의 해후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절 맞아줬어요,...저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요.” 킴 푹은 플러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 괜찮아요. 용서할게요. 제가 용서할게요.” 그 날 두 사람은 두 시간을 함께 보냈다. “킴을 만난 뒤로는 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어요. 아무런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죠. 모든 것이 평화로워요.” (P. 250,251)

물론 사과를 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보상이 필요하다면 보상을 해야 될 것이고, 피해자가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또한 이에 맞춰주어야 할 것이다. 사과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즉시 해야 하는가? 아님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사과를 꺼려할까 ? 아니 나아가서 두려워할까 ?

사과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주도권을 갖길 원하고, 자신의 감정마저 통제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자 한다.

사람들은 또한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사과를 꺼려한다고 한다.

첫 번째, 사과를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 “상대방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인간관계를 끊겠다고 할지 모르잖아요.” “상대방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등등.

두 번째,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는 상관없이, 사과를 하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경우이다.

- “사과하는 것은 나약하다는 느낌이 들어.” “사과하기가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스스로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과를 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제 감정을 드러내야만 한다.” 등등. (P. 221,222)

사과는 결코 유약한 행동이 아니다. 구성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선 허세의 옷과 가면을 버려야 한다. 구성원들과 넓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서 ‘나를 따르라 ~~’로 마지못해, 눈치 보며 따르게 하는 리더가 아닌 “따르고 싶은 사람, 나의 삶의 멘토로 삼고 싶은 사람" 이 되어야 하고 함께 가고픈 동료가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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