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근대성과 근대화를 논할 때 간추린 요점으로 등장하는 한 가지 명제가 '도시화'다. 즉 자본주의 발달과정은 전체 사회공간을 도시화시켜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의 도시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도시화를 논하려고 한하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도시화를 논하려면 도시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변천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물론 발터 벤야민의 통찰력있고 압축적인 에세이풍으로 19세기의 수도 파리를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벤야민의 글은 도시화나 도시형성과정 자체에 대한 사회과학적 담론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소비상품신화에 대한 문화비평이 더 우선이었다. 바꿔 말한다면 벤야민이 바라본 19세기의 수도 파리는 역사철학적 인식과 결부된 알레고리식 비평이었다. 예컨대 벤야민의 근대성 연구물인 일명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아케이드, 만국박람회, 실내장식, 파노라마 외에도 유행, 광고, 매음, 수집가, 거리산보자, 노름, 청년양식 등 19세기 파리 문화의 상부구조를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을 중심으로 배열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생각의 나무, 2010)는 벤야민의 《19세기의 수도 파리》의 '다시쓰기'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하비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중시했던 마르크스와 공간을 중시했던 레닌의 이론을 서로 연결시킨 '시공간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의 도시 파리를 탐구한, 쉽게 말해서 역사분석과 도시연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파리의 인구와 고용구조, 산업의 기업규모와 임금수준 등 경제적 지표 외에 발자크, 플로베르, 보들레르, 마르크스 등의 문화담론을 참조하면서 자본과 지리공간 그리고 인간의 역동적인 삼자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도시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학술적 관심은 일찍이《사회정의와 도시》(1973)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지만 보다 직접적인 관심은《자본의 도시화》(1985)와 《의식과 도시경험》(1985)에서 찾아야 한다. 《파리, 모더니티》의 내용은 《의식과 도시경험》에 실렸던 주요 논문을 토대로 새롭게 개정·증보한 것이다.

그런데 왜 파리인가? 19세기 제2제정의 파리는 전세계 자본주의의 최전선이었고 근대성의 역사적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파리는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적 공간 재배치의 역동성을 가장 생생히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가령 1848년 2월혁명부터 1871년 파리코뮌까지 두 차례의 혁명을 거치면서 파리는 대대적인 근대성의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금융자본주의와 백화점으로 대변되는 대중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약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자본은 혁명을 먹고 자랐다. 오스망 남작은 '창조적 파괴'의 방식으로 파리의 외관을 새로이 설계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지니도록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오스망화로 인한 도시공간의 변형은 산업구조 및 노동 방식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은 각 계급의 생활형태와 의식에서의 변화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