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난쏘공이 내 곁에 아주 좋은 책을 놓아주셔서 감사했다. 깊이 없는 실용적 지식만을 다루는 재테크 서적과는 차원이 다르게, '실용주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보수주의자들을 비호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그들이 필요한 부분만 떼어와 설명하곤 하는)전통 경제학 지식에 기반하여 조목조목 비판하는 책이라 읽는 내내 통쾌하고 즐거웠다. 우석훈선생님이 극찬할 만도 하다. 이런 책을 쓰는 분이라니 무한 신뢰가 생겨서, 그의 "우리는 행복한가"도 읽고 싶어졌다.

나는 경제학에는 완전히 문외한인데, 일반인에게 생소할 경제학을 저자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려는 것이 느껴졌다. "히든 브레인"과 같은 뇌과학 관련 서적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곳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점도 반가웠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들의 음모"가 책 읽는 내내 생각났다. 그 책에서는 2008년 미국에 경기침체가 온 것은 금융기관이 파생상품을 통해 빚을 상품으로 팔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 책에서도 주류 경제학자에게서는 들을 수 없을 경제 위기의 원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마침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상(의무)급식 주민투표도 있었기에 트위터를 통해 경제, 복지와 관련된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갈등을 주시하면서 이 책 내용을 적용해볼 수 있었다.

고전 경제학(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마르크스, 케인스의 주장을 기반으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책 세 권을 읽은 느낌이다. 내용 내용이 소중해서 메모까지 해가면서 읽었는데, 리뷰에 책 내용을 고스란히 요약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공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니 나에게 의미 있었던 부분만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이 책 역시 김영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는데, 감히 경제학계의 "정의란 무엇인가"라 할만 하다. 센델은 공화주의자 입장에서 그 책을 썼을텐데, 이 책을 쓰는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책 전체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만은 확실해보인다. 책의 요지는 주류 경제학이 아직도 근대합리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실제 경제 상황과 위기를 말해주지 못하는 이상주의적 경제학을 리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한다고 전제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에 경제 위기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만 보는 경제학은 경제 위기를 예측하거나 그 원인을 절대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케인스가 말하는 야성적 충동이 참 인상 깊었다. 이미 인문학계에서는 합리주의가 인간을 반쪽 밖에 설명하지 못함을 이야기하는데, 주류 경제학은 아직도 근대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니 놀랐다. 근대가 쪼개놓은 각 학문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과학계에 대한 비판으로 후쿠오카 신이치가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썼던 것처럼 경제학계에 대한 비판으로 저자는 이 책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가 경제학자들에게 제발 수학만 고집하지 말고 과학, 심리학, 인문학에게서도 좀 배워가면서 경제학을 하라고 주장하는 점이었다. '행태 경제학', '행복 경제학' 같은 분야가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있고, 그리고 그 후예답게 인간의 행태를 연구한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정작 인간의 심리나 욕망 그 자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각 개인의 욕망은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써 최대한 존중되고 최대한 잘 충족되어야 할 대상(목표)일 뿐이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주어진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전락했다. 첨단 과학으로 간주되는 두뇌 과학이나 신경 심리학 분야의 학자들이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도 얼마든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욕망이 종잡을 수 없고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단정하고 있다." p. 121

"과거의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늘 그랬듯이 케인스 역시 철학을 많이 공부한 학자였다. 케인스에 대한 전기를 써서 학술상까지 받은 어느 학자는 케인스를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케인스가 영국의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셜은 윤리학을 통해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늘 주장했는데, 이런 점에서 나는 그의 제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중년을 넘긴 케인스는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철학이 없음을 크게 개탄했다. 폭넓은 교양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케인스는 경제 성장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며, 경제학은 어떤 학문이 되어야 하며,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경제학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요즈음 경제학자들에게는 그런 근원적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경제학은 철학이 담긴 경제학이다." p. 392

"불세출의 대가들이 경제학의 약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경제학을 초월한 고차원 경제학자였기 때문이다. 철학과 역사 등 경제학의 이웃 분야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경제학 대가들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케인스가 경제학자들에게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호통 쳤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철학과 인문학을 우습게 여기고 경제학에만 몰두하고 있다. 아니, 수학에 빠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p. 397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주류 경제학은 학자들 특유의 고자세로 이론과 이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편, 바른 철학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보수주의자들에게 침묵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하필 지금 이 책이 나온 이유는,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제동을 걸고자 함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전통 경제학자들의 입을 빌어 책 곳곳에서 정부가 '부의 재분배'와 '사회 안전망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과연 저자가 말하는 '행복의 역설'처럼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하고 나면 물질적 가치를 통해 얻는 행복에는 한계가 생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과 전체 부의 양을 생각해보았을 때 아직도 밥을 굶거나 노숙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결국은 빈부격차의 문제, 평등에 대한 문제인데 그에 대한 실질적 해결 노력 없이 신자유주의자들은 (나라 전체와 대기업의) 경제가 성장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가 온전히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의 사민주의와 복지 체계를 부러워할 때 어떤 사람은 그러한 복지체계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어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뒷걸음질 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한다. 또한 이번 무상(의무)급식 논쟁을 보며 세계관과 가치관의 차이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조중동'의 논조를 비판하는 이 책 뒷표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추천사가 실려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국부는 나라 안에 쌓인 금은보화의 총량이 아니다. 아무리 금은보화가 많은들 우리의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돈은 결국 거래를 편리하게 해 주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나아가서 우리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애덤 스미스는 무척이나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국부란 국민의 복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각종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국부를 새롭게 정의하고 국민의 복지를 상공업자의 이익이나 정부의 이익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로 삼았다는 바로 이 점이 "국부론"을 통해서 애덤 스미스가 보여 준, 당시로서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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