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은 김광섭 시인의 시선집이다. 창비시선 4번째로 1975년 12월에 초판 1쇄 발행한 시선집인데, 내가 읽은 시집은 2009년 12월에 초판 11쇄로 발행된 것이다.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77년에 작고한 김광섭 시인은 생전에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1971), "김광섭시전집"(1974)을 펴냈다.

이 시선집은 "김광섭시전집"(1974)에서 시인 스스로 고른 60여편에, 편집자측에서 보충한 10여편, 그리고 전집 이후의 최근작 10여편 등, 도합 86편을 수록하고 있다고 <편집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 시집은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전집" 이후 (13편)

제2부 "반응" 및 "반응" 이후에서 (24편)

제3부 "성북동 비둘기"에서 (19편)

제4부 "해바라기" "마음" 및 "동경"에서 (30편)

가장 최근작을 모아 놓은 제1부에는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65년에 썼다고 밝혀진 작품 2편을 빼면 모두 1970년대 중반작으로 보인다. 연도가 밝혀진 작품은 1975년으로 돼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주제가 다양한 것 같다. 실향민으로서 남북 분단의 현실, 그리고 고향과 고향에 있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 1970년대 산업화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관심 등...

2부에는 2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도 주제는 다양한 것 같다.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겪은 일, 의료 사고로 인한 아내의 죽음 등 자신의 생활 가운데서 소재를 취한 작품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1, 2부에서는 확 와닿은 작품은 그러나 없었다..

3부에는 1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익히 알고 있던 작품들이 많이 있다. '저녁에', '시인', '산', '성북동 비둘기', '생의 감각' 등.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저녁에' 전문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 '산' 전문

이 외에도 옮기고 싶은 작품이 더 있지만, 그만 옮기고 4부로 간다. 4부에 실린 30편을 통해 김광섭 시인의 시작 활동의 초반기 작품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길이가 짧은 시들도 여러 편 있는데 길이가 짧은 시들 가운데에는 '비 개인 여름 아침' 같은 빼어난 서경시도 있지만 대부분은 감흥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비 개인 여름 아침' 전문

4부에서 익히 알려진 작품은 '마음'일 것이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마음' 전문

4부에는 시인의 이력 중 우리가 기려야 할 이력을 노래한 시도 2편 있다. 시인은 1941년에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 구속되어 만 3년 8개월 옥고를 치른 민족시인이다. 이때의 일을 쓴 시 2편이 4부에 있다. '벌'과 서대문형무소라는 부제가 붙은 '이별의 노래'가 그 두 편이다.

나는 이천이백이십사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패를 차고

이름 높은 서대문형무소

제3동 육십이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혼자말로 물어 보았다

삼년하고도 팔개월

일천삼백여일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시간을 헤이고 손꼽으면서

똥통과 세수대야와 걸레

젓가락과 양재기로 더불어

추기나는 어두운 방

널판 위에서 살아왔다

(중략)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처벌된

이 어둠의 보상으로

일본아 너는 물러갔느냐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 '벌'

이 시를 읽기 전까지는 죄수번호 264번만 알았는데, 2224번도 알게 되었다. 문학적 성과를 떠나 나는 이 시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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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 실린 김광섭의 시들은 시인 자신이 엄선한 시편들과 출판사 측에서 뽑은 작품들로 엮여져 있는 만큼 이 시집은 김광섭 시의 정수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광섭 시인의 시 세계를 어떻다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시인은 어려운 기교를 구사하지 않고, 주로 자신이 처한 생활과 사회 상황 등에 대해 진솔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