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주인공인 톰 크루즈가 변장복면을 벗을 때다. 누구라 속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장하고있다가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올 때, 감탄하게 되는데 이 감쪽같은 변장술은 첩보원에게는 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특급 기술일 것이다.

'전쟁의 늪'에서도 능수능란한 변장술로 적진에 침투하는 닌자가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이 닌자, 이름하여 요미에게 비밀리에 내려진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조선 요인을 암살하라는 것이었으니. 그는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조선인의 신분과 외모를 차용해서 조선 군영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선전관 장호준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한 병사의 말에 직감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임을 간파하고 그의 정체를 추적해간다.

암살 임무를 띈 닌자와 선전관 장호준, 그런데 이 장호준의 선전관 직책은 일종의 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실제 직책은 비밀낭청으로, 서자였던 그는 아내와 딸을 잃은 몸으로, 유성룡의 부름을 받고 요즘말로 하면 비밀 첩보원이라 할 수 있는 낭청임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 자객 역시나 장호준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신분을 밝혀가는데. 이후 두 사람에는 쫓고 반격하는 긴박한 수싸움이 벌어진다.

조선과 왜군의 전쟁이 소강상태인 상황에서 공식적으로는 협상을 논하지만 막후에서는 이렇게 암살을 통해 반전을 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대놓고 죽고 죽이는 살육전도 모자라 전쟁판 뒤에서 이렇게 결코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작전까지 벌여 어떻게든 승리 혹은 명분을 움켜잡으려 했던 것인데, 이런 비밀 작전은 분명 임진왜란 경우에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모든 전쟁 당사자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또다른 숨겨진 전쟁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었던 '첩자 열전'에서 알게된 사실인데, 실제로 조선시대에서는 비변사에 이런 비밀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 있었다고 한다. 비밀차지낭청(秘密次知郎廳). 아마도 장호준이 이 비밀차지낭청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닌자가 암살하려했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접근하고 암살을 시도할까. 장호준은 도중에 닌자에게 일격을 맞고 죽음을 당하게 됐으니 그렇다면 그 닌자의 공작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내가 가진 책에는 이 작품의 부제가 '이순신을 지켜라'다. 그래서 그 암살 대상자가 누구인지 이내 알 수 있었는데, 예스24에 소개된 책에는 부제가 '그림자 전사들'이었다. 내 생각에는 후자가 더 적합하겠다 싶었다. 전자는 너무 직접적으로 암살 대상자를 드러내놓고 있어서 암살 대상자를 추리하는 흥미를 반감시켰고 비밀낭청과 그림자 전사들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려 작품 내용과 부합했다.

왜군이 이순신에 대한 암살 혹은 모략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반간계를 통해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신임을 거두게 했고, 심지어 원균이 칠량전 해전에서 패배한 데에는 일본군이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공작에 원균이 말려들었다는 후문도 있다.

'전쟁의 늪'은 전쟁 막후에서 펼쳐지는 있을 법한 암살시도를 다루고 있는데, 비밀리에 이루어진 첩보전과 정보전의 일면을 담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결코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공작은 시대불문하고 시도돼 왔던 것이고, 그런 첩보전은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만약에 왜군이 이순신을 암살하는데 성공했다면? 이후 왜군이 일본으로 철수했을 거란 보장은 없고,조선의 운명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의 늪'에서는 이렇게 조선의 승리를 위해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이름없이 임무를 수행했던 그림자 전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승리와 영웅 뒤에는 이렇게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이면에서 숨겨진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환호와 영광은 결코 그들의 몫일 수 없었던 존재들, 그들은 기꺼이 전쟁의 늪이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