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없었다.

열 아홉살이 되었지만 내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매일밤 태수와 어울려 다니면서 근처 패거리들과 툭하면 싸움질을 벌렸다.

그 때는 그게 전부였다. "

비트 블루레이 발매 기념으로 예스에서 블루레이 시사회가 있어서 다녀왔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좀 고급스러웠다고 해얄까. 젊음의 어두운 터널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직접 말하지 않고도 고통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절제된 연기들이 가슴에 확 꽂혔기 때문에 나는 한참을 이 영화에 빠져 살았었다.

이야기는 크게 넷이다.

민(정우성 분), 로미(고소영 분), 태수(유오성 분), 환규(임창정 분)의 각각의 작은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그 네 명의 '젊음'이 죽어가는 이야기다.

로미는 우연한 기회에 민을 만나 주말에 야구를 보게 하거나 친구들 앞에서 남자친구로 행세하게 한다. 그 목적은 로미의 친구 우등생들의 경쟁심을 느슨하게 해 혼자 치고 나가기 위한 목적이다.

너하고 이 오토바이 성능하고 혼동하지마. 저능아 같이 보여. -로미-

태수에게 선물 받은 오토바이로 로미를 학원에서 집까지 데려다 주던 민이는 위험한 속도로 질주한다. 로미는 오토바이에 내리자 마자 저런 말을 한다. 민이에게는 오직 오토바이의 미칠듯한 속도 외엔 도무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 없었고, 로미는 그 위험한 모습이 두려웠었다.

속도감이 최고에 다다르면 세상은 고요해지고,

하나의 점 속으로 빨려들어가.

하지만, 저 소실점을 통과할 수는 없어.

다가갈수록 멀어지지. 로미야 넌 지금 어디있니. -민-

로미를 따라 놀던 친구가 성적이 떨어져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자살하자 로미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그 사실을 모르는 민은 그녀의 삐삐를 기다리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다.

로미는 첫번째 이탈자이다.

부모의 강요로 오직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가득한 그녀가 택한 방법이, 결국 그녀의 친구를 자살로 몰았고 그녀는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열에서 이탈한다.

두번째 이탈자는 환규이다.

'졸라 큰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던 꿈을 가지고 있던 환규는 도시개발 구역 안의 가게를 모르고 인수한다. 게다가 자릿세를 뜯는 깡패들에게 돈 200만원까지 갖다 바치며 인생을 걸고 장사하지만, 머지않아 그 건물은 포크레인에 무너진다. 환규는 이성을 잃고 건물 철거 용역을 칼로 찔러 잡혀들어간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고 한다. 미리 확인 안 한것도,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것도 오직 본인의 잘 못일 뿐이다. 어른들은 합의를 해주겠다면 500만원을 요구하고 민이는 태수의 조직에 용병으로 가 돈을 마련한다.

재벌 회장이 되든 건달로 크든 성공하면 다 똑같은 거야 임마. -태수-

세번째는 태수이다. 그는 일찌감치 조직세계에 뛰어들어 과감하고 잔인한 행보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하지만, 그만큼 경계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결국 그를 중용하던 보스의 손에 죽게 된다.

마지막은 민이다.

사실 그는 이탈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냐면 그는 가진 것이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수야 난 세상에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어.

원래 가진게 없는 놈이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니가 있었어

임마 너한테 화를 내고 싶어. 왜 이렇게 됐냐고

하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민-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반전은 이 영화가 비록 15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도 사회가 젊음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수십만의 로미는 옆 자리 학생을 짓밟아 올라서려고 하고, 환규는 학교를 때려치고 냉골 같은 사회 맨바닥에서 뒹굴며 괴로워한다. 태수처럼 반짝이는 빛만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은 결국 눈이 멀어버리고, 민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는 이는 무릎꿇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본인만 열심히 하면..'이라는 단서를 곧잘 달더니, 언제부턴가는 '괜찮아 괜찮아. 힘들지'라며 되지도 않는 위로를 힐링이라고 해댄다. 결국 무의미한 힐링은 본인은 그렇게 만든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를 인정받겠다는 치졸한 방법이다.

'비트1997'은 2013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

하지만 로미야

지금 이 순간 그리운 것들이 너무 많아.

환규와 태수, 그리고 너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꿈처럼 느껴져.

로미야.

보고 싶어. 하지만,

너에게 갈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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