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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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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1월 20일,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별장에서 나치 수뇌부는 비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나치 수뇌부는 유대인들의 ‘최종 해결’을 결의했다. 최종 해결은 절멸을 의미했다. 나치가 설치한 절멸수용소들은 효율적인 학살을 집행하는 장소였다. 소련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각종 독가스를 실험한 독일군은 1942년부터 전면적인 유대인 학살에 나섰다. 유대인들을 분류해 수용소로 빠르게 이송하는 작업은 효율적인 공장 운영 작업과 흡사했다. 독일군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해결 대상’인 유대인 숫자를 파악하고 이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초급장교였던 아이히만은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색출하고 추방하는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전쟁이 시작된 후 고속승진한 아이히만은 ‘최종 해결’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신의 임무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전쟁으로 군수품을 운송할 철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아이히만은 2년간 약 5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냈다.



1961년 재판정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



 



1945년 5월 전쟁이 끝나고, 그해 11월부터 뉘른베르크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다. 당시 중령이었던 아이히만은 공군 이등병으로 신분을 속인 채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의 이름이 언급되자 연합군 정보부가 탐문을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아이히만은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시골에 은신했다. 1950년, 아이히만은 나치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 대표적인 친독 국가인 아르헨티나에는 나치 이념을 신봉하는 독일계 이주민들이 많았다. 그들의 비호 아래 아르헨티나에서 신분을 세탁한 아이히만은 안경을 끼고 수염을 기르는 등 겉모습까지 바꿨다. 그곳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 취직한 아이히만은 오스트리아의 가족들도 불러들였다. 아이히만의 평온한 삶은 1960년까지 이어졌다.



1957년, 독일 헤센주의 검찰총장인 프리츠 바우어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중요한 정보를 넘겼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는 실비아 헤르만이라는 여성이 제보한 정보였다. 실비아는 자신의 남자친구 니콜라스 아이히만을 의심했다. 실비아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니콜라스는 유대인 말살을 주도한 자기 아버지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프리츠 바우어는 실비아가 제보한 정보를 서독이 아닌 이스라엘 정보부에 넘겼다. 나치 잔당들에게 정보가 누설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1958년 모사드는 아르헨티나로 요원들을 파견했으나 그들은 클레멘트로 개명하고 외모를 바꾼 아이히만을 알아보지 못했다. 클레멘트가 아이히만이라고 확신한 바우어는 계속 모사드를 설득했다.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모사드는 체포에 나섰다. 체포 임무를 맡은 모사드 요원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이히만을 즉결 처형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은 아이히만을 꼭 생포하라고 요원들을 설득했다. 벤구리온 총리는 아이히만을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의 한 장면. 아이히만 체포 계획을 짜는 모사드 요원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의 한 장면. 아이히만 체포 계획을 짜는 모사드 요원들.



 



1960년 5월 11일, 모사드 요원들은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아이히만 납치에 성공했다. 5월 20일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이스라엘 방문단이 타고 오는 전용기에 아이히만을 몰래 옮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정부의 요청으로 5월 11일로 예정된 이스라엘 방문단의 입국이 5월 19일로 늦춰지게 되었다. 모사드 요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은신처에서 아이히만과 열흘간 동거를 하게 되었다. 아이히만은 모사드 요원들의 설득으로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는 데 동의했다. 아이히만을 살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를 설득하는 모사드 요원들의 모습은 크리스 와이츠 감독의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2018)에서 사실적으로 재현됐다. 5월 20일, 항공사 승무원으로 위장한 모사드 요원들은 마취시킨 아이히만을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1961년 4월 11일부터 이스라엘에서 4개월간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전 세계에 중계된 이 재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과 학살을 담은 필름들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폴 앤드루 윌리엄스 감독의 영화 『아이히만 쇼』(2015)는 이 재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현한다. 재판이 시작되자 영국 BBC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방송국 PD들은 아이히만의 얼굴을 연신 클로즈업하면서 주시했다. 그러나 PD들은 모두 경악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히만의 표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도저로 수천 구의 유대인 시신을 매장하는 화면을 볼 때도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아이히만은 태연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전쟁 중 자신이 정책을 결정하거나 목표를 설정할 권한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단지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1961년 12월 11일, 법정은 아이히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법정에 앉아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이 매우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아이히만의 정신을 감정한 정신과 의사들의 소견도 같았다. 의사들은 아이히만을 악마로 묘사하는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모두 그가 매우 긍정적이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고 밝혔다.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에서 드러난 아이히만의 모습을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전형이라고 분석하면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명한 화두를 남겼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폴란드 출신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1989)에서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확장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가 독일인의 악마성에서 비롯된 비극이 아니라 합리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라고 역설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의 분업화와 관료화는 행위자와 행위를 분리하면서 무감각한 인간을 대량 양산한다.



 



 홀로코스트는 현대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의 인격을 제거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독일인들은 인격을 제거한 대상인 그들을 박멸할수록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마치 살충제를 뿌려 벌레를 제거할수록 환경이 깨끗해진다고 믿는 것과 흡사하다. 홀로코스트와 아이히만, 그리고 두 철학자의 사유를 접하면서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격리·방역·소독·멸균·정화·검출)들을 떠올리게 된다. 모두 박멸을 지향하는, 합리적인 뉘앙스를 지닌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박멸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아이히만은 바이러스를 유대인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서늘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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