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책<데미안>, 21세기 붉은 괴물로 태어나다앤 카슨이 창조한 이 붉은 괴물의 날갯짓에서 왠지 모르게 『데미안』 ‘알을 깨는 고통’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 시로 쓴 소설 과묵한 화산이 인화(印畵)한 붉은 날개의 자서전 1. 불완전한 기록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을 펼쳐 들고 적잖이 놀랐다. 평생에 처음 본 형식의 문학작품이다. 시로 쓴 소설(A Novel in Verse)이라길래 언뜻 고대 호메로스의 서사시(Epic)쯤 되려나 싶었으나,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육보격의 운율 속에서 신과 인간의 운명을 장대한 서사로 엮어냈다면, 앤 카슨의 문장은 줄글의 아늑함을 던져버리고 단어를 의도적으로 툭툭 끊어낸다. 이 책은 단순히 시와 소설의 하이브리드라고도, 에세이라고도, 학술 비평이라고도 규정할 수도 없다. 낯선 독서를 '경험'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거 보통 작품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순간부터 책의 구조와 상징을 의식하며 읽어나갔다. 앤 카슨의 세계는 '낙관주의자'를 닮았다. 결코 완벽하게 짜 맞출 수 없는 불완전한 삶도 그 자체로 자서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불완전함은 유년기의 날것 그대로인 '토마토 조각'에서 학교 교실의 '글쓰기'를 거쳐, 마침내 세상을 담는 '카메라(사진)'로 끊임없이 그 형식을 바꾸어가는 게리온의 서툰 시도들 속에서 고스란히 발현된다. 그가 이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머니의 낙관주의적 품이 존재한다. 기성 세계의 규율로 아이의 날개를 꺾지 않고, 서툰 시도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어머니의 품이다. 그러나 그 유연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게리온의 고독한 방황은 기성 세계가 요구하는 완벽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불완전한 날개를 펴는 실존적 여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심에는, 인간이 가진 가장 불완전한 도구인 '말(언어)'과 그 뒤에 숨은 위대한 '침묵'이 빚어내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2. 장미의 비명, 침묵의 영토 게리온이 마주한 첫 번째 세계인 가정은, 따뜻한 요람이 아니라 폐쇄된 폭력의 세계였다. 다섯 살 무렵 형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한 게리온은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라 자신의 상처를 기록하지도, 누구에게 제대로 털어놓지도 못한다. 자신만의 언어가 없는 게리온은 폭력 앞에서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도 뱉지 못해 내면에 고여 있던 이 지독한 침묵은, 사춘기기 소년이 된 게리온에게 구원자처럼 등장한 헤라클레스를 만나며 깨어지는 듯 보인다. 그들의 노래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두고 게리온은 마침내 자신의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구원해 줄 희망이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온은 결국 그 노래를 입 밖으로 내어 부르지 못하고, 헤라클레스와 그의 할머니의 목소리로만 울려 퍼진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이 기대했던 방식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했다. 구원의 소리(노래)마저 잃어버린 게리온은 역설적이게도 사진이라는 또 다른 침묵의 영토에 도달한다. 유년 시절의 폭력과 첫사랑의 실연을 겪은 그에게는 남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고통의 신호가 들리는 것이다. 아마도 게리온이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받는 존재들의 숨겨진 비명을 알아채는 능력은, 그가 사진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색깔이 내는 소음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기 시작한 해였다. 장미들이 정원에서 그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 그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낮의 태양 아래서 산 채로 불타는 장미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고 시인했다. 말 울음소리 같아. 게리온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말했다. 전쟁터의 말 울음소리.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134면)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에서 말한 ‘형상은 말하는 침묵’이라는 개념은 게리온의 사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피카르트의 괸점을 적용해 보면, 게리온의 사진은 침묵과 말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매체다. 사진 속 형상은 입을 열어 설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물러난 소극적인 도피처인 동시에,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한 장미의 비명과 자신의 부끄러운 붉은 날개를 소리 없이 외치는 ‘말하는 침묵’의 정거장이다. 억지로 세상을 극복하려 하지도,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은 채, 게리온은 소리 없는 렌즈 뒤에서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상처의 파편들을 덤덤하게 인화해 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3. 자기구원의 가능성 헤라클레스를 떠난 후 무감각과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선 게리온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통화 속 꿈 이야기로 기묘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큰 노랑 새—학대와 실연의 상처로 질식해가던 게리온의 초상—를 구원하는 사람은 게리온 자신이다. 게리온은 사의 한쪽 날개를 잡고 꺼내어 그저 '허공에 휙 던져버릴' 뿐이다. "계단에 물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 물에 빠져 죽은 새가 있었어— 큰 노랑 새였지 진짜로 컸어 그 새가 날개를 뻗은 채 물에 떠 있는데 네가 거기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어. "자 이제 거기서 나와라—" 네가 그 새의 한쪽 날개를 잡고 꺼내서 허공에 휙 던졌더니 그 새는 살아나서 날아가버렸어." (117면) 이 무심하고도 쾌활한 몸짓을 읽는 순간,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른다. 그러나 싱클레어가 세계라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내면의 철저한 분열과 영적 번민을 감내해야 했던 무거운 고뇌의 과정이었다면, 게리온의 비상은 수화기 너머의 먼 기억을 향해 과거의 상처와 미련을 아무렇자 않은 듯 털어내는 일상적 행위에 가깝다. 그 무심한 가벼움이 역설적이게도 진짜 구원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첫사랑의 입을 통해 자신이 새를 구하는 꿈을 전해 듣는 아이러니 속에서, 게리온은 구원의 가능성을 타인의 사랑에만 맡겨둘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가 마침내 자신을 '게리온'이라는 이름 대신 '빨강 괴물'이라 명명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쯤에서부터다. '게리온'이 타인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자신을 가리켰다면, '빨강 괴물'은 자신의 불완전한 붉은 날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기 인식을 표현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던 게리온이, 붉은 날개(내면의 이질성)를 더 이상 부정해야 할 결함으로만 여기지 않는 것.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변화다. 4. 불의 이웃, 자기 수용의 순간 빨강 괴물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카페 '미트벨트(Mitwelt,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의 구석 자리에 앉아, 형에게 보낼 엽서에 하이데거의 구절을 적었다. "Sie sind das was betreibe(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이다)." 자신을 과거의 학대와 상처를 바든 피해 경험에만 가두지 않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선언이다. 분노나 투쟁 대신 엽서라는 작은 지면에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것. 그것은 자신이 처한 한계 안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으려는 게리온의 방식이었다. 긴 여정 끝에서 게리온은 마침내 얼음 덮힌 이칸티카스(Icchantike 이칸티카는 산스크리트어로 '욕망을 가진 사람', '영구히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중생'을 뜻한다. 작품에서는 가상의 지명)에서 자신의 자서전, 즉 사진을 찍는다. 제목은 사진: #1748 '사람들이 간직하는 유일한 비밀'로, 책의 첫머리에 있었던 에밀리 디킨스의 시(작품번호 1748번)를 거울처럼 비춘다. 디킨슨의 시처럼 화산의 침묵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듯, 게리온의 사진 역시 침묵 속에서 자신과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수미상관은 말과 침묵, 기록과 비밀의 관계를 되짚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독백은 상처와 결핍을 모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채, 불완전한 자신과 타인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이다. 게리온은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우린 경이로운 존재야. 게리온은 생각한다. 우린 불의 이웃이야. 서로 팔을 맞대고, 얼굴엔 불멸을 담고, 밤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시간이 돌진하고 있다." (244면) 불완전한 조각 자체로도 삶은 충분히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게리온, 아니 빨강 괴물의 자서전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숨겨둔 날개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게 되었다. 무감각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견디는 것. 상처받지 않아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아니라, 상처받고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세상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 나는 상처를 이겨낸 승리보다 상처 입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역시 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앤 카슨을 읽는 시간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더 자세한 이야기(full version)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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