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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완전한 궤도주간 우수
사랑의 불완전한 궤도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해와 존중, 배려와 희생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사랑이 언제나 선의에서 출발하거나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지나친 소유욕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상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그를 옭아매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과 집착 사이에는 생각보다 모호한 경계가 존재한다. <러브 콜릿 BITTER>는 그 경계에 놓인 인간의 욕망을 로맨스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의 결합을 통해 조명하는 작품집이다. P.86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이길 수 없고, 남는 건 그리움밖에 없는데.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 같아. 어쩌면, 사랑도. 제3·4회 로맨스릴러 공모전 수상작을 엮은 이 책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사랑의 어두운 얼굴을 그려낸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랑이 단순히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동기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로맨스에서 상대를 향한 강렬한 감정이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면, 해당 작품에서는 그 강렬함이 다른 감정으로 변질하는 촉매가 된다. <러브콜릿 BITTER>에는 「인형가」, 「토성의 바다」, 「너의 차가운 손길에 나는 눈을 감고」가 수록되어 있다. 에도 시대의 인형 장인부터 외딴 어촌의 고아 소녀까지 각 작품이 다루는 시대와 인물은 다르지만, 세 이야기에는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때로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되고, 자신을 바라봐 주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은 그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이어진다. P.140 옛날에, 하루하루 빌어먹고 살던 그때, 내가 의지했던 사람이 너야? 아니면, 기껏해야 이틀 만에 만든 저 인형이야? 「인형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형’이라는 소재와 사랑의 방식이 맞물리는 지점이었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관계 역시 처음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성장하게 된다. 반면 인형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모습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간직하려는 마음은, 작품 속 주인공이 인형을 만드는 행위와 묘하게 닮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변하지 않는 인형처럼 간직하려는 욕망은 결국 그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고유한 가능성마저 지워버린다. 어쩌면 사랑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은 상대가 나의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더라도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토성의 바다」는 외딴 어촌 마을에서 소외된 채 살아온 소녀와 정체불명의 소년이 맺는 관계를 통해 사랑과 구원,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잔혹한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서로에게 영원한 존재가 되려는 소년과 소녀를 통해,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는 존재가 동시에 파멸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랑의 양면성을 읽을 수 있었다. 공동체에서 밀려나 있던 사람에게 자신을 바라봐 주는 단 한 사람의 등장은 다른 이의 사랑보다 훨씬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가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그 관계를 온전히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낭만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그 사람을 잃는 순간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소설 초반, 주인공은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생각으로 죽음을 결심한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구해준 토성을 만나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받고, 그를 절대적인 사랑의 구원자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이 처음에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 했으나, 이후에는 삶의 이유마저 타인에게서 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토성과의 사랑을 삶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의 삶은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식되어 간다. 자신을 구원했다고 믿었던 사랑이 도리어 삶을 위태롭게 만든 셈이다. P.264 이 몸도 버겁고, 너도 버거웠다. 네가 있어야 숨을 쉬지만 네가 있으면 언젠가 네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선택을 제한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 역시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순간 일방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극단적인 집착을 지극한 순애보로 받아들이거나, 고통을 감수하는 관계에서 사랑의 진정성을 찾으려 한다. 작품집이 다루는 불편한 감정들은 이처럼 낭만적으로 포장되어 온 사랑의 관습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로맨스와 스릴러의 결합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장르는 얼핏 상반된 감정을 다루는 듯하지만, 실상 기대와 불안, 끌림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양면성을 공유한다.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설렘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신과 공포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같은 감정이 어떤 선택과 상황을 거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장르의 만남이 매우 흥미로웠다. P.349 끝이 있다면 그건 바다가 아니니까. 나는 너와 영원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해야만 한다.

hyunseo9376
hyunseo9376
AI 쓰는 어른의 IT 상식를 알아보자리뷰어클럽
AI 쓰는 어른의 IT 상식를 알아보자

요즘은 AI 활용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 주변에서도 AI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제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점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일단 사용하고 있는 나지만,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AI 쓰는 어른의 IT 상식》은 이런 기본적인 IT 지식과 원리를 익히기에 좋은 책이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어려운 내용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일상 속 AI 서비스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되니 유익했다. 그리고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질문을 통해 배운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헷갈렸던 부분을 확인하면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파트를 추천해 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당장 궁금하거나 필요한 부분부터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편리했다. 기본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은 내용뿐만 아니라 실제 일상이나 업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정보들이 담겨 있어 더 유용하게 느껴졌다. IT나 AI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 일하면서 필요한 IT 상식을 익히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11icecandy
11icecandy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리더 수업인기 리뷰
열심히 하라고 말하기 전에, 일하는 구조부터 바꿔라

1. 읽게 된 계기 팀장 리더십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AI 시대에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관리해야 할까? 나아가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평소 가지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2. 책을 선택한 이유 저자는 30년간의 조직 경험과 팀장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한다. 실제 조직에서 마주할 법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사례가 균형 있게 담겨 있어 현실감이 있고, 글도 가독성이 좋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3. 인상적이었던 부분 (1) 3부 ‘팀을 작동하게 만드는 세 가지 엔진: 규칙, 실행, 소통’이다. 과거에는 팀장이 구성원 곁에서 업무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관리하는 방식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AI로 인해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이 크게 늘어난 오늘날, 팀장이 모든 과정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잔소리 대신 규칙을 세우고, 특정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기보다 구조를 통해 업무를 완수하며, 침묵을 깨고 건강하게 의견을 나누는 팀을 이야기한다. 백 번의 훈계보다 강력한 한 줄의 규율, 독박 업무가 아닌 구조로 완수하는 실행, 갈등을 피하기보다 건강하게 부딪히는 소통. 세 가지 원칙이 명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4. 인상적이었던 부분 (2)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내용은 10장에서 다룬 ‘팀 밖에서는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저자가 상위 상사와의 관계가 틀어진 뒤 결국 팀원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았다. 팀장의 대인관계는 개인적인 친분이나 처세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안에서 관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 팀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과 연결된다. 팀 내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팀 밖의 관계를 통해 팀의 일할 환경을 만드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5. 공감했던 부분 리더는 한 사람이 여러 구성원과 소통하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구성원 관리를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시스템과 조직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점에서 ‘잔소리 대신 시스템이 일하게 하라’는 메시지는 더욱 와닿았다. 실제 조직에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구성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일만 적당히 하려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팀장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조직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구성원 개인을 바꾸려고 애쓰기 전에, 구성원들이 움직일 수 있는 규칙과 환경을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특히 구성원 관리와 성과 창출 사이에서 고민하는 팀장에게 추천하고 싶다. 팀원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지금 우리 팀의 규칙과 실행 방식, 소통 문화는 어떤지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리더는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필요한 자원을 활용하며,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리더십은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을 넘어, 사람들이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과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된 리더십의 본질이다. #AI시대 #리더십 #팀장리더십 #조직문화 #성과관리 #리더십교육 #책추천 #도서후기

oxygen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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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3 내가 안아줄 수 없는 연인의 슬픔에 대하여 인기 포스트
261013 내가 안아줄 수 없는 연인의 슬픔에 대하여

딸과의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차마 울지도 못하는 연인의 눈빛을 보며, 순간 우리가 잘못 그린 그림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남자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 거지, 싶었지만, 그 조차도 비겁한 생각이었다. 지난 6월 우리 관계가 발각되는 실제 사건과는 별개로 그와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을 한번은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순간은 모두 그와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의 결과를 얄팍한 변명으로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그의 슬픔을 안아줄 수 없는 초라한,, 연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았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그가 느낄 슬픔, 죄책감이 어느 정도 깊이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태산처럼 바다처럼 나를 품어주던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을 느낄 그의 딸이 감당해야 할 아픔은 너무 잘 알아서, 그와 통화를 마치고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야근했고 그의 아내가 내게 붙인 위치추적기 때문에 경찰과 여러번 통화하고 등등 여러가지 핑계로 그 슬픔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순간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 내게 드는 감정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가 날 만난 걸 조금은 후회하지는 않을지, 지금은 날 지켜준다고 하지만 또 힘들어지면 날 두고 가지는 않을지, 누구보다 성실하게 반듯하게 잘 쌓아올린 이 남자의 인생을 내가 흠집내면서 꼭 이렇게 곁에 있어야 하는 건지, 이 마음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물론 모든 사랑은 끝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기적인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하기 때문에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잘못된 그림 같은 지금 상황 또한 그와 내가 놓은 덫이고 같이 고쳐나가는 것으로 책임을 져야겠지. 매일 나를 달래주면서도,, 그 남자는 아마 나에게 앞으로 많은 날동안 느낄 그 슬픔을 다 털어놓지 못할 것이다. 이 남자가 나이들어가는 것을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지금 못다한 위로를 대신할 수 있을까? 헌정은 이별하던 날 들을 수 있었는데, 사랑의꿈은 언제 듣게 될까, 언제 듣더라도 그 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이기를,,

apiacere85
apiacere85
<데미안>, 21세기 붉은 괴물로 태어나다요즘 인기 책
<데미안>, 21세기 붉은 괴물로 태어나다

앤 카슨이 창조한 이 붉은 괴물의 날갯짓에서 왠지 모르게 『데미안』 ‘알을 깨는 고통’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 시로 쓴 소설 과묵한 화산이 인화(印畵)한 붉은 날개의 자서전 1. 불완전한 기록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을 펼쳐 들고 적잖이 놀랐다. 평생에 처음 본 형식의 문학작품이다. 시로 쓴 소설(A Novel in Verse)이라길래 언뜻 고대 호메로스의 서사시(Epic)쯤 되려나 싶었으나,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육보격의 운율 속에서 신과 인간의 운명을 장대한 서사로 엮어냈다면, 앤 카슨의 문장은 줄글의 아늑함을 던져버리고 단어를 의도적으로 툭툭 끊어낸다. 이 책은 단순히 시와 소설의 하이브리드라고도, 에세이라고도, 학술 비평이라고도 규정할 수도 없다. 낯선 독서를 '경험'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거 보통 작품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순간부터 책의 구조와 상징을 의식하며 읽어나갔다. 앤 카슨의 세계는 '낙관주의자'를 닮았다. 결코 완벽하게 짜 맞출 수 없는 불완전한 삶도 그 자체로 자서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불완전함은 유년기의 날것 그대로인 '토마토 조각'에서 학교 교실의 '글쓰기'를 거쳐, 마침내 세상을 담는 '카메라(사진)'로 끊임없이 그 형식을 바꾸어가는 게리온의 서툰 시도들 속에서 고스란히 발현된다. 그가 이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머니의 낙관주의적 품이 존재한다. 기성 세계의 규율로 아이의 날개를 꺾지 않고, 서툰 시도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어머니의 품이다. 그러나 그 유연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게리온의 고독한 방황은 기성 세계가 요구하는 완벽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불완전한 날개를 펴는 실존적 여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심에는, 인간이 가진 가장 불완전한 도구인 '말(언어)'과 그 뒤에 숨은 위대한 '침묵'이 빚어내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2. 장미의 비명, 침묵의 영토 게리온이 마주한 첫 번째 세계인 가정은, 따뜻한 요람이 아니라 폐쇄된 폭력의 세계였다. 다섯 살 무렵 형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한 게리온은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라 자신의 상처를 기록하지도, 누구에게 제대로 털어놓지도 못한다. 자신만의 언어가 없는 게리온은 폭력 앞에서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도 뱉지 못해 내면에 고여 있던 이 지독한 침묵은, 사춘기기 소년이 된 게리온에게 구원자처럼 등장한 헤라클레스를 만나며 깨어지는 듯 보인다. 그들의 노래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두고 게리온은 마침내 자신의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구원해 줄 희망이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온은 결국 그 노래를 입 밖으로 내어 부르지 못하고, 헤라클레스와 그의 할머니의 목소리로만 울려 퍼진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이 기대했던 방식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했다. 구원의 소리(노래)마저 잃어버린 게리온은 역설적이게도 사진이라는 또 다른 침묵의 영토에 도달한다. 유년 시절의 폭력과 첫사랑의 실연을 겪은 그에게는 남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고통의 신호가 들리는 것이다. 아마도 게리온이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받는 존재들의 숨겨진 비명을 알아채는 능력은, 그가 사진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색깔이 내는 소음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기 시작한 해였다. 장미들이 정원에서 그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 그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낮의 태양 아래서 산 채로 불타는 장미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고 시인했다. 말 울음소리 같아. 게리온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말했다. 전쟁터의 말 울음소리.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134면)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에서 말한 ‘형상은 말하는 침묵’이라는 개념은 게리온의 사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피카르트의 괸점을 적용해 보면, 게리온의 사진은 침묵과 말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매체다. 사진 속 형상은 입을 열어 설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물러난 소극적인 도피처인 동시에,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한 장미의 비명과 자신의 부끄러운 붉은 날개를 소리 없이 외치는 ‘말하는 침묵’의 정거장이다. 억지로 세상을 극복하려 하지도,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은 채, 게리온은 소리 없는 렌즈 뒤에서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상처의 파편들을 덤덤하게 인화해 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3. 자기구원의 가능성 헤라클레스를 떠난 후 무감각과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선 게리온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통화 속 꿈 이야기로 기묘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큰 노랑 새—학대와 실연의 상처로 질식해가던 게리온의 초상—를 구원하는 사람은 게리온 자신이다. 게리온은 사의 한쪽 날개를 잡고 꺼내어 그저 '허공에 휙 던져버릴' 뿐이다. "계단에 물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 물에 빠져 죽은 새가 있었어— 큰 노랑 새였지 진짜로 컸어 그 새가 날개를 뻗은 채 물에 떠 있는데 네가 거기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어. "자 이제 거기서 나와라—" 네가 그 새의 한쪽 날개를 잡고 꺼내서 허공에 휙 던졌더니 그 새는 살아나서 날아가버렸어." (117면) 이 무심하고도 쾌활한 몸짓을 읽는 순간,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른다. 그러나 싱클레어가 세계라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내면의 철저한 분열과 영적 번민을 감내해야 했던 무거운 고뇌의 과정이었다면, 게리온의 비상은 수화기 너머의 먼 기억을 향해 과거의 상처와 미련을 아무렇자 않은 듯 털어내는 일상적 행위에 가깝다. 그 무심한 가벼움이 역설적이게도 진짜 구원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첫사랑의 입을 통해 자신이 새를 구하는 꿈을 전해 듣는 아이러니 속에서, 게리온은 구원의 가능성을 타인의 사랑에만 맡겨둘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가 마침내 자신을 '게리온'이라는 이름 대신 '빨강 괴물'이라 명명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쯤에서부터다. '게리온'이 타인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자신을 가리켰다면, '빨강 괴물'은 자신의 불완전한 붉은 날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기 인식을 표현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던 게리온이, 붉은 날개(내면의 이질성)를 더 이상 부정해야 할 결함으로만 여기지 않는 것.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변화다. 4. 불의 이웃, 자기 수용의 순간 빨강 괴물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카페 '미트벨트(Mitwelt,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의 구석 자리에 앉아, 형에게 보낼 엽서에 하이데거의 구절을 적었다. "Sie sind das was betreibe(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이다)." 자신을 과거의 학대와 상처를 바든 피해 경험에만 가두지 않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선언이다. 분노나 투쟁 대신 엽서라는 작은 지면에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것. 그것은 자신이 처한 한계 안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으려는 게리온의 방식이었다. 긴 여정 끝에서 게리온은 마침내 얼음 덮힌 이칸티카스(Icchantike 이칸티카는 산스크리트어로 '욕망을 가진 사람', '영구히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중생'을 뜻한다. 작품에서는 가상의 지명)에서 자신의 자서전, 즉 사진을 찍는다. 제목은 사진: #1748 '사람들이 간직하는 유일한 비밀'로, 책의 첫머리에 있었던 에밀리 디킨스의 시(작품번호 1748번)를 거울처럼 비춘다. 디킨슨의 시처럼 화산의 침묵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듯, 게리온의 사진 역시 침묵 속에서 자신과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수미상관은 말과 침묵, 기록과 비밀의 관계를 되짚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독백은 상처와 결핍을 모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채, 불완전한 자신과 타인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이다. 게리온은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우린 경이로운 존재야. 게리온은 생각한다. 우린 불의 이웃이야. 서로 팔을 맞대고, 얼굴엔 불멸을 담고, 밤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시간이 돌진하고 있다." (244면) 불완전한 조각 자체로도 삶은 충분히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게리온, 아니 빨강 괴물의 자서전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숨겨둔 날개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게 되었다. 무감각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견디는 것. 상처받지 않아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아니라, 상처받고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세상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 나는 상처를 이겨낸 승리보다 상처 입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역시 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앤 카슨을 읽는 시간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더 자세한 이야기(full version)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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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세대빛나는 리뷰어
[협찬][초고령사회][5~60대를 정의내린 책] 이동우 교수의 거부세대

<거부세대>를 읽어보기에 앞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대를 일컫는 명칭을 정리해 보았어요. 침묵세대: 1928~1945년생 베이비부머: 1946~1964년생 (한국은 1955~1963년생을 1차로 보기도 함) X세대: 1965~1980년생 (또는 1970년대생) 밀레니얼(M)세대: 1981~1995년생 Z세대: 1996~2010년생 MZ세대: 밀레니얼과 Z세대를 묶어 부르는 한국식 신조어 알파세대: 2011년 이후 출생자 거부세대는 2차 베이미부머 세대를 통칭하는 말인데 뭔가 거부한다는 단어의 적극성 때문인지 그 세대에 해당하는 저로써는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 거부세대의 특징은 이름처럼 그 세대에 주어진 조건을 6가지 측면에서 강하게 거부한다고 하는데, 남이 이름 지어준 호칭, 나이를 구분하는 상품을 거부하고, 같은 연령대보다는 다양한 연령층과 함께 어울리고 은퇴 후 휴식을 거부하며, 자신이 살던 주거공간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바라고 재산을 물려주기를 거부한다고 하는데요. 생각해보면니 저나 제 친구들 동료들의 특징에 딱 부합되네요. 1차 2차 베이비부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지요. 그러니 그 세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짚어야 소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요. 표준화된 사회에서 계속 살아왔던 거부세대는 은퇴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마음을 단단히 바꿔먹었습니다. 이젠 남들과 똑같은 건 싫어~~~ 시니어 할인은 땡큐지만 나를 시니어 취급하는 건 못견디는 세대. 그래서 지하철에서도 자리 양보받는 걸 아주 싫어하지요.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나는 물려주지 않는다.' '상속의 거부'였는데요. 부모 공양의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들에게 돌봄을 받기 어려운 거부세대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증여나 상속 시 장남에게 많이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잘해준 사람을 챙긴다는 점도 큰 변화이지요. 아들 딸이 의미없어지기도 했구요. 70대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박막례 할머니, 그리고 패션계에서 나이가 무색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시는 밀라논나, 이런 분들이 선봉에 서계시는 거부세대. 내게 주어진 것이 불합리하다면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은퇴 후의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MZ세대보다 더 개성있고 자신만만한 거부세대. 화이팅입니다~~~~

veeni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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