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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주간 우수
존재를 거부당하는 존재 -노 피플 존(정이현)

제목을 보는 순간 『오디세이아』의 '노맨(No Man)'이 떠올랐다.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의 에릭도 함께.이름을 감추는 존재.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존재를 거부하면서도, 누구보다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현대사회는 어쩌면 '노 피플 존'으로 가득하다.믿고 읽는 작가 정이현.그녀의 날카로운 메스 앞에서는 어떤 상처도 끝내 숨지 못한다.9년 만의 신작.오랜 침묵 끝에 돌아온 작가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지우며 작품만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닐까.'노 피플 존'을 오래 통과한 사람처럼.첫 번째 단편 「실패담 크루」를 읽으며,실패조차도 일등이어야 한다고 믿는 현대인의 초상을 씁쓸하게 바라보게 된다.9편의 단편 작품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실패담 크루」는 가장 먼저 자신의 처지를 뼈 아프게 되돌아 보는 마력을 지닌 '실패'의 재발견이다. 아, 실패에도 급이 있구나, 계단이 있구나, 사다리가 있구나, 그리고 실패라는 단어에 이미 보이지 않는 존이 있구나. 하는.하지만 속상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임을 쓸쓸히 자인했다. (실패담 크루, 20쪽)하나의 단편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또 다른 실패는 아니다. 그 정도로 내가 연약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다져진 내공은 '실패'가 아니라 '시선'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그건 재발견이다.작가가 밝힌 것처럼, 잇몸 사이사이 끼여 있는 음식물을 제거해주는 치실과 같은 작품이 되고 싶다 한 그 소망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zone에 대한 관찰은 예리하고 아프고 관통한다.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타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 평생 살면서 고치집처럼 둘러 쳐진 그 견고하면서도 여리여리한 편견과 고정관념과 당연하다고 느끼는 각자의 상대적인 가치관.그래서 노 키즈 존, 노 시니어 존, 급기야 저자의 제목처럼 <노 피플 존>이 생기지 않는가. 나도 적당한 거리를 좋아한다. 내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지나치게 나를 배려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래서 아직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낯선 층에서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선뜻 인사하는 것도 어색하다. 어떨 땐 그냥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내기도 한다. 작은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같이 몇 초를 같이 지내는 것조차 호흡이 부드럽지 않다.노 키즈 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얼마든 어리든 또는 얼마나 늙었든 자신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 피플 존. (단 하나의 아이, 157쪽)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동시대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것처럼 신비로운 것은 없다. 정이현 작가는 사회, 도시, 타인이라는 구조적 네트워크를 치밀하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표현한다. 책을 읽다 보면 사실은 그것이 바로 내 얘기임을. 내가 장막을 둘러치고 있고, 타인을 멀리 하고 있고,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있고, 너희는 나를 몰라, 속으로 외치며 혼자 비분강개하고 있음을 여실히, 그러나 조용히 깨닫게 해 준다.여전히 존재하는 계층의 문제는 얼마나 상대적인 것일까. 실패담 크루에서 적나라하게 만나볼 수 있다. 그건 이미지다. 극한대로 몰아 붙인 가정의 상황일 뿐, 우리는 적당한 간격의 사다리 안에서 복닥거리며 계층의 열등감 속에서 산화한다.오늘도 그렇게 불타 오른다.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생글
생글
나를 위한 엔딩노트리뷰어클럽
나를 위한 엔딩노트

인생엔딩에는 정해진 시간과 나이가 없다. 가끔씩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지?? 라는 의문점을 가져봤다. 양가부모님과 남편의 계좌관리를 모두 내가 하고있어서 공인인증서관리, 정기결제카드 그리고 아이들의 보험관리까지...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보이지 않게 나만 알고있는 정보들이 적지 않았다. 한번쯤은 어딘가에 정리해놔야지...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서평단에 선정이 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나의 엔딩을 준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벌써 죽음을 준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준비해서 나쁠건 없다는 생각으로 서평단에 신청했고 선정이 되었다. 막상 책을 받아들고 펼쳤는데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정리하고 내 삶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장은 나의 어릴적 학창시절로 날 보내주었다. 어느학교를 다녔는지 언제 졸업했는지(사실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기록하는 부분이 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서 직장이력은 몇가지 되지 않더라... 내가 누군지 다시 생각하게되고 유년시절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_본문 42p ->이 문장은 내 삶에 주인공은 나였음을 다시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 키워내고 부모님 챙기기 바쁜 요즘....나를 기준으로 가족, 친구 등 모든 지인들의 정보를 적는 공간이 있다. 이제 여기서 누구를 적고 누구를 뺄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기준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분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2장은 나의 '만약의 경우'를 이야기 한다.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나 루게릭같은 난치병은 감기처럼 쉽게 치료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있다. 가족의 도움 없이는 혼자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너무 슬프겠지만...그럴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준비해야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면 가족들이 나를 얼마나 돌봐줄 수 있는지 타인의 도움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그에 대한 경제적인 준비는 얼마나 해놔야 하는지 기록할 수 있어서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가족들의 보험가입상황을 모두 알고있지만 배우자도 나의 보험가입상황을 다 알지는 못할 것 이다. 인증서 비밀번호나 계좌 비밀번호도 공유하고있지만 얼마나 기억해줄지 모르기때문에 어딘가에 기록하고 잘 전달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명치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사후 시신도 기증할 수 있다면 어떤식으로든 나누고 싶다. 어차피 죽으면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가 될텐데....나의 신체 일부분이라도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남기고 떠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죽음이 아닐까??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심폐소생술 장면을 떠올리면서 만약 저 상황에 누워있는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가 "나"라면 그냥...보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3장은 나의 자산에 대해... 요즘은 오픈뱅킹을 이용하고 무통장거래도 많은데...지문인식말고 다른 로그인방법이나 은행계좌별 통장, 도장 위치. 비밀번호를 구체적을 적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나의 재산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없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알고있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뿐만아니라 내 계좌나 카드에 자동이체가 되어있는 부분을 기록할 수도 있어서 연체되거나 찾을일이 있을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디지털 자료들도 누군가 정리해줘야하는 목록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했다. 나의 SNS에 있는 수많은 기록들과 사진들...계정탈퇴를 내손으로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할 상황을 대비해 이메일주소와 비밀번호도 기록해둬야 할 필요가 생겼다. 4장 남기고 가는 것 내가 하늘나라 소풍을 떠났을 때 뭐가 남을지 뭐가 남으면 좋을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례문화도 많이 간소화되고 무빈소장례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 불필요한 비용지출이 없어지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이 변화는 적극찬성이다. 조문객도 고인의 가족들도 부담은 덜고 진심만 오가는 의미있는 마지막 추모행사로 여겨지면 좋겠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내 조부모님을 모셨듯이 수목장이나 납골당에 모시겠지만 만약 내가 죽으면 난 바다장을 하고싶다.(자세히는 모르지만 바다가 오염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납골당에 있으면 답답할 것 같고 수목장에 있으면 자식들이 멀어서 자주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어려서는 부모님안에, 결혼하고는 내 가족안에서만 살아왔으니 죽어서라도 망망대해를 누리고싶다는 친정엄마(아직 살아계심..ㅎ.ㅎ)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선택권이 있다면 나도 바다장으로 하고싶다고 생각해왔다. 마지막으로 유언장.... 드라마에서 재벌회장님의 유언장을 봐 온 나오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무슨 유언장인가...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남기고 혹시 재산이 있다면 아이들이(삼남매) 돈 가지고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 아직 작성하지는 못했다...그래도 빠른 시일안에 생각정리가 끝나서 꼭 작성해두고싶다. 총평.... 제목과 책내용의 요약을 보고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다시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삼남매맘미이
삼남매맘미이
가호인기 리뷰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뒷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라는 소식에 예약 구매했다. 주말이 지나서야 책을 펼쳤는데,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말하는 개미핥기의 등장부터 흥미진진했다. 재규어와 흰개미 여왕, 오토바이를 타는 수호천사까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이야기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다. 특히 ‘수호천사계의 이단아’라는 표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질문들이 숨어 있었다. 진실이 반드시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사람과 세상을 판단한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같은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가호가 마주하는 기묘한 세계를 따라가다 보니,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소설 후반부의 어머니와 관련된 장면이었다. 가호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장면을 조금 다르게 읽었다. 가호가 죽인 것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옛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기억과 감정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떠나보내고, 이제 한 사람으로서의 어머니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두 사람은 이전과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하나 오래 머문 질문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였다. 그림책 작가인 가호는 낯선 세계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글을 쓰는 나에게도 이 부분은 특별하게 다가왔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는 고민할 수 있다. 처음에는 기묘한 모험이 궁금해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진실과 거짓, 원인과 결과, 가족과 관계에 관한 질문들을 만났다. 가호는 낯선 세계의 출구를 찾아 헤맸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출구도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오랫동안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의심하는 일. 그렇게 익숙했던 세계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책을 덮고도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lhjhihihi
lhjhihihi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유선경 작가님 인생상담소 답변인기 포스트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유선경 작가님 인생상담소 답변

필사할 때 유의할 점이 있을까요? 필사하는 문장을 손으로만 따라 쓰는 것입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보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내가 손으로만 쓰고 있구나 싶은 순간에는 필사를 멈추고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글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책을 읽고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 작가적 상상과 능력을 모두 담아 글을 집필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의 영감은 어디에서 발현되고 발견하시나요? 자신만의 글쓰기 창작의 노하우가 있을 까요? 모든 글의 영감은 ‘관심’과 ‘관찰’입니다.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글쓰기 창작의 노하우라면 ‘시간’과 ‘수정’입니다. 시간과 공을 들이고, 계속 수정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게 너무 어려운데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자신이 가장 익숙하고 잘 아는 이야기를 자신감 있게 마구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잘 쓰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시작해보세요. 수정하면 됩니다. 작가님, 중학생 때부터 모으신 필사 노트 분량만 1,500매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어른의 어휘력'부터 이번 책까지 늘 '살기 위해 어휘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요즘처럼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글을 대충 넘겨보는 시대에, 굳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문장을 옮겨 적는 필사가 우리 일상과 마음 관리에 어떤 진짜 변화를 만들어주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삶의 변화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고, 그것을 기억으로 새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충 보는 것은 거의 완벽하리만치 잊히지요. 몰입하여 행하는 필사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문장을 완벽하게 기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문장을 필사하는 동안 자신이 느꼈던 감 정과 새로운 앎에 대해서 그러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변화가 시작됩니다. 작가님은 오랜 시간 필사를 이어오시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 이나 감정 표현에 어떤 변화가 생기셨나요? 어휘력을 풍부하게 키우고 싶은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필사 습관도 궁금합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한 다음에는 꼭 그 문장을 음미해보세요. 자신의 마음에 왜 이 문장이 들어왔는지 함께 생각해보면서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어휘가 그 문장에서 어떻게 작용 하고 있는지 느껴보세요. 그 어휘 대신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어휘를 넣으면 어떻게 문장이 달라지는지도 따져보세요. 제가 오랜 기간 필사를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점은 지금까지 적은 내용과 궤를 같이 합니다. 저의 생각과 감정, 의도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이러한 능 력은 인간살이에 꽤 유용합니다.

인문PD
인문PD
가호요즘 인기 책
가호

동화나 그림책을 읽어도 나올 법하지 않은 개미햝기, 재규어, 흰개미 여왕 같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현실과 꿈과 이세계, 그림책의 서사가 혼재 된 듯한 묘한 세계가 완성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런 몽환적인 있을 법하지만 당연히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의심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세계 속에 입장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주인공은 스물여섯 살 그림책 작가 가호. 소설은 그녀가 처음 만난 연상의 남자에게 외모를 깎아내리는 말을 듣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당신처럼 못생긴 여자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22) 불쾌할 만큼 직설적인 첫 장면이지만, 덕분에 독자는 단숨에 가호의 편에 서게 된다. 이야기는 가호가 도쿄 외곽의 마을로 이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치고, 가호는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해결사가 되기로 한다. 그 길 위에 개미핥기, 재규어, 흰개미 여왕 같은 기묘한 존재들이 나타난다. 현실과 비현실이 맞닿는 하루키 특유의 세계는 그대로지만, 그 세계를 걷는 발걸음은 훨씬 경쾌하다. 상실의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를 오래 응시하던 이전 주인공들과 달리, 가호는 묻고 부딪치고 움직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하루키 작품 가운데 가장 읽기 쉽고 속도감 있는 모험담처럼 읽힌다. 마치 가호가 쓰고 있는 재미난 모험 그림책 갔다. 하루키는 긴 투병 끝에 다시 펜을 들었고, 이 소설을 '성장과 회복의 이야기'라고 불렀다. 일흔이 넘은 작가가 스물여섯 여성의 눈을 빌려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놀라움이다. 가호에게서 하루카의 연령이나 말투가 묻어나지는 않았다. 완벽한 여성 그자체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 전 작품들과 다르게 굉장히 가정적인 소설일 수 있다. 엄마와 아빠를 구하는 과감한 결단의 액션을 통해서 하루키는 평범하지만 일상적인 가정의 삶을 되찾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소설 속에는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공한다. 가호에게 끌리듯 다가 오는 수상한 조연들(?) 모두 글감이다. 내 삶을 쓰는 것은 나다. 다른 사람이 판단 내리고 수호천사가 되놓고 개입해서 도와주는 삶이 아니다. 내 얼굴을 판단해도 기억을 왜곡하고 현실을 직시 못하게 해도 나를 찾아 써내려간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223) "그것이 주인공인 당신의 책무입니다. -받아들일지 내칠지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당신 역할입니다. (170) *********** 1. 병든 인간의 눈으로 보면 더 병든 건 오히려 세상이거든(23) 2. 병든 인간을 위해 마련된 디즈니랜드 같은 곳. 그리고 나한테는 다행히 그 장소를 느긋하게 즐길 만한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있어(24) 3. 임시방편으로 일단 붙이고 다니던 얼굴이 그때는 이미 진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행하며 체험한 갖가지 일이, 가는 곳마다 마음을 스쳤던 색색깔의 생각이, 희망이며 슬픔이며 동경이며 실망의 조각조각이 그녀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풍요롭고 생생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32) 4. 자비도 편견도 예단도 버리고 단번에 숨통을 끊는 겁니다. (105) 5. 진실과 허위를 가르는 한 줄을 똑똑히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173) 6. 진실은 때로 몇 가지 측면을 지닌다. 보는 각도에 따라 진실은 모습을 바꾼다.(211) 7. 한 가지 마음에 새겨뒀으면 하는 게 있어. 그게 뭐냐면,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심각한 혼란은 대부분 원인과 결과 사이의 등가성을 찾아내지 못해서 생긴다는 거야 "(322)

쉼
쉼
순례 주택빛나는 리뷰어
순례자의 마음으로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다!

안정된 생활을 이루고자 하는 서민들의 삶에서 가중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택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이사할 걱정 없이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세와 월세를 지불하면서 세입자로 살아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입자들이 주변의 시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할 수 있는 건물을 소재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 건물을 일컬어 ‘순례 주택’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건물주의 이름이 김순례이기도 하지만, 주인 스스로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자세로 살고자 하기 때문에 붙여진 건물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물주의 이름까지도 ‘순례(順禮)에서 순례자를 뜻하는 순례(巡禮)로’ 개명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젊은 시절 목욕탕에서 ‘유능한 세신사’로 돈을 벌어 순례 씨는 1층 양옥집을 구입했으며,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마당 일부를 시에서 매입하여 생긴 보상금으로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더욱이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건물의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는 시세를 따라 정하지 않”고 단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았다.” 따라서 순례주택에서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 좀처럼 나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순례 주택 들어 가는 게 장기 전세 붙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언급되고 있을 정도이다. 순례 주택의 “입주자는 와이파이, 옥탑방, 옥상 정원을 공유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사람에게는 보증금 없이 다른 세입자들과 동일한 월세로 입주하도록 했다. 거북동의 순례 주택 인근에는 ‘모두 아홉 개 동으로 이루어진’ 고층 아파트 ‘원더 그램디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파트 사람들은 순례 주택이 있는 “빌라촌이랑 섞여서 집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여기고 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거북중학교 3학년인 ‘오수림’으로, 부모를 비롯한 언니와 수림이까지 4식구는 외할아버지 소유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대학의 시간 강사인 아빠는 대학원 후배인 엄마와 결혼을 해서, “재수, 삼수도 아니고 교수가 되려고 15수를 하고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더욱이 엘리트임을 내세우는 아빠가 “신혼집은 장인에게 얹혀사는 것으로, 부족한 돈은 부모형제에게 받아 쓰는 것으로 해결”하는 상황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얹혀사는 딸 부부가 불편해서 할아버지는 두 달을 못 버티고 본인 집에서” 나와, 돌아가실 때까지 순례 주택에 살았다. 수림이는 “언니가 태어난 지 355일 만에 태어났”으며, 두 아이의 출산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된 엄마로 인해 순례 주택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연스럽게 ‘즐거운 은퇴 생활’을 준비하고 있던 건물주 순례 씨가 수림이를 맡아 키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림이는 순례 씨의 ‘최측근’으로 불리고 있으며,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1군’으로 여기면서 수림이는 여전히 순례 주택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아파트 주민의 인터뷰를 내보낸 적이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촌을 폄하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수림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사고’로 인해 엄마는 아파트 사람들에게 공개사과를 하고, 아파트 카페의 운영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빌라촌 사람들까지 언마의 발언에 분개하며 벼르고 있던 상황이 벌어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투자를 했던 태양광 사업으로 사기를 당해, 수림이 가족들은 할아버지 소유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건물주인 순례 씨의 배려로 할아버지가 살던 순례 주택 201호로 입주를 하면서, 가족들이 비로소 ‘빌라촌’의 주민이 되는 내용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다른 세입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조금씩 상황을 인식하는 엄마의 모습과 여전히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빠와 언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세태에 대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고 이해된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행복한 삶을 꾸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고 파악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 https://cafe.daum.net/Allwithbooks )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is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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