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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
- 작성일
- 2024.9.10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글쓴이
- 김명임 외 8명
한겨레출판



이미 작고하신 우리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
1923년 창간되어 1934년까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총 73권의
《신여성》이라는 이름의 잡지가 발행되었다.
가정 안에서 조용히 숨겨진 존재,
가사나 육아에만 전념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을 챙기는
수동적인 삶이 당연한 것으로 비치던
그 시절의 사회에서 말하는
신여성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 다가오면 흰 구두와 양산을 사고,
해수욕을 즐기거나 벚꽃 놀이를 즐긴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펌을 하거나
과감하게 짧은 단발로 자르고,
가끔 테니스와 골프도 친다.
좋아하는 음반을 사 모으거나
자유연애로 데이트를 즐기는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요즘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는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때의 신여성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했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 이런 소비와 문화향유가 있었다니
과연 사실일까 싶을 만큼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새로운 외양을 장착하고
집 '안'에서의 삶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문화충격 그 자체.
시스루 스타일의 의상이나 단발 등
서양에서 들여온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신여성의 모습,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여자가 직접 가게에 들어가 사는 것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당시의 모습 등은
꽤나 흥미를 끄는 소재로,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담은 이 책에
재미있게 접근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근대의 스타이자 주목받는 신여성이 겪었던
각종 스캔들과 소문,
그들을 향한 가학적인 폭력은 물론
신여성의 실체를 파헤치겠다며
정의라는 논리 아래 '은파리'라는 이름의
관음적 시선으로 여성을 미행하고
불편한 소문을 양산했던 당시의 시선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여성의 '변화'를 비난하고 비판하게끔
유도했던 잡지의 진짜 '의도'를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잡지의 주된 집필진은 대부분 남성,
여성 잡지임에도 여성 필자의 비율은
30퍼센트 안팎에 불과했다고 한다.
근대도시의 신교육과 신문물을 열망하며
'안'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을
조명하고 소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과
시빗거리를 짚어내고,
새롭게 공적 영역에 나타난 여성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체하며
혹은 꾸짖고 계도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우는 이 잡지 속의 시선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여성들이 잘 모를 것임을 전제하고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당시의 '맨스플레인(mansplain)'이기도 했고,
사실 《신여성》은 여성이 '주체'인 잡지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잡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가나 영화 등 당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던
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집단보다 먼저 나서
수용자와 생산자가 되고자 했던 여성의 모습,
자기들만의 문화를 쌓아나가던 그들의 적극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자유로운 연애와
성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행보까지
그들의 '불온한' 행보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못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
여성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가득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세워나가고자 애써온
신여성의 모습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시대의 차이가 있기에
고리타분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1920-30년대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곱디 고울 리 없겠다는 짐작은 있었지만
남성 중심적 잣대로 바라본
새로이 등장한 신여성의 이미지는
책을 읽는 내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인 양
그들이 강요하는 시선과 비난 아래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뜨거운 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이고 강압적인 시선에
강력히 반발하는 여성들의 백래시
(backlash - 진보적인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를 마주하는 짜릿함,
그 시대를 살아던 신여성들이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 자신으로 서고자,
또 자신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내고
바깥으로 나온 용기 있는 시작과 도전은
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한편으로는 그 시도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신여성의 등장부터
그들을 다시 익숙하고 폐쇄적인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내몰아가는
남성들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과거'의 일임에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지에 소개된 2-30년대 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남성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아내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성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용기 있게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또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는
신여성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비난의 시선으로 그치지 않는 아이러니함,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의 '창기'가 다름없다고 평하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가정에 소홀하거나
혹은 여성성을 잃어버렸다는 평으로,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며 가정을 챙기는 여성은
'남성의 기를 죽인다'라는 논평이 덧붙여졌으니
여성들의 삶은 참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의 거리에서 가정으로 되돌아간
100년 전 신여성을 재조명한 이 책,
《신여성》을 다시 읽으며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똑같은 의미로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깨닫고
현재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에 대한 자유,
그리고 규정되고 강요되는 역할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당대 신여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목소리는
여전히 유리천장, 워킹맘, 경력단절 등의
용어로 뒷받침되는 현대에서의
신여성의 분투기로 이어져
지금도 여전히 달려가는 길 끝에 있을
열린, 혹은 막힌 출구를 향해 매일을 쌓아가는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100년도 넘는 시간을 달려
함께 걸어주는 그 시대의 신여성들의 발걸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의 끝없는 길에 용기를 더해주었다.
지금 마주하는 우리의 현실이
그때의 신여성들이 그랬듯
변화 없이 아스라이 저물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그때의 여성들에게
지금의 우리가 따뜻한 격려를 얹어줄 수 있는
단단한 동료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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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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