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의책읽기
  1. 이재선의살아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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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시험에 대비하여 석 달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시작은 했지만, 합격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합격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동료들과의 술자리나 잦은 잔업 등으로 계획이 어긋날 때는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술을 마시고도 공부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그처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셋째 동생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당시 동생은 고입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후에도 기회가 주어지기 전에 기회를 찾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동생에게서 여러 번 자극과 용기를 얻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나를 괴롭혔던 수학이 많이 부족하기는 했어도 나머지 과목에서 상당한 득점을 하여 첫 도전한 검정고시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가야할 때가 되었다. 수원에 있는 병무청에 신체검사를 갔다가 아무래도 3년여를 군대를 간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수직업훈련원에 다닐 때 농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허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방위로 판정을 했다. 1980년 9월부터 방위소집을 받아 회사를 휴직하고 공군부대로 출퇴근을 했지만 그 1년 2개월은 내게 있어서 허송세월에 불과했다.




1981년 11월 방위소집을 끝내고 현대건설 (주) 관악공장에 복직을 일단 하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만 늘어가고 있었다. 계속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나의 희망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외로 취업을 나가 돈을 벌어 그동안 고생하신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고민만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동생이 학력고사에서 전국 3,04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올려 비록 돈이 없어 서울대학교에는 가지 못했으나 장학제도가 있는 중앙대하교 법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동생은 초등학교 졸업 후에 고입, 대입겁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입학하고 그것도 등록금 면제에 월 20만 원 정도의 도서보조비까지 받으면서 다닌다고 하니 나도 이 제도를 이용하면 진학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고 동생이 그 정도 성적을 올렸으니 나는 못해도 전국 5,000등 안에는 들 것 같았고 그것을 목표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입이 없는 나로서는 동생이 받는 돈 중에서 매달 5만 원씩 받아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나는 서울 노량진의 대성학원 종합반 전형시험에서 영어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올렸으나 나의 취약과목인 수학은 여러 문제 중 1번 문제 단 한 문제밖에 풀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는 했어도 영어성적 덕분에 합격하여 어려웠던 대학입시 준비 시절이 시작되었으니 이때가 1982년 3월이었다.




그 후 나는 초기의 한두 달을 제외하고는 하루 5시간밖에 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 일요일에는 푹 자기로 했다. 대성학원에 들어가서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얻어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항상 수학이 나를 괴롭혔다. 또한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 1년 동안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에 그것도 장학금을 받아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늘 불안했다.




사실 항상 수학이 문제였다. 수학의 경우 내가 유일하게 단과반까지 다녔음에도 기초실력 부족으로 학력고사에서 시간이 남아돌 정도로 문제를 풀지 못하여 50점 중 30점을 얻는데 그쳤다. 결국 수학 때문에 전국 목표 등수보다 많이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학의 나쁜 결과와 그해 시험의 평이함으로 인해 전국 12,805등에 그치고 말아 실망도 컸으나 이제 다시 시험 준비를 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막다른 선택을 할 수 박에 없었다.




시험장에서 채점한 점수는 288점이었는데 경기도교육위에 가서 받은 성적은 290점이었다. 거기에 계신 분이 나보고 세무대학을 가라고 했으나 거기는 2년제라서 가지 않았다. 고려대학교에 전화를 하니 과 수석을 해야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포기했다. 중학교 때의 나의 꿈인 국회의원, 영문학자, 운전사 중에서 그래도 영문학자라도 되려고 외국어대학교에 전화를 하니 4년동안 장학금만 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학금 받고 영어공부를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학교가 건국대학교 경영학과였으며, 등록금 면제와 월 도서보조비 20만원을 받으며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 나를 도와주던 동생은 그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성남에서 변호사를 개업 중이니 나로서는 비록 동생에게 진 빚을 갚지는 못했지만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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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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