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삼촌 브루스 리

Bruce_Lee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0.8.9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미안하지만 이것은 브루스 리, 이소룡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나의 삼촌이 브루스 리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삼촌은 그저 이소룡을 흠모한, 평범한 사내일 뿐이었다. 당시 우리는 모두 이소룡의 팬이었다. 쌍절곤을 휘두르다 뒤통수 한 번 안 맞아본 남자가 있었던가? 우리는 이소룡처럼 빠르고 강한 주먹과 멍석처럼 넓은 광배근을 갖고 싶어 했다. 말하자면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소룡은, 수음과 더불어,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었던 것이다.
삼촌 또한 그렇게 이소룡을 추종하는 무리 중의 하나였지만 그에게 이소룡은 단순한 선망의 대상, 그 이상이었다. 그는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한 나머지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으며 아주 멀리까지 나가고자했다. 그래서 그가 그러했듯 저 높은 곳에 올라가 별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꿈은 깨어지게 마련이고 희망은 부서지게 마련이다. 빠르고 강한 주먹과 찰고무처럼 질긴 근육, 땅을 박차 오르며 찬연히 타오르는 싱싱한 육체, 절대강자의 여유와 자신감! 그것은 불완전한 실존을 초월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지만 초월의 욕망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욱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중력의 절망과 좌절을 경험한다. 심장은 터질 듯 고통스럽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며 두 다리는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의 육체는 두부보다 무르며 유리보다도 부서지기 쉽다는 것, 또한 그 안에 깃든 정신은 그보다도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불안한 영혼은 더 어둡고 구석진 곳으로 숨어든다.
삼촌도 그랬다. 꿈은 부서지고 사랑은 돌려받지 못한 채 평생 자신의 머리 위에 드리워졌던 서출(庶出)의 장막을 끝내 걷어내지 못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만일 그가 일찍 죽었더라면 그도 이소룡처럼 신화가 되었을까? 물론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소룡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연기처럼 사라져 신화가 되었지만 삼촌은 한 번도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다.
아류는 아무리 잘해도 주류나 본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짝퉁과 진품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삼촌의 인생은 어쩌면 자신이 끝내 이소룡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기나긴 과정진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한 안타까운 비극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우스꽝스럽기 만한 한 바탕 희극이었을까?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소룡의 말이다. 그는 또한 삶의 의미는 그저 사는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곳이 어디가 됐든 부서지고 깨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인생일 터인데 삼촌의 경우도 바로 그랬다. 평생 주먹 한 번 시원하게 뻗어보지 못하고 끝내 아무 것도 창조하지 못했지만 그는 인생의 구석진 곳을 떠돌며 꾸역꾸역 살아남아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모두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비록 짝퉁으로 출발했으나 긴 세월을 거쳐 인생유전의 고유한 스토리를 스스로 완성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표절과 모방, 추종과 이미테이션, 나중에 태어난 자 에피고넨에 대한 이야기이며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던 한 짝퉁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말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46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