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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_Lee
  1. 나의 삼촌 브루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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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박 감독과 스태프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열예닐곱 남짓 되었을까, 입가에 커다란 점이 있는 한 여학생이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도대체 얘는 또 뭐지, 싶어 박 감독은 인상을 잔뜩 쓰며 물었다.


-아가씨, 뭐야?


이번엔 여학생 등 뒤에 있던 한 청년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 아, 아, 아까 어, 어, 어, 얼음을 사, 사, 사다 달라고 해서…….


여배우 얼굴의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얼음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던 바로 그 동네청년이었다. 청년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오는 길에 얼음이 다 녹아버렸는지 얼음은 흔적도 없고 얼음을 묶었던 빈 지푸라기만 들려 있었다.


-근데, 왜? 돈이 모자라?


조감독이 묻자, 여학생이 고개를 돌린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 아까 저 아저씨 한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우리 오빠가 진짜 잘하는데…….


스태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서 쳐다보자, 청년은 쑥스러운지 얼굴이 빨개져 여학생의 팔을 잡아끌고 현장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팔을 뿌리치며 감독에게 말했다.


-우리 오빠, 한 번 시켜 보세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여학생은 수줍은 척 하면서도 고집스럽게 꾸역꾸역 할 말은 다하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이때 제작부장이 나서서 여학생과 청년을 한꺼번에 거칠게 밀어냈다.


-밑지면 본전이 아니라 손해지. 그리고 여기는 너희 같은 애들이 와서 노는 데가 아니니까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어라.


-이거 놔요, 아저씨. 어딜 만지고 그래요.


여학생과 실랑이가 벌어지자 옆에 있던 청년이 제작부장의 손을 잡았다.


-이, 이, 이 손, 노, 노, 노, 놓으세요.


제작부장도 열이 받았다.


-너, 이거 안 놔?


-그, 그, 그 손 먼저 노, 노, 놓으시면 노, 노, 놓을게요.


-근데 이 자식이!


청년이 괜한 말썽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제압을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딴 짓을 하다 뒤늦게 나타난 허물을 만회해 보려고 했는지 제작부장은 대뜸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 번쩍,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청년이 손목을 가볍게 꺾으며 앞으로 홱 잡아채자 커다란 덩치의 제작부장이 비명을 지르며 짚단 넘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청년이 뭘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온 스태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망신을 당한 꼴이라 거친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제작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난 제작부장은 웃통을 벗어젖히며 불곰처럼 청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박 감독이 나섰다.



-잠깐만! 자네가 정말 할 수 있겠어?


한쪽에선 ‘이거 놔, 이 새끼들아!’ 어쩌고 하며 길길이 날뛰는 제작부장을 남자 스태프들이 뜯어말리는 와중에 청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하, 하, 하, 할 수는 이, 이, 있지만…….


-자네, 배우야?


-저, 저, 저, 저는 배, 배, 배, 배우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이때, 여학생이 다시 나섰다.


-우리 오빤 무도인예요.


-무도인?


박 감독은 청년에게 여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이 아가씬 누구야? 자네 동생이야?


청년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여학생은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요. 난 동생이 아니라 애인인데요.


박 감독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청년은 난처한 듯 고개를 돌리고 서 있고 여학생은 감독의 답변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작부장 또한 스태프들의 만류에 못이기는 척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어쩌고 하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박 감독은 청년을 위아래로 한참 훑어보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좋아, 이 친구 의상 갈아입히고 당장 준비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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