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act111
- 작성일
- 2022.5.18
착각의 쓸모
- 글쓴이
- 빌 메슬러 외 1명
반니
□ 여정의 시작
저자는 ‘자기기만(착각)이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 책은 많은 부분을 사랑의 교회 ‘로리 사건’에 할애하고 있다. 로리는 ‘독창적인 홍보용 우편물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로 수만 명의 남성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사기행각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은 로리에게 당한 피해자들을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촌뜨기로, 자기가 이용 당했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너무 나약한 사람들로 묘사했지만, 피해자 중에는 철학과 교수, 항공우주공학자 등도 있었다. 유사 사례는 넘쳐났다. 로리가 편지 사기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그의 연애편지 구독 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은 그를 옹호하기 위해 법원까지 찾아가 편지가 자신들을 마약과 알코올중독, 고독, 자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마치 인질이 납치범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사기가 밝혀졌음에도 사기꾼과 피해자가 공모하여 움직였다. 바로 여기서부터 자기기만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여정이 시작된다.
□ 자기기만의 사례: 조셉의 경우
사랑의 교회 피해자 조셉은 내성적인 외톨이였으며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판타지와 현실도피에서 위안을 찾았고 자신을 만화와 영화 속의 아웃사이더와 동일시했다. 부모가 사망하고 사업마저 어려워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랑의 교회에서 첫 번째 편지가 도착했고 1년 후에는 “파말라” 라는 여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조셉은 나중에 ‘파말라’가 가짜임이 밝혀지자 씁쓸함이나 분노보다는 힘든 시기에 그를 물위에 떠 있게 한 구명조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말라”라는 가짜 여인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나서도 분노하지 않은 조셉의 태도에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자존심마저 잃긴 싫었을 테니까. 물 밖에 나와서도 구명조끼를 벗지 않으려고 하는 그의 태도야말로 자기기만이 아닐까?
로리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의 증거는 판타지에 대한 증거지 사기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이것은 로리가 회원들을 위해 만든 판타지다. 아이들이 산타를 즐기듯이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라고. 정말 그런가? 만약 로리가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변호사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로리는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약자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돈을 요구했기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변호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마치 심리 상담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상담 받듯이 피해자들이 돈을 내고 사랑의 편지를 받는 것임을 처음부터 밝혔다면 이 사업(사기가 아닌)은 성사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즉 자기기만(판타지)이라는 속임수 덕분에 이 사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일상적인 자기기만의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건강하고, 성공하고 안정적인 물질을 누리며 살아가는 행복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만 거짓말이 필요 없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례적인 말들, 일상적인 거짓말은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조직이, 사회가 잘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와도 같다. 우리는 오바마의 유머(거짓말)에는 미소를 짓지만 트럼프의 직설(사실인지는 차치하고)은 견딜 수 없어한다. 고객서비스(응당 취해야 하는 태도의 직업적 표현형) 종사자는 응분의 대가로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고, ‘감사합니다’, ‘다 잘 될거야’ 란 말은 의례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우리는 값비싼 와인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고, 브랜드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이용해 명품의 가격은 비쌀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우리는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런 스토리텔링 없이 제공되는 100불짜리(가격을 모르는) 와인보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10불짜리 와인에 더 매료된다.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 저자의 주장
가설: 어떤 피해자들에게는 사랑의 교회가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사랑의 교회 사건은 사기가 맞다
결론: 사람들이 잘못된 믿음에 매달리는 이유는 ‘때로는 자기기만이 실용적이어서’ 이다. 자기기만은 우리에게 유용한 사회적, 심리적, 생물학적 목적을 달성하게 해 줄 수 있다.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는 일은 반드시 바보 같은 짓은 아니며, 병리학적 이상징후나 악한의 징후도 아니다. 믿고자 하는 것을 믿고, 보고자 하는 것을 보는 일은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 환경이 나쁜 쪽으로 변하고 인생을 버티는 기둥이 흔들린다면, 기기괴괴한 자기기만이 자라날 비옥한 토양이 조성된다. 구렁에 빠져서 신을 찾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사랑의 교회 피해자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 심리적 힘듦은 우리 모두의 삶에도 가득하다. 자신이 잘 속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면 그건 오직 당신이 시험당 할 환경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성과 논리를 신봉하지만 과학적 증거에 대한 신봉은 자기기만이 우리 삶에 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온갖 형태의 자기기만을 포용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 자기기만과 싸워야 하며, 어느 정도나 그것을 포용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고 말한다. 또 저자는 수많은 사례에서 우리가 자기기만 하는 뇌와 함께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잘못된 믿음이 그것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이점을 주는가? 그것이 어떤 근본적인 욕구를 표현하는가? 이런 욕구들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일이 착각과 자기기만과 싸우는 강력한 방법이 될 것이다. 자기기만의 뿌리를 뽑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물어봐 주고 놓친 것을 대체하게끔 도울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라고 결론 짓는다.
□ 나의 생각
이 책 덕분에 자기기만의 실용성과 폐해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되어 자기기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자기기만의 폐해를 뿌리뽑기 위한 저자의 해법에 있어서는 타자(제 3자)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그것도 이상적인 상황을 그렸을 뿐 우리가 타자(당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절을 베풀지 않는 한 실행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문고리가 안 쪽에 있어서 밖에서는 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환경에 처한 당사자가 안에서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랑의 콩깍지에 씌인 경우 당사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상대의 결점을 보지도 못한다. 사랑의 콩깍지(이것은 인류의 생존과 보존을 위한 조물주의 작용이자 진화생리학적인 호르몬 작용)는 그나마 유효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이 지나면 환상(자기기만)에서 깨어날 수가 있지만 조셉과 같은 판타지의 피해자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후에도 돈을 잃어서 화가 난다거나 피해자라는 생각은 고사하고 자신을 어려운 상황에서 구해 준 고마운 존재로 믿으며 물밖에 나와서도 구명조끼를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원한 자기기만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오히려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보기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조셉의 경우는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가짜 삶’이라는 의미에서는 맞다. 하지만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가짜란 것을 깨닫고 현실세계로 걸어 나오지만, 기대할만한 미래라고는 없고 텍사스의 외딴 마을에 사는 외로운 남자 조셉은 그렇지 못했다. ‘언제 자기기만과 싸워야 하며, 어느 정도 그것을 포용해야만 하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콩깍지에 씌인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기만에 빠지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도록, 구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이 책의 쓸모
“착각과 자기기만이 때로는 실용적이지만 이것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 또한 수 많은 책에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기기만에 커다란 빚을 진다는 사실을 일깨우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기기만의 힘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사기꾼이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 책의 쓸모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자기기만이라는 방어기제를 계발한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자기기만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을 텐데 말이다. 제목만 봐서는 자기기만의 유용함에 대한 책처럼 보이는데 저자는 자기기만이 때로는 실용적이라고 하면서도 자기기만과 싸우고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었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생각을 어렴풋이 드러낸다.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쓸모는 자기기만의 힘 이해하기로 정리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행위를 한낱 미신에 불과하다거나 어리석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 같다. 조셉도 만약 자기기만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물 밖으로 나와서는 구명조끼를 벗지 않았을까? 아니면 수영하는 법을 미리 배웠을지도. 문득, 이 책을 읽고 난 뒤, 남편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쓸모를 따져보게 되었다. 덤으로 나의 쓸모도! (이 책의 가장 큰 쓸모일 듯~)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