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시엘
- 작성일
- 2020.2.9
[예스리커버] 오후도 서점 이야기
- 글쓴이
- 무라야마 사키 저
클
서점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점에 얽힌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점 ’ 이라는 단어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뭔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책 제목에 ‘ 서점 ’ 이 들어가는 책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가고 만다.
< 오후도 서점 이야기> 는 개브리얼 제빈의 < 섬에 있는 서점 >, 미카미 엔의 <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 >이나 셸리 킹의 <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 책방에서 시작되었다 > 등의 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는 그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서점을 배경으로 했지만 책과 사람이 주인공이었던 다른 소설들에 비해 < 오후도 서점 이야기 > 에서는 서점이 주인공이다.
< 오후도 서점 이야기 > 는 바로 그 서점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어떻게 진열하는지, POP 를 통해 책의 내용을 홍보하고, 직장인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출판사 영업 직원들 간의 관계라던지 서점과 관련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인 ‘ 츠키하라 잇세이 ’ 는 오래된 백화점 안에 있는 긴가도 서점에서 문고본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않고 조용한 성품이지만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을 귀신 같이 찾아내서 ‘ 보물찾기 대마왕 ’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책을 사랑하는 직원이다.
긴가도 서점의 문고본은 잇세이가 진열한 책이 아니면 독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서 손님과 한 권의 책을 이어주는 오작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잇세이가 하는 일이었다.
잇세이는 사금을 캐는 것처럼, 보물을 찾는 것처럼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성을 다해 좋은 책을 고르고 골라서 그의 서가와 평대에 책들을 진열했다.
언뜻 평범하게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책에, 책이 놓인 그 위치에 손님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책장 정리를 하는데, 그 때 나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책을 정리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기분 전환을 위한 책을 읽을 지, 미뤄 둔 책을 읽을 지 아니면 일에 관련한 책을 읽을 지 특별한 목표에 따라 책을 정리해서 다시 책장에 진열을 한다.
나도 이렇게 책장을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정리를 하는데, 지금까지 서점에 갔을 때 직원들이 책들을 어떻게 정리해 두었는지 살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에 서점을 갈 때에는 서점 직원들이 책들을 통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진열 상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 오후도 서점 이야기 >를 읽다보면 이렇게 사명감이 투철하고 책에 대한 철학이 확실한 직원들이 있다는 일본 서점에 혐한 서적 코너가 따로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타국을 비난하는 책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유독 일본에선 우리나라를 혐오하는 책이 많이 출판되고 그런 책만 두는 코너가 따로 있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권의 책으로 그날의 기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잇세이는 알고 잇다.
가령 운수가 나쁜 하루였다 해도 귀갓길에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을 읽고 다음 날은 기운 내서 열심히 살아보자고 마음먹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읽는 사람의 기분을 살짝 좋게 만드는 것만이 책이 가진 힘이 아니다.
삶이 괴로울 때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읽다 만 책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 내일까지, 또 그다음 날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잇세이는 출판사에서 보내온 신간들 중에서 단 시케히코의 < 4월의 물고기 > 라는 작품의 교정쇄를 보게 되고 이 작품은 ‘ 될 것 ’ 이라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단 시케히코의 < 4월의 물고기 > 를 어떻게 홍보를 할 것인지 기대에 부푼 나날을 보내던 중, 잇세이의 인생을 뒤바꾸게 되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으로 인해 서점과 백화점이 피해를 입을 것을 걱정한 잇세이는 그를 위로하고 감싸주었던 동료들에게 < 4월의 물고기 > 의 홍보를 부탁하고 서점을 떠나게 된다.
‘ 당신은 지금 ‘ 어딘가 ’ 로 가고 싶어 하고 있어요.
지금 ‘ 이곳 ’에서 ‘ 어딘가 ’로 떠나고 싶다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 이곳 ’ 을 떠날 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사는 거죠. ’
다리가 아프면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 데도 안 보내려고, 안 가도 된다고,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갈 곳이 없던 잇세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온라인 친구가 만나러 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산골짜기 작은 마을의 ‘ 오후도 ’ 라는 서점 주인으로 책과 세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넘치고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잇세이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잇세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동안 무슨 일인지 오후도 서점의 주인도 글을 올리지 않고 있어서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 가보기로 한다.
앵무새 선장을 어깨에 태우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로, 작은 서점을 찾아 떠나볼까.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사고 때문에 다친 왼발을 끌고 그는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온천도 있고 벚꽃이 아름답다는 ‘ 오후도 서점 ’ 이 있는 깊은 산골짜기 작은 마을로 길을 떠나게 된다.
표지와 같이 아름다운 벚꽃에 둘러싸인 오후도 서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 책을 읽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 ’ 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 책 ’ 이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나 재미를 대신할 수 있는 각종 영상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빠른 인터넷은 그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출판 시장은 우리나라 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고 들었는데, 일본의 상황도 우리만큼 좋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십 년 전통의 서점들부터 시작해서 동네 서점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고, 몇 년 전에는 국내 2위 서적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부도가 나서 출판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소설에서는 잇세이의 말을 통해서 일본 출판계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만큼이나 일본의 현실도 답이 없는 것 같아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 입장에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안 본다고,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잇세이와 동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책이 있다고 있는 힘을 다해 세상에 외쳤다.
실제 우리의 현실에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지만 < 오후도 서점 이야기 > 속 현실에서는 잇세이와 동료들은 동화 같은 행복한 결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좋은 책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모습들이 사랑스러웠고, 그들의 노력이 희망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음 속 상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 오후도 서점 이야기 > 에서 잇세이와 그들의 동료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 곁에서 나를 믿어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일본 특유의 감성이 넘치는 소설이라 읽다보면 오글오글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오글오글한 느낌의 ‘세상이 아름답다는 메시지 ’ 를 던지는 따뜻한 힐링 소설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항상 매콤한 토마토 파스타를 먹다가 가끔 아주 느끼한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을 때처럼 말이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책과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 오후도 서점 이야기 > 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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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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