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agadha
- 작성일
- 2012.2.29
다케시의 낙서 입문
- 글쓴이
- Takeshi Kitano 저
세미콜론
일본 문화의 수입이 물꼬를 틀던 1990년대 초반, 일본 영화를 보러 매주 드나들던 문화학교 서울에서 가장 인기있던 감독은 단연 이와이 슌지였지만, 말랑말랑한 그의 영화는 나와 맞지 않았고 대신 난 기타노 다케시의 절제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빠져있었다. 물론 생뚱스런 유머도 날 열광시켰고.
그런 그에게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떡하니 안겨준 <하나비>를 보고난 후 그를 진정한 예술가로 올려놓게 되었다. 이유는 다케시 감독이 직접 그린 그림때문이었다. 그가 <하나비>를 찍기 몇 해 전 오토바이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소생했을 때 그렸던 그림이라고 한다. 이 양반이 자기 그림 자랑하려고 <하나비>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속에서 그의 그림들은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한다.
영화 <하나비> 속 기타노 다케시의 그림들
이 재주 많은 양반의 영화 속 그림이 잊혀지지 않아서 화면 캡쳐로 몇 장의 그림들을 컴퓨터 속에 보관해오고 있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그렇게 찾아도 없던 다케시의 그림에 대한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케시 낙서입문>. 영화 <하나비> 이후 쭉 그려온 그의 그림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잘난체 하지 않는 그림체와 촌스러운듯 화려한 색감. 누군가에겐 낙서로 보이겠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아트로 모셔질 법한 그림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궁금했던 그림에 대한 그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영화보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양반 역시 하드보일드하다! 무작정 시작한 그림이, 점점 크게, 더 화려하게. 그러다보니 화구도 잔뜩 사고, 그림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아지자, 다시 '화장실 낙서' 같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말이 쉽지, 쉬운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무척 쉬워 보인다. 신기하다.
이 책은 현대 미술에 대한 해설서도, 그림을 가르쳐주는 교본도 아니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마음을 열어준다고 할까? 다케시가 묶어 놓은 몇 개의 과정을 지나다보면 스스로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아이의 눈으로 보고, 발상을 조합하고, 전통 예술을 따라하고, 그 다음엔 대작에 도전해본다라.
영화를 찍는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를 하는 비트 다케시,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다케시에게 이 책은 그의 샘솟는 창조력에 대한 단서를 줄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반드시 봐야 할 것이고,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주말에 다케시의 영화 한 편 감상해보시라. 분명히 큰 감동을 얻을 것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