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는 중국 삼국지 문화기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이문열의 삼국지연의부터 해서 삼국지 관련 책을 새롭게 읽고 있는데, 삼국지는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단지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서 기억하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라는 생각뿐이다. 나는 삼국지 등장 인물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늘 방통을 손꼽는다. 제갈량과 군사중랑장을 같이 맡으면서 촉의 중책을 맡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처리로 장비를 놀라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보다 방통의 뛰어난 업무처리능력을 배우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방통이 아닌 제갈량에 관한 책으로 평소 삼국지 소설 속에서 만났던 제갈량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의 제갈량의 본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평소 삼국지에 대한 관심과 요즘 삼국지연의를 새롭게 읽고 있어서인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으며, 각 파트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Part 1_출생부터 유비에게 임관하기 전까지. Part 2_유비에게 임관한 후부터 적벽대전까지. Part 3_유비의 익주정벌부터 이릉대전 발발 전까지. Part 4_이릉대전 발발부터 사망까지. Part 5_제갈량 사후부터 촉의 멸망까지. Part 6_제갈량에 대한 후세의 평가와 일화.

나는 이 책이 기존에 출간된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특정 인물인 제갈량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지연의를 읽었을 때는 제갈량이 조조가 아닌 유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갈량이 어렸을 때 조조가 저지른 서주 대학살의 경험으로 인해 제갈량에게 조조는 난세를 구할 영웅이 아닌 피에 굶주린 살인마로 보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나의 궁금증을 비로소 해소시켜 주었다.

이 책에는 최고 우등생, 제갈량의 공부법에 대해 소개한 부분이 있는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략을 보면 "제갈량은 석도, 서서, 맹건 등과 함께 유학했다. 이 세 명은 정숙(정밀하게 숙지함)에 힘썼으나 제갈량은 홀로 대략(큰 줄거리)을 살폈다."는 언급이 있다. (중략) 제갈량은 "무릇 학자라면 경전을 정밀히 탐구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는 무슨 책이든지 간에 책의 큰 줄거리, 즉 핵심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한마디로 그는 실용적인 자세로 학문에 접근했던 것이다. 제갈량이 당시에 유행했던 공부법을 고집하지 않고 책의 요점을 파악하려 애썼던 이유는 기존의 학문풍토가 당장 현실에 필요한 정책을 고안하기 위한 용도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제갈량의 배우자 선택 조건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본래 서주가 고향인 제갈량은 형주에 아무런 기반이 없었다. 그러나 황부인과 결혼을 하게 되면 형주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던 황씨 가문은 물론이고, 형주 최고의 권세가문인 채씨와도 연결고리를 가지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점을 따져보고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다. 배우자의 외모나 성격보다는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집안배경을 더 중시했던 것이다. 제갈량이 지금시대에 살았더라면 분명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제갈량의 이미지와는 다소 걸맞지 않은 듯하지만 현실적인 제갈량의 배우자 선택 기준을 볼 때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서로 모시는 주군이 달랐던 제갈량과 제갈근의 관계에 대한 것이 있다.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형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과 제갈근은 서로를 아껴줄 줄 아는 누구보다도 형제애가 깊었던 관계였다. 그러나 각자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서로의 선택을 존중했다. 또한, 공적관계로 만나게 될 때에는 그들의 사적관계를 배제시켜 주변의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고, 각자의 공적 임무에만 충실하려 했던 철저한 관계이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관우를 구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설명하는 내용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 같다. "역사서에 유비와 제갈량이 성도에서 관우를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는 걸로 봐서는, 유비와 제갈량이 관우의 위급함을 알게 된 시점은 관우가 이미 죽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즉, 유비와 제갈량은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삼국지의 내용 중에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 중의 하나가 바로 칠종칠금의 고사다. 적장을 일곱번 잡았다가 놓아준다는 것이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칠종칠금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자치통감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었다가 일곱 번 잡았는데, 제갈량이 오히려 맹획을 가라고 하니 맹획은 머물고 가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공은 하늘의 위엄을 가지신 분입니다. 남쪽 사람들이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출사표는 제갈량이 1차 북벌을 앞두고 유선에게 군대의 출진을 보고한 글이다. 삼국지를 읽은 독자라면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출사표는 제갈량의 충심과 희생정신, 나라에 대한 걱정 등이 깊이 묻어나 있는 글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제갈량은 출사표를 글로만 쓰고 끝낸 것이 아니었고, 출사표는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담긴 글자들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는 제갈량같은 진정한 충신이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한 상황도 거뜬히 해결해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평소 내가 갖고 있었던 제갈량의 이미지와는 제법 다른 제갈량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의 뛰어난 능력과 출중한 외모 등이 소설 속에서는 비록 과장되어 표현이 되기는 했지만 실제 역사속의 제갈량도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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