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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글쓴이
이청준 저
열림원
평균
별점8.4 (14)
아그네스

지난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을 뒤늦게 보고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이 궁금해 읽게 되었다. 원제목은 <벌레 이야기>이다. 하필이면 왜 '벌레 이야기'일까? 궁금했는데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 같은 절망적 자각은 미물 같은 인간이 절대자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증거로서 그의 삶 자체를 끝장냄으로써 자신이 속한 섭리의 세계를 함께 부수고 싶은 한계적 욕망에 이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단편소설이 다루는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은 서울의 한 동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삼았다 한다. 범인이 잡히고 형 집행을 남겨둔 시점에서 한 말은 작가에게 참혹한 사건 그 자체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다. 범인이 한 말의 요지는 이렇다.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길 빌겠다."

 

  이 소설은 남편 화자 시점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다양한 곁가지를 빼고 어린 아들의 유괴 사건과 아내의 고통, 죄의 용서와 구원의 문제의식에 충실하다. 아들의 죽음 이후 범인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고통 받던 아내는 김집사의 끈질긴 간청으로 교회에 나가며 하나님의 참사랑을 얻고 범인 김도섭을 마음으로 용서하게 된다. 문제는 아내가 자기 마음속의 용서에 대해 범인에게서 증거를 구하고자 교도소 면회를 다녀오면서다.

 

 그는 이미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죄과를 참회하고 그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였다. 뿐더러 그는 참회의 증표와 주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사후의 신장과 두 눈알을 다른 사람에게 바칠 약속까지 해놓고 있었다 하였다. 그는 그만큼 평화로운 마음으로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였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형 집행을 앞두고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구원을 받고 평화로울 뿐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에게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빌어주는 가해자라니! 다시 한번 절망하는 아내를 두고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김집사에게 아내는 이렇게 저항한다.

 

-저도 집사님처럼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어요. ... 그러나 막상 그를 만나 보니 그럴 수가 없었어요. ... 그 사람이 너무 뻔뻔스럽게 느껴져서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은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예요. 살인자가 그 아이의 어미 앞에서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스런 얼굴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이에요. 살인자가 어떻게 성인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에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전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가 나를 용서한다구요? 게다가 주님께선 그를 먼저 용서하시구... 하긴 그게 아마 사실일지도 모르겠어요. ... 하지만 그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당신이 내게서 그를 용서할 기회를 빼앗고, 그를 먼저 용서하여 그로 하여금 나를 용서케 하시고 ... 그것이 과연 주님의 공평한 사랑일까요. 나는 그걸 믿을 수가 없어요. 그걸 정녕 믿어야 한다면 차라리 주님의 저주를 택하겠어요. ...

 

 신의 용서를 받았다 해서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종교의 외피를 뒤집어쓴 뻔뻔한 가해자의 논리이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범인은 피해자인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사죄했어야 한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감정과 조건을 무시한 채 자신의 하나님만을 상대로 살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인간의 조건을 벗어난 하늘 위의 종교와 용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땅 위의 종교와 구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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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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