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아그네스
- 작성일
- 2014.8.3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글쓴이
- 오스카 와일드 저
더클래식
-나르시스트에 대한 경고-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문고판으로 읽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 신비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인해 오래도록 내 기억의 한 자락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줄거리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갔다. 마침 큰 아이가 외국 작가들에 관해 이야기 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였다는 말을 꺼냈다. 그의 유미주의 예술관을 떠올려볼 때 납득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 책속의 무엇이 어린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더 클래식에서 출간된 이 책은 번역본과 영어본이 함께 있어서 큰 아이는 번역본을 읽고 나는 영어본으로 읽었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르시스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의 결말 역시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격이 망가지고 친구마저 죽이는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주관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존재여서 누구나 자신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외모나 능력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더 줄 수도 있겠다. 주인공 도리언은 자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과 젊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의 간절함이 우주에 닿은 것일까. 실제로 그는 늙지 않고 대신 그의 초상화가 늙어간다. 다소 신비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부분이 소설 속의 이지적인 분위기 속에 차분하게 녹아든다. 사실을 이야기하는 담담함으로.
이 세상은 인간이 미처 다 발견하지 못한 광활한 우주세계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도리언의 늙지 않는 아름다움이 비현실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과 집착이 정도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 인간은 현실을 떠나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주름살과 흰 머리가 생기는데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는 도리언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부러움이 시기심과 의혹으로 바뀌면서 도리언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지인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리고 이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채 본모습을 감추고 살 수 없는 현실의 문제다. 자신의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한 도리언의 결말은 그리스 신화처럼 죽음이었다.
교육학계의 이론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지나친 칭찬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노력이 아닌 타고난 재능을 칭찬받은 아이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노력은 덜 하기 때문에 결국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두고 칭찬하라는 교육학의 이론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인생을 망치고 불운해진 도리언 그레이라는 작중 인물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이 책이 나르시시스트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면 섬세한 유미주의를 건너뛰고 현실적 교훈만 이끌어내려고 애쓰는 아마추어 리얼리스트의 섣부른 결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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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