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평론가 한기호 님의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를 읽고 있습니다. 이 책 4장에는 "좋은 책을 쓰는 7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글은 늘 진화해야 한다'는 꼭지에 유홍준 교수 얘기가 나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낙양의 지가를 한껏 끌어올린 분이죠. 그런데 한기호 님은 유홍준 교수의 글이 시리즈를 거듭하며 일신우일신 거듭나고 있다고 엄지를 척 들어올립니다. 얘기 끝에 유홍준 교수가 출간 20주년 기념 강연에서 독자들에게 들려준 글쓰기 비법 15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쉽고, 짧고, 간단하고 또 재미있게 쓰라고 조언하며 약방문을 처방하고 있습니다. 좀 길지만 독수리타법으로 옮겨보겠습니다.

1. 주제를 장악하라.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이 된다.

2. 내용은 충실하고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글의 생명은 담긴 내용에 있다.

3.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이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4. 글 길이에 따라 호흡이 달라야 한다. 문장이 짧으면 튀고, 길면 못 쓴다.

5. 잠정적 독자를 상정하고 써라. 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일까, 머리에 떠올리고 써야 한다.

6. 본격적인 글쓰기와 매수를 맞춰라. 미리 말로 리허설을 해보고, 쓰기 시작하면 한 호흡으로 앉은 자리서 끝내라.

7. 문법에 따르되 구어체도 놓치지 마라. 당대의 입말을 구사해 글맛을 살리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8. 행간을 읽게 하는 묘미를 잊지 마라. 문장 속에 은유와 상징이 함축될 때 독자들이 사색하며 읽게 된다.

9. 독자의 생리를 좇아야 하니, 가르치려 들지 말고 호소하라. 독자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10. 글쓰기 훈련에 독서 이상의 방법이 없다. 좋은 글, 배우고 싶은 글을 만나면 옮겨 써보라.

11. 절대 피해야 할 금기사항. 멋 보리고 치장한 글, 상투적인 말투, 접속사.

12. 완성된 원고는 독자 입장에서 읽으면서 윤문하라. 리듬을 타면서 마지막 손질을 한다.

13. 자기 글을 남에게 읽혀라. 객관적 검증과 비판 뒤 다시 읽고 새로 쓰는 것이 낫다.

14. 대중성과 전문성을 조화시켜라. 전문성이 떨어지면 내용이 가벼워지고 글의 격이 낮아진다.

15. 연령의 리듬과 문장이란 게 있다. 필자의 나이는 문장에 묻어나오니 맑고 신선한 젊은이의 글, 치밀하고 분석적인 중년의 글을 즐기자.

(위에 든 한기호의 책 231~232에서 재인용)

모두 다 나를 향한 지적인 듯 아프게 다가왔지만 특히 폐부까지 사무치는 통증으로 얼얼했던 대목을 꼽자면 8번, 9번, 11번, 14번 및 15번입니다. 기교만으로는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또렷하게 보여준 것들입니다. 행간에 묻어 둔 히든카드가 있는 글, 겸손하게 읽는 이와 공유하려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젠체하는 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글을 정확하게 쓰려는 의도로 접속사를 남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밋밋한 수준이어서 전문성이 확 느껴지지 않는 글들이었습니다. 청년의 풋풋한 감수성이 배어 있지 않는 올드 패션드이기도 했고요.

단번에 글이 확 바뀌진 않겠지만 잊어버리지 않도록 눈에 띄는 곳에 두고 머리에 아니 심비에 새기겠습니다. 진화하는 글, 나날이 뽄새가 나아지는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다듬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