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댄스 가수가 가요계의 대세를 이루는 시대여서 시원하게 라이브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는 이가 드문 형편이다. 몇몇 이름이 떠오르는 이가 있기는 하지만 썩 두드러진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역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 하겠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기대 수준이란 어떤 걸까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바로 양희은 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노래다운 노래를 라이브로 들려주는 가수의 대명사로 양희은 님이 자연스레 자기매김되어 있는 것이다. 이 앨범은 양희은 님의 라이브의 진수를 모은 것으로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실황을 녹음한 것이다.

들어있는 넘버는 초기의 세노야 같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곡부터 비교적 최근에 낸 음반에 실려 있는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 등 그의 30년 가수 생활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대표곡들이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곡은 중반기 작품이랄 수 있는 한계령과 최근에 부른 노래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이다. 두 곡 모두 한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인데 한계령은 하덕규 시인(가수겸 작곡가)의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안도현 시인의 시이다. 둘 다 곡절 많은 생의 한 구비를 돌아 이제 관조의 경지에 이른 마음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인데 서정적인 운율에 실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특히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는 사랑의 정수가 어떤 것인지 죽기까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를 부드럽게 환기시키고 있다.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짓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그리움에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도록

사랑으로 하여 내가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그 말만은 하지 않도록

묵묵한 가슴 속의 영원이도록

그리하여 내 무덤가에는

소금처럼 하얀 그리움만 남도록

듣고 있노라면 애절하면서도 투명하고 담담한 양희은 음색에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시의 내용이 더해져서 정말 진한 감동, 어쩌면 회한까지 몰려오는 느낌이 든다. 심란할 때마다 고요히 듣고 싶은 곡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