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궐

까탈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9.9.30
창덕궁 자유관람을 하고도 갈증을 느끼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낙선재다.
낙선재 후원을 보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단청이 없는 이 건물을 들어서면 왠지 정겹고, 한편으론 가슴이 아린다. 창덕궁 자체가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하지만 낙선재와는 사뭇 다르다.
하루 2번의 특별관람만 허락하는 낙선재. 이날 어쩌다 보니 늦어버렸다. 마침 관람팀은 성정각을 둘러보고 있었다. 성정각은 세자를 교육시키던 장소. 동궁은 터만 남아 있지만 승화루는 볼 수 있고, 이 승화루의 후원은 낙선재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제 낙선재.
낙선재의 솟을대문에는 <장락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흥선 대원군의 글씨이다.
<장락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연경당에서도 볼 수 있다.

낙선재 안의 행랑. 늘 낙선재의 현판을 찍게 되는데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의 담에서 찍으면 행랑을 이렇게 볼 수 있다.

낙선대 현판의 오른쪽을 보면 있는 <보소당>.
헌종은 소식을 좋아했다 한다.
아참, 낙선재는 헌종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근까지 영친왕비와 덕혜옹주가 살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빙렬문으로 유명한 루. 그리고 안에 보이는 만월문. 낙선재에서만 이 만월문을 볼 수가 있다.

경빈 김씨의 처소였던 석복헌. 결국 대를 잇진 못했지만 헌종의 사랑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해도 된다.

박쥐문양과 호리병문양을 볼 수 있다. 복과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강재의 뒷편에서.
현판만 찍어대는 것하곤 다르다. 이렇게 창을 열고 후원을 바라보며 헌종의 할머니는 왕실의 후사를 걱정하지 않았을까.

방안의 작은 벽장. 저 속에는 책이 들어있었을 듯 하다.
자, 이제 후원으로 간다.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뒤엔 모두 후원이 있다. 건물이 없다하더라도 후원은 존재한 셈이다. 그 중 석복헌의 뒤에 있는 한정당이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건물이며, 낙선재 후원의 상량정은 평원루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럼, 수강재 후원의 건물은 무엇일까. 취운정이다.

유리가 끼워진 한정당. 타일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

현판이 없는 취운정.
관람객이 이곳의 월대도 타일이 아니냐고 물었더랬다.
이 돌은 전돌이라고 한다. 조정에 깔린 박석과 다른 것이다.

취운정에서 본 하늘. 평원루가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새도 보인다. 아마도 까치일 듯. 감이 주렁주렁 열린 창덕궁과 낙선재의 감나무는 인공적인 손을 거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이며 모조리 까치밥이다. 익어서 떨어져 사람이 줍지 않는 한.
덕혜옹주가 마지막을 보낸 수강재. 아버지를 잃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정신을 놓은 상태로 본 하늘도 많이 다르지 않았으리.
100년전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괜스리 콧끝이 찡해진다.
이 하늘 아래서 말이다.
이 하늘 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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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