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었다고 아무에게나 반말하고 욕하는 걸 듣고 나니
문득 27년생 우리 아빠가 생각난다.

최**
1927년 3월 2일생(나와 생일이 같으심!!)
1997년 음력 2월에 세상을 떠나심.

만 70년을 세상에서 보내시다 가셨다.
나는 어르신들의 행동을 보고 혹시 오해를 할 순간이 있으면 내 아빠를 떠올린다.
황해도 신천 출신의 내 아빠는 일제강점기를 겪으셨고 공부를 하고 싶은데도 집안형편으로 할 수가 없어서 소학교 소사로 계시면서 공부를 하셨더랬다. 그리고 평양을 잠시 가셨다고 했고 일본에서 시험을 치려다가 시험전날 한 숨도 주무실 수가 없어서 시험당일 시험지가 백지로 보여서 제대로 응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셨고 덕유산에서 숨어지내셨고 거제도포로수용소에도 계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고, 간첩사건이 터졌을 때 불려가서 고문을 당하셨다고 들은 듯 하다.
그리고 느지막히 43세에 나를 보시고, 동생들을 보셨고 1997년 쓰러지시는 날까지 생활전선에 계셨더랬다.

나라가 없는 서러움에 일본말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소련 사람들이 내려와서 어설프게나마 소련어를 들으시고 간단한 말을 하셨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도 직접 겪으셨다.
전쟁의 트라마우마 뿐만 아니라 감옥의 고문도 겪으며 가족이 그리워도 표현도 못하고 산 세월이 있는 내 아빠다.
만약 우리 아빠라면 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까.
아마도 쓰레기가 많다 느껴지면 제일 먼저 쓰레기 봉투와 장갑을 들고 나를 대동하여 동네청소를 제일 먼저 하셨울 거다. 그리고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할 지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셨을 거다.

자네 생각은 그런가. 내 생각은 이렇다네..하고 말을 이어가셨을 거다.

또 한 마디가 생각난다. 사람사는 곳은 다 같다고. 다 살아가고 있다고 나와 다른 환경이라고 해서 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그리고 내가 힘든 세상을 살아서 억울한 것이 아니라 후세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세상과의 타협을 하셨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었던 부분이 많았고 시대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지는 않으셨다.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에도 나름의 반성과 지각이 있으셨다는 것이다.
폭력의 고문도 받아보신 분이지만 폭력을 쓰지 않으셨던,
강하면 부러진다고 충고한 한때 국회의장이었던 어떤 분의 회유도 듣지 않으시고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셨던 그런 분이 내 아빠이셔서 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작지만 강단있는 체격의 아빠는 어른노릇을 그렇게 하셨다.
술자리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계산을 해주는 지갑와 젊은 사람과의 술자리에선 딱 한 잔만 완샷으로 분위기를 잡아버리는 한방과 노동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는 더듬이까지.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내 아버지의 마지막은 평온했다. 쇼크로 쓰러지셨지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평온이었다.
그 평온을 유지한 힘은 아빠의 내면의 힘과 많은 경험들이었으리라.
대단한 경험들을 하면서도 그걸 훈장처럼 여기지 않으며 현실을 바라보는 힘으로 표현하셨더랬다.

내 아빠처럼, 나의 영원한 멘토인 내 아빠처럼,
힘든 순간엔 아빠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도
좀더 꿋꿋하고 소신있게 세상을 바라보련다.

좀 서글프고 울컥했던 마음이 이제사 가라앉는다.
아빠. 이건 아빠의 힘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