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고.십 생각나눔

별이맘
- 작성일
- 2018.12.2
바쇼 하이쿠 선집
- 글쓴이
- 마츠오 바쇼 저
열림원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를 완성시킨 마쓰오 바쇼, 그는 속세를 초월해 은둔과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시는 미학적 추구도 도덕적 교훈도, 언어의 재치도 아니다. 인간 본래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이 근원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를 한 줄의 시에 담았다.
하이쿠는 5,7,5 의 음수율의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이다. 진정한 시 세계에 대한 갈구,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우수, 여행과 방랑에의 그치지 않는 동경, 뛰어난 문학성 등이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을 구성하고 있다. 바쇼의 하이쿠는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지만,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작가가 전하는 말 속에서>
이번 하이쿠는 일고십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의 어우러짐, 자연을 마음에 품은 채 삶의 여정의 떠나는 그의 흔적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독과 방랑, 삶에 대한 허무함과 외로움은 그의 여행길 길목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 같았다. 그의 발자취는 고독을 찾아 헤매이는 듯 싶기도 했고, 허무한 외로움에 온전히 취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밀려오는 고독감을 굳이 떨쳐내려 하기 보다는 자연과 함께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느끼고자 시작했던 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혹은 방랑이라 할 수 있는 그 길 위에 평생을 보냈다. 끊어질 듯, 방황하듯 떠있는 부표처럼 그는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을 묶어 놓지는 않은 것 같다.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과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민낯을 마주보려 노력했다. 변하지 않는 듯 하지만, 계절 계절 마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려 했다.
그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여행이라는 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여행’이 그의 삶에,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 것일까.
(Q.사람의 삶에서 여행은 꼭 필요한 것일까? 여행을 통해 어떤 점을 얻을 수 있을까?)
내게 있어 ‘여행’은 일상에 대한 일탈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균열, 새로운 곳을 향한 나의 갈망이자 도전이었다. 무언가를 얻고자 애썼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대한 중독 혹은 갈증으로 ‘여행’이라는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설렜던 마음과 그곳에서 느꼈던 한적한 여유로움이 자꾸만 기억이 나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팍팍함에 목이 멜 때, 그저 어딘가에 자유로이 마음을 풀어놓고 싶을 때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쉼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내게 있어 여행은 ‘삶의 쉼표’인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주는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여행을 떠난다. 그게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Q.자연의 유무와 시의 깊이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자연과 시의 상관관계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자연’이, ‘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되새겨 보려한다. ‘자연’하며 느껴지는 마음은 ‘편안함, 변함없는, 자연스러움’이 떠오른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떠오르고,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생각나고, 붉게 물든 가을과 새하얀 겨울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 내가 찾아가면 있을 것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전해주는 것 같다.
봄의 움트는 새싹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위로를 얻고, 푸름으로 물든 여름을 보며 뜨거운 열정을 생각한다. 가을의 청량한 하늘을 보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때론 떨어지는 낙엽에 쓸쓸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시가 내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자연은 그릇의 모습을 담아내는 한 폭의 풍경 같다. 그저 풍경의 한끝자락에 머물며 계절의 흐름에 제 몸을 맡기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의 있고 없고와 시의 얕고 깊음을 내 나름의 판단으로 규정할 순 없지만,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는, 혹은 대변해주는 그런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꾸밈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빛나는 그 모습과 내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 좋아요
- 6
- 댓글
- 16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