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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
- 작성일
- 2021.12.10
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
- 글쓴이
- 박상률 저
해냄
"꽃들하고, 무슨 얘기, 하세요?"
"영감 얘기도 하고, 골목 지나다니는 사람들 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안 계세요?"
"벌써 사십 년 전에 세상 버렸어."
"할아버지도 꽃을 좋아하셨어요?"
"응, 좋아했지. 이 화분들, 다 영감이 장만했던 거야."
...
"어, 할머니 봉숭아 물들였네요."
"응, 영감이 들여준 거야."
"할아버지가요?"
"새색시 때부터 봉숭아 꽃잎 따서 해줬어."
"지금은 할아버지가 안 계시잖아요......"
"영감이 심었던 봉숭아꽃에서 해마다 씨를 받아 다시 심어.
꽃이 피면 이렇게 물들이지. 그러니까 영감이 들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
"봉숭아 물이 예쁘게 들어야 저승길이 밝아진다는데......"
"예뻐요, 무척 예뻐요."
"봉숭아 씨 좀 나누어 줄까?" (53-55p)
<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는 박상률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저자는 담담하게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보내주신 택배 꾸러미, 고향 진도 앞바다에 피어오르는 안개, 진도를 노래한「그 땅 그 하늘」이라는 시가 세월호 침몰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을 기리는 노래가 되어 라디어에서 흘러나오더라는... 그리고 열여섯 살 때 한영 큰스님의 수발을 들면서 불가와의 첫 인연을 맺은 이야기와 법당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부처님을 향해 엎드려 울었던 일, 그뒤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살다가 불쑥 떠나는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네요.
저자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에게 서해에 지는 해를 통해 소멸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 소멸을 알아야 생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삶이 더 진지해질 수 있다고 말하네요. 이른바 소멸의 미학. 그래서 저자가 하는 문학 강의는 곧 삶의 강의가 되나봐요.
이 책의 부제는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내는 오늘'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겠지요. 삶과 죽음, 빛과 어둠, 탄생과 소멸이라는 굴레에서 아둥바둥 살아내는 일.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어요. 여전히 그 고통은 가시질 않았어요. 고향집에 가면 들르던 팽목항을 차마 가지 못하는 이가 저자만은 아닐 거예요. 1980년 광주의 기억 때문에 모교인 전남대학교에 근 10년을 못 갔다는데, 점점 갈 수 없는 곳이 늘어만 가니 어찌해야 할까요. 지극한 불심으로, 두 번 다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불가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부족할 따름이지만 박상률 작가님의 글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오늘날 진정한 방생은 물고기 몇 마리를 풀어주면서 자기 위안적 자족감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 오늘의 불자들은 이 시대의 가장 반인간적인 것들, 즉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모든 억압들로부터 인간을 풀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마치 할머니의 봉숭아 물들이기처럼 이 책을 읽다보니 제 마음이 예쁘게 봉숭아 물이 든 것 같아요. 아름다운 말이 주는 감동을 봉숭아 씨를 나누듯이 널리 전하고 싶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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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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