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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뛰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1.20
무심코 어께를 들썩거리거나 손이 허벅지를 두드리며 일정한 리듬을 탈 때가 있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거리기도, 때로는 입으로 벙긋벙긋 소리 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음악이 이끄는 대로 단순히 몸이 움직일 따름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의 본성은 음악의 감응을 나름의 방식으로 시각화시킨다. 이 또한 ‘발림’이 아니겠는가.
발림은 ‘판소리에서 창자가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손·발·온몸을 움직여 소리나 이야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다. 배우라면 연기가, 무용수라면 춤이 발림인 셈이다. 그리고 관객이라면 리액션이 바로 발림에 해당한다. 클래식 무대에선 연주가 끝난 후 박수나 함성으로 뒤늦게 발림을 표현하지만 한국의 음악은 무대와 무대 밖이 구별되지 않는 발림의 연속임이다. 무용도 마찬가지다. 인천종합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2011년 발림무용단 정기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이러한 생각에 미쳤을 것이다.
물론 ‘살풀이춤’, ‘승무’ 등이 독무에서는 호흡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정적이 흐르는 공간. 치맛단 아래 드러난 버선은 허공을 짚듯 내딛는 걸음으로 긴장을 감돌게 하는 살풀이춤은 살아가면서 접했을 온갖 감정의 잔해를 느림으로 움트게 하더니, 갈수록 격렬해지는 춤사위로 드러낸다. 일제히 너울대던 희로애락은 마침내 폭풍이 지나간 밤바다처럼 고요해지는데, 여전히 비밀을 잔뜩 품고 있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조지훈이 시구절이 절로 떠오르는 승무는 고독하고 고단하지만 영혼만큼은 자유로운 여인의 울림이 북을 통해 전해진다. 그 두드림이, 양손에 북채를 쥔 여인이, 수많은 곡선을 그리는 기다란 소매와 하얀 고깔이 한 편의 시를 탄생시켰구나. 시인은 시로 발림을 했구나. 초가을에 관람한 이은주의 승무보다 극적인 분위기는 덜했지만 김묘선의 승무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스며들었다.
‘대감놀이’, ‘신명’, ‘소고춤’ 등은 상당히 동적인 무용이었다. 대감놀이는 무당의 춤이다. 칼이라도 탈 듯 등장한 무당들은 흥을 못 이기겠다는 듯 폴짝폴짝 뛰어가며 무서운 눈매 대신 부드러운 눈초리로 객석을 유혹했다. 겉옷을 벗고 밝은 빨강의 의상만이 남자 무당은 하염없이 가벼워지고 요염해졌다.
광개토사물놀이 팀의 길굿에 이어 등장한 무희들의 의상이 예사롭지가 않다. 앞에서 보면 지젤이 입을 법한 하늘거리는 튀튀 같고, 뒷모습은 요들송을 연상시키는 정도로 붉음이 알맞게 디자인되었다. 의상만큼이나 발랄한 동작으로, 점점 빨라지는 장단에 맞춰 제목처럼 그야말로 신명나게 북을 치며 춤판을 벌였다. 끊이지 않는 사물놀이의 장단에 소고춤이, 판굿이 이어지며 무대의 발림은 객석의 발림으로 이어졌다. 발림이란 예쁜 낱말을 확대 해석하고 싶어졌다.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등지와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의 전통춤을 알리는 발림무용단. 그들의 20여 년 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대감놀이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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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