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아르뛰르
- 작성일
- 2010.6.6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글쓴이
- 류시화 저
푸른숲
詩추에이션
1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내 가슴은 세차게 고개를 내젓지만 내 눈은 너의 뒷모습을 이미 응시하고 있었다. 전혀 짐작 못했던 상황도 아니고, 공들여 변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겠는데, 내 가슴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까지 납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묵묵히 듣고 있는 내가 못마땅한지 내 속의 나는 자꾸만 어떤 말이라도 꺼내어, 쏟아지면 담아내지 못할 말을 막아내라고 부추겼다.
부진아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해도 귀찮아하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의 역할을 맡은 네가 안쓰러워 나는 정말 부진아가 된 것처럼 규칙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내 감각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손목시계의 초침에 귀를 기울이며, 두어 번만 다시 설명하면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 이, 삼, 사…….
사십 초만 지나면 천을 셀 수 있는데, 너는 일어섰다. 방금 누가 내 뒤통수를 후려친 듯 목을 움찔하다 너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주위를 두루 살펴보았다. 유리 테이블엔 물잔 자국이 어지럽게 찍히더니 이내 증발하여 희미한 얼룩을 만들었고, 작은 바구니엔 비스킷 두 개가 각설탕과 함께 사이좋게 등을 맞대고 있었고, 의당 한두 개의 꽁초를 받아냈어야 할 입술 모양의 재떨이는 허전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의 얌전히 놓인 조화는 오후의 늦은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혹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가짜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앙다문 입가도 낯설었다.
잘 지낼 형편이 아니었으나 잘 지내라는 네 말을 듣고서야 마침 생각났다는 듯 착해빠진 웃음을 지었다.
“…… 이거, 네가 가져갔으면 좋겠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부분
어두운 서가 구석에 숨어 있어도 보랏빛 책등이 반짝여 대번에 알아보는 시집. 책머리에 누렇게 눈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제법 오래된 책 냄새를 풍기는 시집. 2,500원이었을 때 이 시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3,000원 이었을 때 내 친구로 만들었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일 주일 용돈으로 오천 원 받던 고교 시절, 서점에서 이 놈을 여러 차례 훔쳐보다, 수차례 망설인 끝에 며칠간 매점 행을 포기하고 데려왔다. 조금만 덜 망설였다면 500원 싸게 데려올 수 있었는데, 500원이면 팩에 든 음료와 방부제까지 달달한 빵 하나 더 사먹을 수 있었는데…… 제기랄!
이 시집을 열면 먼저 류시화의 사진과 함께 표제시가 반긴다. 종각 영풍문고에서 이 시집을 처음 발견했을 때가 떠오른다.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 은밀한 내 꿈과 만난’다는 시어에 매혹되어 그 자리에서 이 시를 외워버렸다. 이미 한 사람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기에, 그가 내 안에서 헤엄칠 때마다 기쁨이 넘쳤지만 때때로 저릿하기도 했기에,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내 안을 비집고 들어온 이후로 온전히 혼자일 수 없었다. 이 사실이 무척이나 겁났지만, 철썩거리는 가슴속 피의 뜨거움이 나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를 흔들던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찬란히 빛나던 스물은 그렇게, 느닷없이 저물고 말았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새와 나무’ 부분
다만 나뭇가지가 필요했던 새였다. 적당히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과 피로가 누적되지 않게 발로 지탱할 수 있는 적당한 굵기의 나뭇가지가 필요했던 새였다. 적당한 시기에 다시 날아올라도 흔들리다 말 그런 나뭇가지가 필요했을 뿐인데, 적당하지 않은 나뭇가지가 어쩌다 새 한 마리 앉아 있다고 새가 짓지 않은 집을 대신 짓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이 시를 옮겨 적은 적 있다. 편지 덕분에 그는 집을 짓지 말아야 할 까닭을 알게 되었을지도.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애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부분
4년 전인가, 이튿날 아침햇살까지 대출이라도 받았나 싶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가을햇살이 미처 붉어지지 못한 열매를 재촉하는 늦은 오후, 네 목소리를 들었다. 어제라도 만난 듯 안부를 굳이 묻지 않는 네가 고마웠다. 오로지 내 목소리를 듣고자 신호음을 울린 사람이 있다는 게 눈물겨웠다. 손을 맞잡고 걸었던 그때, 서로의 완력만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그때, 아니 만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어쩌면 우리는 어께를 나란히 하며 저녁강에 발을 담근 느티나무였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어께를 기댈 순 있으나, 뿌리가 엉킬 순 있으나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쉽게 하나로 합쳐지는 물이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 ‘누구든 떠나갈 때는’ 부분
2
선생님께 편지 쓰기?
방학숙제에 늘 빠지지 않지만 방학 직후에는 안부 인사를 드릴 만할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개학이 가까워지면 곧 뵙게 되는데 싶어 늘 빠뜨리게 되는 편지 쓰기를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실행에 옮겨봤다. 형식적으로 몇 줄 쓰고 나자 딱히 할 말도 없고, 등에선 땀이 여러 개의 물줄기를 만들고 있어 집어치우려는 찰나 그해 봄에 데려온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채 이해하지도 못한 시를 옮겨 쓰기 시작했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 ‘안개 속에 숨다’ 부분
거미에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오월과 유월 사이 내
안의 거미를 지켜볼 뿐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것
- ‘거미’ 부분
삶을 채 알지도 못하는 어린 제자가 마치 삶은 이런 것이라는 둥 지껄인 편지를 받고서 과연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지금도 그 편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아, 시에 대한 느낌이라도 뺐더라면! 선생님이 친절하지 않아 답장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개학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멍청한 눈빛을 준비할까. 마음잡고 공부 열심히 하는 척할까. 아니지, 다른 친구들의 편지도 받으셨을 텐데 내 편지는 금방 잊으셨을 거야. 괜한 걱정으로 시간 낭비할 뻔했군.
“편지를 한 통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두 통이나 받았구나.”
개학일,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얼른 눈을 내려 깔았으나, 나머지 한 놈이 누군지 적잖이 궁금해 눈길은 민첩하게 포복하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반장 녀석인가, 글 좀 쓴다는 쟨가, 묘한 질투심이 발동했다. 여하튼 어떤 편지를 받았더라도 선생님을 자못 기뻐하셨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연애편지 쓰기도 힘들어하는 남학교 아이들이, 그것도 남선생님께 편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아직까지 내 편지를 보관하고 계신 건 아닐까, 슬쩍 겁난다. 이사하다 자연스레 잃어버리셨기를.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 ‘목련’ 부분
파릇한 기운이 땅을 적실라치면 버릇처럼 읊조리게 되는 시. 김동진 가곡 ‘목련화’와 함께 습관적으로 좋아하다 목련 꽃잎이 칙칙하게 골목 모퉁이를 나뒹굴 무렵이면 지레 시들해지고 마는. 내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불안함과 당체 알 수 없는 세상과 무엇보다 불확실한 나, 현재가 무작정 버거웠다. 졸업 이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으며 탕진할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노름꾼이 되어갔다. 물론 가면 몇 개쯤은 지니고 있어 때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골라 실컷 웃을 수 있었다.
봄이었고, 따라서 학교 연례행사인 환경미화가 시작되자 얼굴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생님이 내게 학급 시간표를 만들어 보라고 권하셨다. 귀찮았지만 아침내 웃는 가면을 쓰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끝내려는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작품 하나 탄생시키는 화가인 양 모양새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좋게 말하자면 추상화의 모호함이었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실용성 전혀 없어 보이는 시간표일 따름이었다. 최소한 교과명이 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 시간표를 굳이 학급 게시판에 붙이지 않아도 좋으련만, 기어코 생명력을 부여하고 만 선생님. 정신 사납게 만드는 나의 작품으로 인해 미화평가점수가 적어도 십 점은 감점되었을 텐데……. 시간표는 천천히 낡아갔다.
선생님은 좀 달랐다. 학생 가방을 수시로 검사하여 담배 비슷한 것이라도 나오면 몽둥이부터 들고 보는, 그런 작자가 아니었다. 가방 검사도 안 했지만, 설혹 학생이 실수로 그것을 보였더라도 압수해 가지 않았다. 오늘보다 내일은 적게 피워보라는, 조금씩 줄여보라는 충고가 전부였다. 자신은 정작 비흡연자였는데도 금연하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위로하기까지 했다.
목의 답답함을 못 견디시는지 언제나 와이셔츠 단추 두 개쯤 풀어놓던 선생님을 떠올리면 류시화 첫 시집이 뒤미처 따라온다. 시집의 표지만 봐도 선생님의 얼굴이 때때로 그려진다.
3
‘그해 겨울 런던의 히스로우 공항에 도착해 피웠던 첫 담배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시대의 우울 / 최영미 / 창비 / 1997)’
그해 겨울 장성의 육군공병학교 폭파반 앞 잔디밭에서 피웠던 첫 담배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논산 훈련소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자대 배치를 받아 꽉 찬 이등병 생활을 해야 하는 동기들을 환송하고, 남은 소대원 몇은 뿔뿔이 흩어져 남행열차에 올랐다. 육군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곳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입교하고 바로 사역에 불려나갔는데 글쎄 휴식 시간에 한 기수 빠른 교육병이 보급 담배인 팔팔라이트를 꺼내 한 개비씩 돌렸다. 지이익, 담배에 불붙는 소리를 듣자 지난 50여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처럼 훈련소 입소하기 직전 마지막 끽연과 안타까운 키스를 한 이후 처음이었을 맞은편 동기를 쳐다봤다. 황홀해 하는 저 얼굴이 내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세기말의 그 어떤 기억보다 뚜렷하다.
아마 그때부터 그 녀석과 가까워졌나 보다. 도화선에 불붙이고 냅다 뛰어와 숨을 몰아쉬면서, 안전핀 제거! 폭파! 폭파! 폭파! 를 외치면서.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꽃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길 위에서의 생각’ 전문
스무 번 가량 류시화의 첫 시집을 펼쳤더니 암송할 수 있는 시가 삼십 편 남짓 되었다.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외우자 삶의 모순 뒤에 숨은 시어의 비밀이 리듬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안에 굴러도 상처 나지 않도록 낱말을 끝없이 둥글게 조각하는, 그렇게 한 편의 시가 머릿속에서 완성되어야만 비로소 종이에 옮기는 시인의 시작(詩作)은 머리가 아닌 혀로 전달될 때야 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길 위에서의 생각’은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의 서문의 역할을 할 만큼 시인이 애착하는 작품이다. 교육 마치고 헐떡 고개(누구나 헐떡거리게 만들 정도로 가파른 고개여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음)를 넘자 유유자적이 되었던 탓일까,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녀석에게 이 시를 들려주었더니 그야말로 뻑 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정신교육이나 이론 교육 시간에 류시화나 최영미, 랭보나 예이츠를 녀석의 훈련용수첩(‘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로 시작하는 복무 신조가 애국가 다음으로 편집된 수첩)에 적어 주었고, 녀석은 내 수첩 귀퉁이를 김소월이나 서정윤, 용혜원 시로 장식했다. 한번은 국방일보로 창 닦다가 우연찮게 내 눈에 들어온 시를 찢어와 적어 주기도 했다. 어떤 시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밤의 꿈으로 문질러 두고
지금 窓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日常의 책장들
良識은 굳은 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一部分씩 닦여져 나간다.
-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활’ 부분
류시화가 안재찬으로 불렸을 적의 시도 적어 준 것 같은데, 이는 확실하지 않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일상의 책장’을 어서 넘겼으면 싶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참, 류시화가 어렸을 때 지었다는 시는 분명하게 전했다. 쓸데없이 오밤중에 산을 타는 훈련 중이었다. 야간 교육이라는 게 태반이 잘 짱박히는 연습을 하는 거였고, 게다가 그곳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는 중학교 동창을 만나 운 좋게 튀긴 건빵을 손에 넣은 터라, 무더기 여유를 부리며 우리는 밤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밤하늘에 한 글자 한 글자 쓰듯 천천히 읊었다.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
땅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그래, 별들만큼 사람이 많은 것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이지
-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류시화 / 푸른숲 / 1991)
‘저마다 다른 별에서 왔기’에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한 세상을, 하나의 별을 알아가는 거겠지. 개개인의 고유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구에서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듯 별을 대놓고 훔쳐보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인인 사람도 있는 모양이라는 녀석의 반응에 장면 하나가 스쳤다. 어느 상점 앞 버려진 소파에 한 어린 소년이 해바라기라도 하듯 무릎을 모으고 졸고 있었다. 상점 주인이 나와 대체 여기서 뭐하냐는 질문에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시인이에요. 꿈을 꾸고 있었어요.” 그 소년은 바로 장 니꼴라 아르뛰르 랭보.
안재찬 어린이도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시인으로 여겼을까. 시인이란 모름지기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내가 사는 집
근처의 눈 속에는
참 많은 귀뚜라미들이 살고 있어
밤이 넘도록 내 집 빈 곳을 채우면서
글쎄 글쎄 글쎄 하고 웁니다
어떤 때 그 울음 소리는
낮은 자리에 누워 있는 내 귀에
슬퍼 슬퍼 슬퍼 하는 듯 들립니다.
내 집의 귀뚜라미들은 모두
눈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낮게 불 한 점을 켜고
하루종일 나는 몸이 아픕니다
- ‘유서, 나는 평민이었습니다’ 전문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군가 ‘전우’에서처럼 ‘한 가치의 담배도 나눠 피우’던 녀석은 양평으로, 나는 가평으로 자대 배치 받은 이후엔 편지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휴가 나와서 류시화 첫 시집을 소포로 보냈더니, 왜 이 시는 말해 주지 않았느냐며 편지로 따졌다.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되었단다. 우리 또한 각자의 별에서 온 게 맞나보군, 그려.
4
맘에 드는 원룸이 없었던 게 아니라 월세 낮은 원룸이 없어 한층 무더웠던 여름. 보증금 올려 받고 세 좀 낮춰 주시면 안 될까요, 노래 부르는 것도 짜증나 한 집만 더 보고 오늘은 접어야겠다 싶을 때 시인을 만났다.
“유학 간다고 내놓더니 요즘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나 보네. 좀 낡긴 하지? 뭐, 평생 살 것도 아니잖아. 좀 좁으면 어때. 혼자 살 건대. 봐, 부엌이 분리되어 있어 얼마나 좋아. 세탁기는 여기다 놓으면 되고. 참, 침대는 있어? 안 쓴다고? 없으면 넓게 쓰고 좋지 뭐. 요샌 다 세 받아먹으려고 하지. 보증금 올려 받으면 나갈 때 골치만 아파. 이 동네에서 이 정도 세로 이만한 집 못 구한다니까.”
덜컥 계약하고 말았다. 보자마자 대놓고 하대하는 중개인 아줌마가 거슬렸지만 설득에 넘어가는 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보다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과 사이좋게 서 있는 보랏빛 책등 때문이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책등을 쓸어내렸다.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사적인 시간이 잔뜩 묻어나, 차마 꺼내 펼쳐볼 용기까진 내지 못했다.
안녕! 내 혼의 무게로 쓰여진 이 시들을 이해하려면
너 또한 네 혼의 무게로 잠 못 이루어야지
- ‘시를 평론한다는 사람들에게’ 부분
같은 인쇄 과정을 거쳐 같은 크기로 제작되어 같은 위치에 놓여있을 때까진 시인의 혼밖에 담겨 있지 않지만, 저마다 다른 별에서 온 독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부터는 더 이상 같은 시집일 수 없다. 독자의 혼이 배기 시작했기 때문. 펼치는 횟수에 비례하게 쌓여가는 독자의 혼을 나는 감히 엿볼 수 없었던 거다. 감히 그의 감응을 평할 수 없었던 거다.
저자의 혼이 담긴 책에 독자가 손때나 침, 비스킷 가루만 묻히는 게 아니다. 경중은 확연하게 차이나겠지만 얼마간의 독자 혼도 담기기 마련이다. 하여, 1994년 2월에 찍은 34쇄본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이 세상에 한 권뿐인 특별한 시집이다.
5
4,500원의 시간이 흘렀다. 한 권의 책을 만나지도. 한 사람을 만난 지도.
2,500원이었을 때 만나 3,000원일 때 품었던, 7,000원인 지금까지 포옹을 끝내지 않은 책과 사람. 내가 그를 기억하고 싶다기보다는 그가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싶은 욕심으로 내민 책. 그리하여 나의 명함이 되어버린 책.
연락이 닿지 않아도, 시간 때우려 들어간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거나 늦은 오후 한강철교를 건너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목도하게 된다면 먼저 나를 떠올릴 특별한 명함.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권쯤의 명함을 돌렸다. 앞으로 내 특별한 명함을 받을 이 몇 남아 있기를. 제대 후 음반매장 지나치기 아쉬워 들렀더니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온, 달랑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00쇄 기념 시 낭송 테이프를 함께 들어보는 순간이 오기를. 북인도 바라나시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와 류시화 육성이 어떤 색채로 귓가에 와 부딪치는지 지켜보기를.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도 나는 마른 나뭇잎에 ‘소금인형’을 적어 넣은 액자가 걸린 술집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암만 기다려도 안치환이 부르는 ‘소금인형’은 흐르지 않았다고.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나무’ 부분
그리고 시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삶 또한 많은 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물 흐르듯 보여 준 영화 <시>에 대해서 말할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나무를 봤지만 여태 단 한 번도 바라본 적 없는 미자(윤정희 분). 그가 나무를 향해 쳐든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생존의 꿈틀거림이 발견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시는 이미 미자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사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명사가 도망가고 없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런 눈부신 순간이 여생에 더러 찾아오기를.
6
“당신은 바람이야. 바람으로 이 세상에 와서 바람처럼 떠돌다 가기 때문에 발 붙일 데가 아무 곳에도 없어.”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 류시화 / 문학동네 1994 )
7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 ‘눈 위에 쓴 시’ 전문



◆ 일러두기
1. 발췌 기록이 없는 시는 모두 류시화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실린 작품이다.
2. 류시화 두 번째 시집인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제외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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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