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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박스 세트 (5disc)
글쓴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워너비 엔터테인먼트
평균
별점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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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늦은 밤 텔리비전에서 볼 만한 게 없어서 책을 보려다 디뷔디를 뽑았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5개 영화가 들어있는 모음이어서 골라야 했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를 마음속으로  세 번 외치고 고른 건, 



이 감독의 가장 이름난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본 듯해서 빼고,



1시간 43분짜리 영화 <올리브나무 사이로 Zire darakhatan zeyton, 1994년>다. 



 



영화 속의 영화, 그 안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별로다 싶은데 갈수록 빠져들어 다 볼 수밖에 없었다.



보고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젊었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별 넷을 주었다.



 



2.



이란 대지진을 영화 속으로 불러들여 그 속에서 영화를 찍으려 한다. 영화 속의 영화 촬영.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이 무너진 곳에서 찍는 영화여서 슬픔만 가득 찰 듯하지만,



슬픔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려는 이들을 그렸다.



 



영화 속의 감독(모하마드 알리 케샤바르즈)은 지진으로 엉망이 된 곳에서 영화를 찍는데,



그곳 사람들을 배우로 고른다.



그 가운데 지진으로 어버이를 잃고 할머니와 살아가는 타헤레(타헤레 나다니안)도 있었다.



본디 잘 사는 집의 딸이어서 늘 공부하고 더 배우고 싶어한다.



 



영화 속에서 흙벽돌집 2층에 신혼집을 만들고 가시버시가 살아가는 모습을 영화로 그렸는데,



타헤레가 아내로 나온다. 처음에 같이 연기하던 사내는 계집 앞에서는 말을 더듬는 이여서



곧 잘린다. 대타로 나온 이가 벽돌공으로 일했던 호세인(호세인 레자이)이다.



이들이 영화를 찍을 때와 영화 밖에서 나누는 모습들이 씨줄과 날실로 엮여서 나아간다.



 



3.



타헤레와 호세인이 짝을 맞추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엇박자가 난다.



이제는 타헤레가 제가 맡은 말을 하지 않아서다. 감독의 "컷"이 몇 번 나온다.



 



영화를 찍기 앞서서 호세인은 타헤레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고 그 할머니한테 타헤레를



아내로 삼겠다며 달라고 했다.



세상을 오래 산 할머니는 단칼에 잘라버린다. 



"어림 반품 없는 소리 하지 마! 너처럼 까막눈에 집도 없는 사내한테 내 손녀를 줄 수는 없어!"



 



젊은 호세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돈 많은 늙은이한테 보낼 건가요? 사람은 돈만으로 살 수



없고, 글자를 몰라도 잘 살 수 있어요. 전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타헤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요." 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감독은 어느 쪽을 쉽게 손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를 더 볼 수밖에.



 



4. 



호세인이 기댈 데는 타헤레밖에 없다고 보고, 영화를 찍는 내내 쉴 틈이 생기면 얘기한다.



"할머니보다 네 마음을 알아야겠어. 나와 같이 사는 것을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든 타헤레를 꼬시려고(?) 하는데, 타헤레는 입을 닫고 말이 없다.



 



"난 앞으로 벽돌공으로 살지 않을 생각이야. 더 값어치 있는 삶을 살 것이고,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영화 찍을 때 너(아내)한테 투덜거리는 건 감독이 시켜서 그렇고, 같이 살면



너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야" 달콤한 말들을 해준다. 



 



심지어 "벽돌공을 다시 안 하고 싶지만, (지진으로 일거리가 많아서) 벽돌공으로 일해도 요즈음



일삯이 좋아서 많이 벌거든. 그 돈으로 네가 바라는 배움터에 보내주고 공부를 뒷바라지 할



수도 있어..." 장밋빛 앞날을 늘어놓는다.



이만 하면 넘어올 것도 같은데 타헤레는 말이 없다. 호세인은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다.



 



"말하기 싫으면, 보고 있는 책을 한 장 넘겨. 그러면 내 말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할게" 하며,



타헤레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애쓴다.



타헤레가 빨리 책을 넘겼으면 좋겠다, 언제 넘기나, 하면서 가슴을 졸이며 보고 있는데,



타헤레의 손이 책 한 장을 넘길까 말까 하며 망설일 때,



"빨리 다시 찍읍시다!"는 말이 떨어지면서 얄궂게도 호세인은 답을 얻지 못한다. 



 



영화 속의 호세인은 타헤레의 마음을 몰라서 속이 타지만, 



감독이 영화를 보는 이들과 밀당을 하는 이런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5.



감독이 영화 속의 감독한테 호세인을 도우라고 시키는 꼭지도 보기에 좋았다.



마음을 안 주는 타헤레보다는 짐차에 같이 타고가는 "농사꾼의 딸도 예쁜데 말을 붙여보면



어떨까" 하며, 호세인의 마음을 슬며시 떠보는데...호세인은 잘라 말한다.



"둘 다 까막눈이면 태어나는 아이한테 공부를 가르쳐줄 수 없어서 안돼요"



 



감독은 호세인의 입을 통해서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같이 살고,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이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고 내비친다.



있는 사람끼리, 배운 사람끼리만 같이 사는 건, 한쪽으로 쏠려서 사람들에게 좋지 않다고...



 



영화 속에서 타헤레는 한번도 호세인에게 제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렇게 참한 사내를 몰라보는 타헤레가 밉게 보이지만 감독의 솜씨이니 어쩌랴.



 



흙벽돌집, 무너진 집들, 흙길...어디를 둘러봐도 영화 속은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없다.



영화를 찍을 때 입을 옷이 없어 동무한테 빌려올 수밖에 없는 타헤레의 모습이나,



촬영장을 꾸밀 때 쓰는 화분 따위도 가까이 사는 이들이 집에서 가져와서 쓰고,



어제 신은 흰 양말을 다시 신고 나서는 호세인을 보여주는 꼭지 따위에서



없는 티가 풀풀 나지만 보여주는 알맹이는 알차고 마음에 남는다.



 



감독의 컷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나 같은 꼭지를 다시 하는 호세인을 맡은 이가 



영화 속의 배우이긴 하지만 같은 사내로서 안쓰럽지만 대견하게 보였다. 



호세인과 타헤레의 꼬인 사이를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애쓰는, 감독을 맡은 케샤바르즈는,



차를 타지 않고 지름길로 걸어서 집에 가려는 타헤레를 보고 망설이는 호세인한테



"너도 빨리 걸어서 가!" 할 때의 짓궂지만 농익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6.



타헤레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안달이 난 호세인이 산등성이에서 올리브나무 사이로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타헤레를 볼 때의 안타까운 얼굴은 내가 겪은 일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호세인은 다시 산등성이를 넘고 뛰어서 타헤레를 따라간다. 



 



끝마무리는 말로써 보여주지 않고 멀리서 눈으로 볼 뿐이다.



호세인이 타헤레를 만나고 되돌아올 때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오면 타헤레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웃으며 달려올 때는 일이 잘 풀렸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영화를 보는 우리로선 받아들여야 하지만, 나는 젊은이들의 참사랑을 믿고 싶다.



 



7.



이 디뷔디는 오래된 것이다. 2012년에 나왔으니 벌써 열 해가 지났다.



싸게 산 것이어서 안에 별다른 게 없다. 이 영화는 예고편마저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말로 옮긴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나마 이 디뷔디는 이제 나오지 않아 살 수가 없다. 디뷔디가 보여주는 아쉬움이다.



 



만든 지 서른 해가 지나는 영화이고 뒤늦게 보았지만, 그래도 풋풋하고 참된 사랑을



보여주려고 애쓴 영화여서 머리에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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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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