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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름난 마을이 있는 줄 몰랐다. 파로 님의 사랑방에서 볼 때까지는.


바다가 바로 보이지 않는 바닷가 가까이에 있는 마을, 야소골은 이렇게 나한테 다가왔다.


파로 님이 돈 벌어서 땅을 사고 싶다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을이라서 더 궁금했다.


 


2. 야소골/야솟골/야시골/야싯골은 어떤 곳인가?


 


<야솟골 찬가>   


내 요람 야솟골은 씨알 만한 동네


산울림이 뇌이는 동화 속에 잠기어


세월도 비켜가는 그런 동네


법보다 먼저 순리를 익히어


우러러 섬기고 굽어 아끼며


울타리 넘나드는 치자향기 이웃


눈만 주면 풀빛도 따라와 주고


삼동볕도 나누어 쬐는 사람들


세상 눈치 안 보고 옛말하면서


까치밥 한 알 감도 남겨두는 동네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 서우승 시인의 시를 큰 돌에다 새겨놓았다.


(http://whinsuri.tistory.com/48)


 


야소골은 경남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에 있는 마을로, 미륵섬에 있으며, 미륵산이 둘러싸고 있다.


미륵섬은 옛날의 통영과는 바다가 사이에 놓였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때에는 바다 밑으로 굴을 파서 이었고,


이제는 큰 다리 두 개가 놓여져 통영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뒤쪽은 미륵산이 감싸안고 앞쪽은 조금 틔어있는 야소골,


미륵산 중턱에서 보면 남해 바다가 보이지만, 마을에선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삼도 수군통제영 시절에 무기를 만들던 대장간이 있었다고 해서


풀무 '야'(冶)와 바 '소'(所)자를 따서 '야소골' '야솟골'이라 불렀다는 말도 있고,


마을을 끼고 있는 미륵산에 야시(여우의 경상도 사투리)가 많았다고 해서 '야싯골'이라 불렀다 한다.


 


우리네 마을이름들을 뜯어보면 어려운 한자를 쓰기보다는 그냥 우리말로 부른 게 많았다.


우리 고향의 옆마을도 구석진 곳에 있다고 해서 '구석골' 이라 했고,


달구벌에 있는 마을도 큰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해서 '한실'로 부르는 곳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우가 많이 있어 '야싯골'로 불렀다는 데 마음이 간다.


 


대장간이 있었던 윗마을은 웃땀(상촌)이라 하고, 아랫마을은 아래땀(하촌, 탑내)이라 불렀다.


마을회관이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운데에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마을 어른들은 말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3. 미륵산


 


야싯골을 둘러싸고 있는 미륵산은 용화산이라 하기도 하며, 높이가 461미터인 아담한 산이다.


미륵부처의 이름을 붙인 산에는 아랫자락에 용화사와 관음사, 도솔암이 있고, 윗자락엔 미래사가 있다.


케이블카가 있어 통영시쪽에서 타고 올라올 수도 있고, 용화사쪽으로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 수도 있다.


용화사에서 올라와도 거의 1시간 무렵이면 오르며, 야싯골에서 올라가도 거의 비슷하다.


 


미륵산 꼭대기에서 보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바다와 섬이 어우러져 멋지다.


그런 풍경 틈바구니에서 내려다 보면 야싯골이 보인다.


 


야싯골은 다랑논이 이름났다.


다랑논은 우리네 옛사람들이 땅 한 뼘이라도 있으면 쌀농사를 더 지으려고 만든 것이라


그네들의 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다랑논으로는 중국의 윈난성에 있는 위앤양 티티엔이 세계에서 이름났지만,


우리나라도 야싯골에서 가까운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과 경주시 내남면 비지리도 보기에 좋았다. 


 


다랑논은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담았을 때가 보기에 좋을 듯했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야싯골 다랑논을 찍으려고 철마다 미륵산에 찾아온다고 한다.


미륵산에서 내려다 보는 야싯골 다랑논이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아 그럴 것이다. 


 



 



4. 방송을 탄 야싯골


 


(1) 출세만세


미륵산에 오른 사람들이 다랑논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가던 곳, 야싯골.


사진에서 텔리비전으로 옮겨간 건 2010년 1월 3일에 서울방송이 내보낸 <출세만세>때문이다.


그 제1부 <야소골 출세기 100년>을 통해서다. (http://blog.daum.net/suncoach/1631204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7460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7460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74601)


 


아흔 집이 채되지 않는 마을에서 국회의원과 검사, 변호사, 변리사, 한의사, 치과의사, 교수,


방송사 프로듀서, 시인 들을 키워낸 탓이다. 한 마디로 이 마을에서 잘난 사람이 많이 나왔다는 것.


그 비결은 무엇일까? 남규홍 피디는 이것을 방송으로 알렸다.


 


"우리는 못 배웠기 때문에 자식들만큼은 ..."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애들은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


"(나는 아들한테) 절대 하지 마라, 과외도 하지 말고, 아버지가 어쨌든 돈은 보내줄 테니까 (공부만 해라)"


 


오로지 아들의 출세만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고, 번 돈을 모두 그 밑에다 쓴 끝에 얻은 열매라는 것.


그래서 많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 고시나 그 비슷한 것에 붙은 이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


 


나는 뒤늦게 이 방송을 보았다. 그런데 보면서 씁쓸했다.


힘 있고 자리 좋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거나 돈을 챙겨가는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생긴 바람이지만,


오로지 남들 앞에서 힘을 쓸 수 있는 판사와 검사가 되길 바라는 어른들을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은행(요즈음 신의 일터로 불린다)에 들어갔으면 나름 잘 된 일인데도,


거기에 가려고 서울대를 다녔냐며 고시를 하기를 바랐던 어머니...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야 한다며 밀어붙인 아버지...


서울대나 그 비슷한 대학을 나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붙어서 떵떵거리며 살기를 바랐을 테고,


노는 피붙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시원스레 풀어줄 힘이 되었으면 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어머님도 처음에는 아들이 서울대에 갔으니 그렇게 되길 바랬지만,


글쟁이가 되는 바람에 서운한 마음이었다는 선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하고 싶고 보람있는 일을 하거나 세상을 올바르게 끌어가는 이가 되라고 한 이는 없고,


오로지 집안을 빛내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일자리만 찾아가길 바라는 그네들의 바람은


본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뿌리를 생각하면 나무랄 수만도 없고, 그저 서글픈 우리네 모습이리라.


 


야싯골을 넘어 통영에서 행정고시에 처음으로 붙은 이가 나중에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죽었는데,


그 어머니가 "(높은 자리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일을 하더라도) 건강하게 살면서 일을 했으면..." 하며


아쉬워할 때, 저게 우리네 어버이가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방송 이야기를 들은, 고향이 통영인 공병호 박사는 


야싯골에 출세한 사람이 많은 까닭을 말했는데 내 마음에는 그리 와닿지 않았다.


"그 마을이 지세가 뛰어나거나, 물이 좋거나, 유독 유전자가 뛰어나는 등과 같은 요인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누구 집안의 아들은 뭐가 되었다더라, 누구 집은 무엇이 되었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에서 이뤄야 할 기대 수준이 더 높고 큰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머리를 타고났으며, 어버이들이 어떻게든 공부해야 한다고 밀어붙였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이 제 마음에 차지 않아서 공부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애쓴 끝에


그렇게 되었다고 나는 본다.


 


그 마을에서 태어난 새누리당의 이군현 국회의원과 검사, 한의사가 방송에 나왔으나,


야싯골을 밝히는 이들은 내가 보기에는 출세한 이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2) 짝


2011년 1월초에 나온 서울방송 <짝> 그 제2부인 <너는 내 운명인가?>도 마을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야싯골의 김덕래 할아버지가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사랑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다.


나는 이 방송도 구경하지 못했다.


(http://netv.sbs.co.kr/player/netv_player.jsp?uccid=10000607176&boxid=&st=0&cooper=NAVER)


 


5. 야싯골을 밝히는 사람들


 


(1) 서우승 시조시인


다랑논 사진으로 보는 야싯골이 아니라면, 야싯골은 설엽 서우승 시인의 글에서 알려졌다.


시조시인으로 가난해서 중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야싯골에 살면서 통영을 빛낸 시인이라 한다.


이호우 시조문학상과 청마문학상을 받았단다.


찾아 보았더니 <통영의 딸깍발이 시인-서우승론>을 쓴 이상옥씨의 글이 여기 예스24에 있다.


(http://blog.yes24.com/document/1305014)


 


<고향>


어딜까 까치밥 남긴


감나무 섰던 곳이


금의환향 저 노인장, 노 저어 더듬고 있다


담부랑


가리개 삼아


넘나들던 인정도


 


언덕배기 미루나무가


흉터로 증언하는


여기는 수몰지구, 세월도 비켜가던 동네


평생을 떠돌면서도


신앙이던 고향 아닌가.


 


알아서들 살아가게나.


두루 용납하던


너와 나의 고향, 둘러볼 때 놓치는 갑다


목청껏


허우대는 손끝


꿈에 자주 스치니.


 


이분의 시는 마을 들머리에도 있지만,


연못가에는 시인이 쓴 시 <물소리>를 돌에 새겨 기리고 있었다.


2008년 3월 30일에 돌아가셨는데, 해마다 <설엽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탑내 숲에서


시인을 기린다 한다.


 


(2) 블로거 린린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서우승 시인의 시나 야싯골의 사진이나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 이다.


<다음>의 티스토리에 <이런저런 이야기>라는 사랑방을 열어놓고 있다.


그의 글에 나타난 것을 보면 아내가 야싯골 사람이란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주 미륵산에 오르고 야싯골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이런저런 시를 옮겨와서 보여주며, 철마다 야싯골에 나타나는 것들을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그가 쓴 글과 찍은 사진, 옮긴 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온다. 차를 대접받은 듯했다.


 


서울방송에서 내보낸 <출세만세-야소골 출세기 100년>을 보면서,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야소골의 원래 '이미지'는 이게 아닌데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또 마음 한 편이 '불편'하고,


'유감'스러움은 감출 수가 없네요..."


그래서 진각국사 혜심 스님(1178~1234)의 시 <지족락 知足樂>을 올려놓았다. 


(http://whinsuri.tistory.com/700)


 


뜬구름같은 부귀영화 나에게 무슨 소용


분수따라 사는 생애도 절로 아름다워라.


근심이 찾아오지 않는데 어찌 술이 필요하랴


마음편한 곳 얻으면 그게 바로 내집인 것을


 


(3) 치과의사 김병헌


통영 시내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병헌씨와 아내 김은하씨는 이곳 야싯골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와 장모를 모시고 살려고 터를 알아본 다음 이곳에 집을 짓고 '고은재'라 이름 붙였다.


 


이들은 저들만 잘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마을에도 이바지를 했다.


제 땅에다 서우승 시인의 시를 돌에 새겨 기리는 일에 앞장을 선 것이다.


아무나 선뜻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땅과 돈을 들이는 일이라...


큰 길에서 야싯골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있으며, 가장 좋아보이는 집에 산다.


그 집을 지을 때의 이야기는 다음의 누리집에 나온다.


(http://cafe.naver.com/pankyodandok/4766) (며칠 사이에 카페에 들지 않으면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집을 짓고 이들 가시버시가 어떻게 사는지는 조용헌씨의 글 <백가기행>에 잘 나타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을 불러 음악회를 열면서 먹을거리를 나누며 산다고 한다.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57479)


 


(4) 류우림 목사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울릉도에서도 살았던 시인이자 목사인 류우림씨도 야싯골에 빠지지 않는 이다.


시골이지만 가까이에 도서관과 학교가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강원도 주문진 사람인 아내와 딸과 함께 이곳에다 황토집을 지었다. 


(http://blog.daum.net/tourmaline/12122152)


 


야싯골로 들어오다 보면 어귀에 있는 돌무더기탑 두 개를 지나서 연못가 길 오른쪽에


<우림교회>란 팻말을 달아놓았지만 찾아가는 건 쉽지 않다.


도자기를 굽고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아담한 목회를 꾸릴 생각이란다.


기독교를 먼저 내세우지 않아 그나마 야싯골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갈 수도 있겠으나,


부처님의 발자욱이 짙게 깔린 '미륵산' 자락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예수>


그 많은 길 다 어디다 두고


이리도 깊은 길로 오시는가


바람에 쓸리는 대 이파리 소리 같이


이렇게 푸르고 울창하신가


돌아보면 언제나 지척에 있는


작은 새의 날개로도 날아들 수 있는 길


어쩌자고 당신은


그 많은 사람들 두고


이리도 외로운 사람으로 오시는가


 


6. 야싯골에 가까이 있는 것들


 


야시골 어귀에는 <통영 산양스포츠파크>란 외우기 어려운 이름이 붙은 큰 건물이 있다.


마을 사람들도 가서 수영과 헬스를 할 수 있으며, 축구장과 농구장, 다른 경기장도 같이 있다.


암벽등반도 할 수 있게 해놓고, 아이들 놀이터도 있어 통영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http://blog.naver.com/yskepco?Redirect=Log&logNo=100157996065)


 


어귀에서 동쪽으로 700미터만 가면 <박경리 기념관>이 있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자리인데, 기념관에서 조금 올라 가면 선생이 묻힌 무덤도 있다.


 


다시 미륵산 뒤쪽으로 돌아가면 용화사 어귀에 못가서 <전혁림 미술관>도 있다.


청마 유치환 시인과 희곡을 쓴 유치진 선생, 작곡가 윤이상 선생, 김춘수 시인을 비롯해서


통영이 낳은 이름난 예술가들이 많은데, 그림에서는 이 분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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