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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미리내
- 작성일
- 2016.12.1
로스트 인 더스트
- 감독
- 데이빗 맥켄지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16년 11월 3일
1.
그날은 무엇에 씌었는지 차를 뒤로 몰다가 다른 차를 긁었다.
내 차도 긁혔고...좋은 임자를 만나 돈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찜찜한 날이었다.
내 차를 고치는 사이에 혼자 영화를 보았다. 벌써 세 이레가 지났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굽이가 많은지...
한 해에 영화를 몇 편 볼 수 없다는 게 속상하다.
그렇게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데이비드 맥켄지 감독이 만든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2016년>는
엇갈려 사는 형과 아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피붙이를 바라보는 눈길을 담담하게 그렸다.
큰 울림은 없었으나 삶과 피붙이가 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얼핏 보면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8년>에서 생각없이 막 사는,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삶을 보는 느낌이 들지만,
사는 나라가 달라도 '사랑은 치사랑이 아니라 내리사랑'이라는 예나지나 내려오는 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짐작하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
텍사스 주에 있는 미드랜드 은행의 지점을 털려고 나선 두 사내.
총을 겨누고 돈을 빼앗지만 큰 돈은 털지 않고 잔돈만 가져간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돈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 하고...
바보라고 하는 말에는 대들지만...
아니, 이상한 강도들이다.
돈을 훔치려고 나섰으면 많이 가져가야지...
작은 돈가게만 털고, 씨씨티브이가 고장나서 안 되는 곳만 덮치다니, 이건 좀도둑일세.
이들의 속셈은 뭘까?
고을 보안관이나 연방 경찰이 짐작하기에는 큰 돈은 괜스레 흔적을 남기고 그 끝엔 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
돈가게를 털자고 꾀를 낸 이는 교도소에서 나와 일없이 지내는 형 태너 하워드(벤 포스터)다.
(아우가 꾀를 먼저 냈을까?)
그런 일을 혼자 할 수 없고 아내와 헤어지고 물려받은 작은 농장도 담보를 잡힌 은행에 넘어갈 판이어서
이런 일을 해보지 않고 착하게 산 아우 토비(크리스 파인)도 끼어들었다.
영화는 이들이 왜 돈가게를 털 수밖에 없는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스스로 하는 말들과 엮인 일들로 보는 이들에게 알려준다.
텍사스 연방경찰(레인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알베르토 파커(길 버밍햄)가
이들을 좇으면서 제 삶과 얽힌 다른 삶들이 어떤지 둘의 얘기를 통해서 보여준다.
3.
감독은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가 보다.
돈이 없을 때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사람답게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벌 수도 있고,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버이가 제 씨앗들에게 뭘 물려주어야 하나?
돈, 지식, 솜씨 ...
감독은 돈을 물려주라고 한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영화 속에서 토비가 하는 말은 그렇다는 것이다.
잘 산다는 나라 미국에서도 돈이 없으면 꽝이다.
그래서 제 팔 제 흔들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끝은 찬바람이 부는 세상일 테지만...
감독은 피붙이한테 큰 돈을 물려주는데 누군가 밑거름이 되는 건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챙겨간 돈은 한 푼 두 푼 모아서 돈가게에 맡긴 사람의 돈인데
알토란 같은 돈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나쁘게 그려진 은행은 제 나름의 죄값이나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은행에서 돈을 빼서 한 집에 몰아주는 건 로또와는 다른 일이라 생각한다.
영화가 돈을 털어가는 사내 둘과 그들을 잡으려는 사내 둘이 얽혀 미국이란 곳의 속살을 보여주면서
보는 이의 눈을 끌어가지만, 영화를 보고난 내 머리속에서는 자꾸 뭔가 안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4.
나는 요즈음 기본소득제가 마음에 든다.
사람꼴을 하고 태어났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한 달에 얼마든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돈을 주자는 것.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솜씨가 모자라거나 배움이 적어도, 일자리가 있든지 그냥 놀고 있든지,
가리지 않고 누구든 한 달에 얼마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밑돈이 있으면, 간과 쓸개를 집에 빼놓고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또 쥐꼬리만한 돈을 주면서 온갖 구박을 하는 일터 임자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큰 돈을 꿈꾸지 않고 작은 돈을 갖고 제 나름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런 돈을 주면 놀고 먹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 한다.
나는 그런 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해서 버는 돈보다는 밑돈으로 주는 돈은 적기 때문에 더 쓸 곳이 있거나 더 벌어야 하는 사람은
일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렇게 줄 돈이 어디 있냐고 한다.
나는 세금을 더 걷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법인세를 적게 내게 해보았자 그 일터의 임자만 배를 불리게 된다.
그들은 돈이 많다. 그들에게 올려서 세금으로 내는 돈은 그들에겐 큰 돈이 아니다.
세금을 올리고 기초연금 따위를 없애며, 다른 예산을 아껴 쓰면 기본소득제를 할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에는 조금 적은 돈을 주고, 형편이 나아지면 조금씩 돈을 올리면 된다.
누구나 밥을 굶지 않고 작은 잠자리지만 잘 곳이 있으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 세상이 한 사람이 로또를 맞는 것보다 나은 곳이리라.
영화에서 보여주는 마무리보다는 나을 듯하다.
5.
아쉬움이 남는 꼭지들이 더러 있었다.
달아나는 은행털이들을 따라 쫓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태너가 길에 서서 자동 소총을 마구 쏘자
안 되겠다 싶은지 차를 돌려 꽁무니를 내빼는 대목은 어색했다.
많은 사람들이 차로 막아놓고 긴 총으로 맞받아칠 수 있는데도 왜 달아났을까?
에단 코헨과 조엘 코헨 감독이 만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년>에서도
늙은 경찰 토미리 존스가 나와 젊고 사나운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를 잡는 모습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도 곧 나이가 차서 그만 둘 경찰 해밀턴이 젊은 태너를 잡으려 한다.
오래 일을 했으니까 잘 하기도 하겠지만, 총을 쏘고 싸우는 건 젊은 경찰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서 제프 브리지스를 돋보이게 하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또 영화 속에서는 태너와 토비는 사이좋은 것으로 나오지만,
교도소를 간 형과 그 사이에 집안을 돌보며 애를 쓴 아우가 사이가 좋을 수 있는지...
아무튼 감독은 속이 좋고 가슴이 넓은 듯하다.
같은 미국 사람이지만, 흰둥이 해밀턴이 인디언의 피가 섞인 듯 보이는 알베르토를 골려먹는 말들은
알베르토가 되치기도 하곤 하지만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토비와 해밀턴은 서로 앙갚음을 해야 속이 풀릴 사이인데도,
영화의 끝은 언젠가 한 잔 하면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 듯한 사이로 바뀔 것으로 내비친다.
감독이 세상에 내미는 화해의 손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년> 같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영화는
아닌 듯해서, 잘 짜인 얼개와 볼거리를 주었지만 별은 넷만 올렸다.
영화 이름은 '무슨 일이 있어도'(come hell or high water에서 come을 뺐다?)인데,
우리말로 엉뚱하게 지었다. <로스트 인 더스트> 무슨 뜻일까? 본디 이름도 아니고...좀 모자란 영화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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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