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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미리내
- 작성일
- 2017.2.19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감독
- 케네스 로너건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17년 2월 15일
1.
앞뒤에서, 양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훌쩍이거나 어깨를 들썩인다.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운다.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을 나서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너그러워진다.
같은 눈인데도 보는 눈이 다르다.
영화 한 편이 주는 맛이 참 고약(?)하다.
2시간 17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만든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년>를 보면서 생긴 일.
바닷가 마을(고을)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일들이 간만에 영화를 보게 된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꼬일 대로 꼬인 삶에도 한 줄기 따스한 햇살은 주겠지 싶은 마음을 송두리째 부셔버린다.
삶은 이다지도 어렵고 힘들기만 한지...
그렇지만 담담하게 풀어가고 억지로 짜맞추거나 섣부른 풀이를 하지 않는 감독의 솜씨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런 쪽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 다섯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2.
보스턴에서 빌딩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인 리 챈들러(케이시 에플렉)의 이즈음의 삶을 씨줄로 삼고,
보스턴에 오기 앞서 오래 살았던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날실로 삼아 영화는 나아간다.
보스턴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리한테 뜻밖의 소식이 온다.
맨체스터에 살며 배를 몰던 형 조 챈들러(카일 챈들러)가 죽었다는 것이다.
앞서부터 염통이 안 좋아서 오래 살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이렇게 일찍 그런 날이 올 줄이야...
리는 차로 1시간 남짓을 달려간다.
영화는 이 때부터 옛날 맨체스터에 있었던 일과 이즈음의 일을 왔다갔다 하면서 보여준다.
조가 죽었으니 아직 열일곱 살인 조카 패트릭 챈들러(루카스 헤지스)를 누가 돌보나?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는 어른이 곁에서 지켜봐 주어야 하는데, 조는 아우인 리가 맡길 바랐다.
혼자 사는 리는 펄쩍 뛰었지만 다른 길이 없다.
패트릭의 엄마는 집을 떠난 지 오래 되었고, 얼마 앞서 새로 살림을 차려서 멀리서 살고,
옛날부터 좀 모자란(?) 탓에 아들을 돌볼 사람이 못 된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미네소타에 사는 리의 삼촌네에 맡길 수도 없고...
리는 패트릭과 함께 보스턴에서 살고자 한다.
일터가 그곳에 있고, 맨체스터는 더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트릭은 다르다.
배움터의 하키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며, 저녁에는 밴드에서 노래를 하고,
아버지 조가 남긴 배를 팔고 싶지 않으며, 계집애를 둘이나 사귀고 있으니,
리를 따라 보스턴에 가고 싶지 않다. 그냥 맨체스터에 남고 싶다.
패트릭을 생각하면 리가 보스턴의 삶을 버리고 맨체스터에서 살아야 하고,
리를 생각하면 패트릭이 배움터를 옮기거나 다른 것들을 버려야 한다.
3.
리와 패트릭이 어디서 같이 사느냐?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아이가 어른을 따라서 살면 된다. 세상은 어른들 뜻대로 해왔고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아버지 조도 그렇게 하도록 해놓았다.
아니면 아이를 더 생각해서 리가 옮겨올 수도 있다.
보스턴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터라 맨체스터에서도 비슷한 허드렛일을 하면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감독은 일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옛날 일들을 끄집어 내어서 하나씩 보여준다.
이 때부터 나와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지 않으려 애쓰지만 가슴에서 그냥 나왔다. 조금씩 이어져 나오는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가 끝날 때쯤 손수건을 꺼내서 닦았지만, 그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삶은 누구한테도 고르지 않다. 제가 뜻한 대로 굴러가지도 않고...
리한테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왜 그리 모질게 리를 몰아부쳤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가 뭘 얼마나 잘못 했다고!
나는 우리들을 내려다보면서 지켜보는 하느님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의 잘잘못을 가려줄텐데, 세상은 나쁜 놈도 떵떵거리며 살거나 쉽게 벌을 받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산다고 좋은 일만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그저 어떤 일만 벌어질 따름이다.
그 일은 누구의 뜻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나.
내가 어떻게 해서 생기지 않는 일...
그 일이 생긴 다음에 그저 풀어가는 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4.
엉켜서 잘 풀리지 않는 삶에서 어렵게 버티며 살아가는 리의 모습을 보여준 케이시 에플렉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
수염을 깎지 않은 덥수룩한 얼굴과 가슴에 쌓아둔 슬픔 탓에 웃음을 보이지 않는 얼굴만으로도,
아기자기한 연기는 없어도 선이 굵고 진한 느낌이 와닿았다.
아쉬운 대목은 영화속에서 홀몸인 리가 좋은 짝을 만났으면 했는데
감독은 아직 그럴 수는 없어 하며 쉽게 엮어주지 않은 대목이었다.
샌디의 엄마 질(헤더 번스)이 홀몸인 리를 마음에 들어해서 살살 작업(?)을 거는데도
리가 눈치는 긁었지만 마음을 열지 않고 살며시 뿌리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조카 패트릭으로 나온 루카스 헤지스도 나름 잘 어울렸다.
케이시 에플렉의 농익은 연기에 뒤지지 않게 통통 튀는 싱싱한 맛을 보여주었다.
패트릭이 실비와 샌디를 사이에 두고 줄타기를 할 때나, 샌디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지만
샌디의 엄마가 끈질기게 막는 바람에 쉽게 이룰 수 없는 꼭지들은 사랑스럽다.
그런데 리의 집에 불이 났을 때의 꼭지는 아리송하다.
가게에서 먹을 것을 사오다가 집에 불이 난 모습을 보았으면 빨리 달려와서 뛰어들거나 나서야 할텐데
웬일인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미 끝나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리가 남의 일처럼 느끼는 모습이
어쩐지 낯이 설었다. 감독이 우리네와 다른 느낌으로 사는가?
5.
나한테는 리한테 쌀쌀맞고 차갑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감독이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저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부쳐야 하나...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슴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고 본다.
영화속에서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가 길에서 리한테 가슴이 미어지게 "당신을 정말 사랑해..." 할 때나,
맨체스터에서 살면 되지 않느냐며 따지는 패트릭한테 리가 "난 버틸 수가 없어..." 할 때는
감독이 뿌린 약(?) 때문에 내 눈 앞이 뿌옇게 바뀌었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쉽게 매듭짓지 않고 아프고 힘들지만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감독이 마음에 들었다.
그 끝이 남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어도 섭섭하지 않았다. 싸구려 끝맺음보다는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독의 솜씨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비슷한 듯하고,
내가 좋아하는 <비밀과 거짓말 Secrets & Lies, 1996년>의 마이크 리 감독과는 다르게 끝맺음을 하지만
둘 다 마음에 든다. 삶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게 좋았다.
<애널라이즈 디스 Analyze This, 1999년>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년> 같은 이름난
영화의 극본을 썼으니 글솜씨는 이미 알려졌으나, 이 감독이 만든 영화는 처음 보았다.
이 감독이 만든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 You Can Count on Me, 2000년>를 보진 못 했다.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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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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