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은 세상

하루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4.13
사람들이 떠나려고 한다. 지금의 자리가 불편한가보다. 사는게 비슷한 조건이라면 외로운 곳보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정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향수병을 앓아 몸이 망가진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일, 구동독 한 극장이 자금 위기를 벗어나려는 일환으로 구조조정 비슷한 일을 벌이는 와중에 힘과 수에 밀린 한 가수가 분을 못이겨 내민 계약해지 통보, 단순한 오페라 노동자가 아닌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갈채를 받고 싶은, 적어도 목소리로 승부하고 싶은 열정의 불씨가 살아있을 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에이전시 오디션을 보고 싶은 테너, 그의 아내는 현재 둘째 아기를 가졌다. 할 만큼 한 공부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명함을 내밀고 싶은 생계형 테너의 독일 콘서바토리움 유학 분투기등. 그런 그들이지만 꽤 괜찮은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모두 정년이 보장된 안락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란 점이다. 적어도 65세까지.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노후연금과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미래의 자신이 겪게 될 고충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가 확립된 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음악인이자 연주가들이며 한국사람들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한창때의 꿈을 안고 노래를 불렀을 그들은 유럽에서도 음악적 가치를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높이 받드는 나라인 독일의 여러 극장에서 주최하는 오디션에 임했다. 일찌기 역사적으로 음악의 종주국이었던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는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주며 국가적 사업으로 극장을 키우는 나라가 아니다. 음악의 나라였지만 실제적으로 음악인들이 일생동안 음악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도 오스트리아도 아닌 바로 독일이다. 음악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나라에도 최근 물밀듯이 들어오는 이방인들, 음악을 하는 이방인들, 특히 한국인 유학생들이 도를 넘을 정도로 많아졌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음악적으로 뭘 할 수 있을 지 고민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이 어렵지만 특히나 한국의 행정력은 음악전공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공부도 하고 가능하다면 유럽에서의 정착도 고려해본다. 학업을 마치고 오디션을 통과해 오케스트라의 기간제 연주자로 들어가 음악을 하는 학생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박수를 보내며 격려해 주고 싶은 젊은이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도 재계약의 기회를 갖기가 힘들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겠다.
음악을 연주하고 일상을 영위하고 싶었던 젊은 가장들, 그들의 대부분은 현재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인생의 깊이보다는 아직은 열심히 달려야 할 시기이다. 육아노동이 고되고 태어날 아기의 양육과 교육이 심란하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거리일 지 모른다. 몇 년동안 경험해 본 외국생활에 지쳤다고 한다면 감이 빨리 온다. 그리 바쁘지 않은 일들은 틈없이 계획적으로 진행된다. 초기에 일이 주는 중압감은 거의 없고 자기 일만 하면 되니까 남 눈치 볼 것없이 그럭저럭 해 가면 된다. 일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주어지는 것이기에 어쩔 땐 기계의 부품처럼 활용되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그 일이 한 해 두 해를 넘기면 아주 지루하게 여겨진다. 글쎄! 이 표현이 맞을까. "존재의 가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노드라마 형식의 소설 [콘트라베이스]에서 주인공의 마음 속 깊이 박힌 그 느낌! 무대에서 주목받고 빛나는 존재이고 싶은 욕망이 한껏 자리를 잡는다. 지금과 다르게 심리적으로 물질적으로 좀 더 나은 존재이고 싶어서 뭔가 모색하려는데 이국의 땅에서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에 그 일도 쉽지가 않다. 억눌린 욕망과 엄연한 현실은 부합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간다.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삶을 일궈가는 방향이 사뭇 다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은행 융자를 받아 집을 사서 일과 생활을 이국땅에 묶어두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다양한 이유로 한국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가늠할 수 없는 미래인데도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데 위안을 받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하면서 돌아서려한다.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일을 만들어놓고 한국으로 복귀한다면 그래서 바로 시작되는 일이라면 어서 가라고 등떠밀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
나는 지금 같은 선상에서 일을 하는 남자의 파트너로써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내 속내를 밝히려 한다. 표면적으로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스스로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깐 이국의 삶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보이지만 젼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인간은 누구나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인생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토록 욕망하던 목표를 이루는데만 신경을 쓸 뿐 제대로 살려고 모색한 인생의 하루하루 일상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연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냥 그러저럭 이국의 땅에서 특이한 거 먹고 특이한 거 보고 산다. 주어진 거니까. 주어진 복지, 주어진 급여, 주어진 환경, 그러다 익숙해질 무렵 점점 자신의 일상에 질려간다.
'존재의 가치"를 인식하려는 즈음 세상의 변화에 미숙한 자신을 보게 된다. 인간은 참으로 욕심이 많은 존재여서 자신의 능력 비례 남과 비교하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높게 평가하려 애쓴다. 나는 이 정도인데 여기서는 이래서 안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돌아가면 스스로의 위치를 내세우며 그 욕망들을 다 풀어낼 수 있을런지... 다 풀어버린 후 감당할 일이 생겨 다시 이룰 수 있을런지... 그들보다 더 나이 든 나의 입장에서 든 소감은 두려움이다. 좀 더 젊기에 가능한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그런 생각이 든 걸까. 아이들을 거의 다 키운 우리의 경우라면 어디서 살든 별 무리가 없다. 나는 머나먼 나라에서 시끌벅적하지 않게 나의 마음결을 다스리며 지루하다면 지루하게, 특이하다면 특이하게, 부족하다면 부족하게, 이 곳의 생활방식과 바른 사고로 살아가려고 한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내 나라 방식을 고집하는 일이 맞지도 않거니와 경제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한국가면 독일 자랑하고 독일 살면서 한국 거 고집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러하지만 나도 인간이니 지루하고 답답한 일이 왜 없겠는가. 그렇다고 이 나라를 떠나 고국으로 영영 귀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역마의 기운을 타고 인생의 나머지를 두루두루 살피면서 살아내는 것도 존재 가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매번 존재의 가치를 솟구치게 하려면 애써 노력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나는 책을 읽는다. 나에게 책은 다만 이국의 땅에서 나를 지켜내고 견딜 수 있는 힘이다. 책으로 인해 소양을 쌓고 지식을 얻는다는 등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 바로 견디는 힘을 키울 뿐이다. 그거 외에 더 이상의 가치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인생이란 견디는 것이라는 걸 ! 잊지 않고 있다. 내 인생 제3의 고향인 함부르크는 날씨가 가장 안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하듯 정신의 건강을 놓치지 않으려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다. 갑자기 햇살이 눈부신 날이 오면 무조건 나가 햇빛을 즐기지만 우울하고 음습한 날에는 어김없이 책을 집어든다. 소설과 에세이가 편하게 읽히고 역사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은 고전문학에 몰입하고 싶다. 우리나라 전반의 문학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전집과 프랑스와 유럽 문학전체를 아우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음악과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필수적으로 임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나에게 그런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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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