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하루
- 작성일
- 2010.5.8
마담 보바리
- 글쓴이
- 구스타브 플로베르 저
민음사
여성이 일시에 자신의 일생을 화려하게 변모시켜 줄 남성을 기다리는 심리적 의존 상태를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착한 여자 콤플렉스>등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들이 80년대 후반 서점가를 누볐던 기억도 난다. 그즈음에 나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일에 대한 성공등의 고만고만한 책들을 주로 읽었고 후유증으로 얼마간 자기 비하에 많이 빠져 있었다.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해야 마땅한데 의외로 낙담과 의욕상실이 앞서는 것은 상대적 빈곤감때문이었다. 남은 갖추고 나는 갖추지 못한 것들, 이를테면 능력의 부재로 자립기반 상실, 의존적인 습관, 대책없는 성실주의등이 그런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드는 의구심!
바로 내 속에 잠재적인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였다.
이 현상은 주로 자신의 능력과 인격으로 자립할 자신이 없는 여성에게 나타나며, 남성에 대한 의존성·수동성·자기 비하의 태도에 기인한다고 한다.
백마든 흑마든 준수하고 멋져보이는 왕자님이 나를 기다리며 그런 이와 함께 화려하고 따분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달콤하고 꿈같은 현실을 꿈꾸는 여자! 그걸 이룬 여자는 신데렐라와 콩쥐뿐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런 몽상도 주저하면서 일상을 보냈다. 물론 꿈을 이룬 신데렐라와 콩쥐의 남은 생에 대한 스토리는 알지 못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사실주의적 성격을 띤 대담하고 격정적인 소설 <마담 보바리>는
이런 몽상을 꿈꾸는 컨츄리걸 엠마 루오의 본능적 쾌락, 순진성으로 위장한 허영과 끝없는 사치로 인해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19세기 풍기문란한 여인을 소재로 해서 당시 법정시비까지 갔던 문제작이다.
소설은 샤를르 보바리의 어린시절 학급의 신입생으로 왕따 취급정도 당하는 어리버리한 소년의 단편적인 일상으로 시작된다. 마마보이의 전형인 샤를르는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고 어머니의 소개로 돈많고 나이 많은 과부와 결혼하지만 부인의 급사로 치료를 맡아보던 루오영감의 딸 엠마와 결혼한다. 엠마는 일찌기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컨츄리 걸이지만 그 나이때 궁금한 연애담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꿈꾸는 순진무구한 여인이다. 루앙의 작은 도시 용빌의 의사정도되면 나름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떠억 하니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곤 이렇게 후회한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무색무취의 몰개성이 특징인 남편 샤를르에게 실망하고 내재된 열정을 드러내는 계기인 보비에사르 성관의 무도회초대를 받아 만난 자작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여인들의 일상을 엿보며 그토록 몽상하던 일을 현실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젊은 청년 레옹과의 암묵적 시선 보내기와 관심두기에 몰두하지만 깊은 대화나 만남은 갖지 못한 채 레옹의 떠남으로 관계는 잠시 휴지기를 갖는다. 엠마가 육체적 탐닉과 과감한 본능을 드러내는 두번째 남자는 로돌프, 플레이와 엔조이에 관심이 있는 그는 순진하고도 아름다운 엠마 유혹에 성공하고 마지막 차버리기까지 확실히 마무리하는 희대의 카사노바로 엠마를 타락시키고 끝없는 물욕의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캐릭터이다. 실연의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엠마. 온갖 감언이설과 위선으로 연출된 풍기문란 연애는 끝이 나지만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을 보러 갔다가 레옹과의 야릇한 재회는 또다시 현실속의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상당한 연애경험과 육체적 탐닉에 몰두하는 새로 태어난 엠마에게 놀라워하면서도 억누를 수 없는 감정과 웬지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는 머뭇남 레옹의 태도변화에 둘의 사이는 급격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여러 남자들을 건사하면서 엠마는 가산을 탕진하고 어음발행에 돌려막기 수법까지 동원하며 엄청난 부채를 감당하려하지만 고리대금업자인 뢰르에게 연애행각 들킴의 누를 범하며 많은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 남편 샤를르에게는 끝모를 거짓말, 부채돌려막기에 자신이 갖은 온갖 매력 동원하기에 이르렀을 땐 정말이지 막가는 여자의 허둥됨과 횡설수설의 막장이 보였다. 돈에 대한 심각한 압박으로 마지막 보루인 로돌프와 레옹 재유혹에 돌입하여 어떻게 구실을 마련하려 하지만 영악한 그들에게 버림만 받고 만다. 엠마는 시작부터 진심과 진실이 없는 여자였다. 온통 허상으로 두 발이 땅에 닿지 못한 채 몽상(reverie)만을 추구하며 나르시시즘과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 결국은 스스로 파멸하는 여인이 되어 버린다.
마을의 약사 오메는 플로베르가 표현하고픈 인간의 실제모습으로 그려진다.
추악한 계산과 사실의 왜곡을 일삼으며 계획된 일상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인 그는 목표가 정부로부터 훈장을 얻어내는 것이다. 오메라는 이름은 호모(homo),불어로 옴므(homme)가 되는 이름에서 유래된 캐릭터의 숨은 장치로 작용한다. 엠마의 음독자살 이후 주택과 물품압류처분을 받은 샤를르는 엠마 사후 뒷감당을 어렵사리하면서 엠마의 사사로운 물건정리를 하다가 비밀 연애편지 무더기를 발견한다. 울분과 설움과 배신에 괴로워하지만 로돌프와의 우연한 만남에선 체념과 담담함으로 표현한다.
"이게 다 운명탓이겟지요."
정말 답답한 인간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C'est la vie.(세 라비)?
어린 딸 베르트를 남겨두고 홀로 고요히 죽음을 맞이한 샤를르는 무덤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타락의 화신 엠마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다고, 의사없는 마을에 약사인 오메는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 마을의 의료업을 독식한 채 결국 레종 도뇌르 훈장을 얻고야 만다.
이루지 못할 허황된 꿈을 꾸며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며 일궈야 할 일상을 버리고 쾌락과 위선과 타락에 뛰어든 엠마의 풍기문란은 19세기 막장의 전형적인 드라마이다. 그에 비해 20세기 뉴욕의 사만다 존스는 지극히 이성적인(?) 육체적 탐닉의 전형처럼 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사만다와 비교가 되는 엠마의 속물근성과 비창의성이 그녀를 더더욱 생각나게 만들었다. 한번 만난 남자에 미련이 없으며 진실로 사랑하게 된 연하의 남자를 향한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 원초적 나르시시즘때문에 눈물지으며 이별을 고하는 여성의 또다른 타입인 사만다!
사만다는 결코 엠마처럼 허망하게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보바리즘을 우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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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