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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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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하)
글쓴이
박지원 저
그린비
평균
별점9.2 (10)
하루

 


천하의 일은 예측할 수가 없는 법일세. 만일 황제께서 우리 일행더러 열하까지 오라 한다면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터인데, 그때는 장차 어찌 할 것인가?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만수절에는 기필코 그곳에 도착해야 하는데, 심양과 요양사이에서 또 비에 막히기라도 한다면, 이야말로 속담에 밤새도록 가도 문에 닿지 못했다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5편 막북행정록 / 음력 8 5일 신해일 본문중>


 


산넘고 물건너 더위와 폭우를 무릅쓰고 당도한 연경에 황제가 없다.


황제의 여름 리조트가 있는 열하로의 여정이 그래서 더욱 막막하고 일정을 다투는 일이라 심히 다급한 모양새였으며 혹여 짖궂은 날씨에 길이 막힐까봐 조마조마한 심사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껏 함께 하던 일행과의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닥치자 연암의 한없이 따뜻한 인간미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복아, 울지 말고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내가 이렇게 타이르자 다음엔 창대의 손목을 잡고 더욱 구슬피 우는데, 눈물이 마치 비 오듯 한다. 단짝이 되어 이역만리를 왔는데 하나는 가고 하나는 남겨져야 하니, 인정이 실로 그럴 법도 하다.


이에 나는 말 위에서 생각하였다.


 인간사 중에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 생이별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하나는 살고 다른 하나는 죽는 그 순간의 이별은 굳이 괴로움이라 할 것도 못 된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애로운 아버지와 효성스러운 아들, 신의 있는 남편과 올곧은 아내, 의로운 임금과 충성스러운 신하, 피로 맺은 벗과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을 받들거나 또는 궤석에 기대어 명을 받을 때,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뒷일을 당부하는 것은 천하의 부자, 부부, 군신, 붕우가 똑같이 겪는 바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자애로움과 효성, 올곧음과 믿음, 의로움과 충성, 피로 맺은 우정과 진실한 마음 등은 한결같다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한가지로 겪는 바요, 사람마다 한결같이 솟아나는 정이라면 이것은 천하의 순리일 것이다.  


<본문 p143~145>


 


6개월에 걸친 연암의 중국기행록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위치를 충분히 투영해볼 수 있는 다양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면의 이보 전진을 위한 일상의 형식 벗어나기에 몰입하고자 한다면 여행만큼 좋은 경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익히 아는 바이지만 실제로 일상에 꼬이고 마음과 다르게 매여있다 보면 쉬이 결정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제모습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 곳을 떠나야 한다. 떠나보면 그 곳의 일상이 새로이 보이고 그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을 내다보게 되는 것도 여행이 주는 미덕이라 하겠다.


 


18세기 지금과는 하늘과 땅차이의 여행 조건속에서도 연암 박지원은 당대의 문물과 풍속을 가감없이 들여다보았다. 그가 처한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보기란 한마디로 culture shock의 집합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문자로서의 언어적인 일치감이 적어도 속내의 안도감을 주는데 한 몫했으리라. 이국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짜릿하고 스릴이 넘친다. 연암은 풍속과 관습이 다른 이국에서 언어적 문제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극복한 듯 싶다. 원래 선비정신이란 고고한데 있을 터인데 그는 결코 안일하게 뒷짐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은 아니었다. 실천하는 지성이란 이토록 매력적이다.


 


21세기 유럽의 어느 한 동네 구광장 구석진 노천 카페에 앉아 있을 그를 상상해본다.


한 잔의 뜨거운 카푸치노와 노트북에 양손을 올린 채 사유의 폭을 정리하는 길 위의 영원한 노마드, 21세기 연암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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