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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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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글쓴이
김영하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5 (119)
하루

때로는 소설을 읽을 일이다. 겨우내 찬바람과 원래 하늘이 회색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흐린 하늘아래 살다보니 메마른 심사가 일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웬만한 일에도 뒷통수 얻어맞은 것처럼 심통을 부리고 입밖으로 나오는 말이란 것들이 마음과 달리 깨지고 부서져서 요상한 형태로 전달이 되어 소통에 비상이 걸린다. 말과 글이 한 몸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마음까지 따로 논다. 로봇의 세가지 원칙에 충실하여 자신의 현재를 편집하고 각색하며 무거운 현실을 가벼운 깃털처럼 구성하기에 충분한 상상적 삶속의 나는 <로봇>에 가까운건지 모른다.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때로는 소설을 읽을 일이다. 날려버리고 싶은 과거가 내 주변을 서성거린다면 그대로 참아줄까 아니면 이제는 더이상 돌이키기 힘든 일이기에 신나게 두들겨 패줄까 그리고 새로운 삶, 그래 결혼속으로 도피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조금 굴욕적이면 어떤가, 지금은 잘 모르는 과거속의 사람인데... 남자의 가벼운 치기를 감당하기엔 난 너무 바쁘고 힘들고 그리고 지금부터 행복해야 하는데 아는 남자로 남으면 안되잖은가.


각박한 도시적 삶에 애틋한 관계란 뿌연 먼지가 가득한 대기에 한바탕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 같다. 과거속에 내린 소낙비에 재를 뿌리고 싶은 도시여성의 심리가 짜증날 정도로 유머스럽다. 


 


때로는 소설을 읽을 일이다. 소름끼치는 감동을 주는 고음의 목소리는 파충류의 껍질처럼 끔찍하고 울퉁불퉁하며 냉혹하고 차갑다. 나와 다른 개개인이 사는 삶은 존중되지 않고 이내 소리를 잃어버린 나는 <악어>의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임팩트가 이토록 강한 단편을 읽는 일은 흔치가 않다. 작가 김영하는 내게 <오빠가 돌아왔다>의 무거운 현실을 가볍게 만드는 이상주의자로, <검은 꽃>에서는 역사성 짙은 대서사의 거대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훌쩍 짐을 챙겨 떠난 후 <Memory lost> 란 여행에세이를 던져놨는데 시칠리아 운운하길래 봤더니 가벼운 거대함을 느꼈던 만큼 대실망 또한 안겨주었다.  그는 소설을 써야할텐데... 라는 생각만 거듭했었고 6년여만에 나온 단편집에 그동안의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무너져내릴 듯 산중턱의 붉은 흙빛으로 서 있는 장중한 고성의 운치를 느꼈다면, 햇살이 반짝이는 하이텔베르크에서의 <밀회>를 죽은 자의 시선으로 거닐었다면,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을 혹은 누군가는 눈치챘을 그런 일이 그 곳에서 일어났다. 작가 김영하의 발자취를 따라 하이델베르크를 걷는 기분이다. 그 곳에서의 하루를 만끽했던 추억도 되새기며 그루밍한 모던함과 숨어있는 음산한 스토리에 깊이 빠져든다.


 


짧은 토막이야기에서 강렬함을 느끼기에 다분했다. 치유불가한 사기적 삶을 다룬 <명예살인>, 현실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한 일들의 모음인 <오늘의 커피>, <약속>, 가끔은 장난같은 젊음이, 죽어가는 젊음이 장난같은, 그래서 때로는 웃기는 삶이었지만 여전히 삶은 진행형인 <마코토>, 타락하는 법에 규칙이 있어 보이는 <조>, 궁상맞고 기죽어 사는 소시민의 삶 속에 <아이스크림>이란 사물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가진 자의 지독한 방식이, 김영하를 더욱 김영하답게 만든 <퀴즈쇼>의 공간이동같은 스토리는 가히 매혹적이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 김영하의 단편글에는 확실한 임팩트와 유머스러움이 들어있다. 눈에 보이는 도시의 모던함을 걷어내면 은밀하게 드러나는 걸리적거리는 불행한 일상이, 여성심리의 복잡한 알레고리를 풀어가는 예민함이, 질척대지 않고 제대로 꾸미는 미적감각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소설을 읽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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