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니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내 옆에는 언제나 법정스님의 글들이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바쁘다고 언제나 동동거리며 살았고 많은 일들에 치여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그저 부웅 뜬 구름마냥 그 날이 그 날이었던 평범한 도시인의 생활 패턴 그대로 그럭저럭 살았었다.
스님이 말씀하시는 텅빈 충만이랄지, 버리고 떠나기의 의미를 내가 처한 상황에만 결부시켜 생각했고 조금이나마 정신적 위안을 얻고자, 현실을 피하고 싶은 도피처를 찾고 싶은 의지가 더 강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분의 참뜻을 모르고 이제껏 살아온 듯하다. 길은 험하고 다음에 나오는 길이라고는 어떻게 그렇게도 컴컴한 동굴뿐인지 나에게 미래는 없을 것 같은 암담한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한 가지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면 바로 스님의 글들을 찾아 읽는 순간을 즐겼다는 것이다.
침대 바로 옆에 스님의 책을 놔두고 조금씩 읽기도 하고 <텅빈 충만>이나 <버리고 떠나기>는 열 번도 더 읽게 된 그런 책이 되어 버렸다. 그냥 그러고 싶었고 자연과 거리가 먼 도시의 각박함에 매번 쪼이고 상처입은 영혼이 쉴 구석이라곤 그것 밖에는 없었다. 헌데 그렇게 심하게 읽었던 스님의 글들을 글로 옮기려고 하니깐 안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을 자연사상과 무소유의 철학으로 일깨워주신 스승이요, 미래란 오늘이라는 순간이 없으면 올 수 없는 것이기에 매 순간을 만끽하라는 참된 말씀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해가 뜨는 날에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비가 오거나 매서운 바람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뭐 인간이 다들 그러고 사니깐 평소 하던 습관에서 조금만 성의를 보이면 좀 더 나은 오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것이다.

법정 스님의 두 번째 법문집으로 나온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은 스스로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안달하는 나에게 밤이면 한 바닥씩 읽어나가다가 스르르 눈을 감고 잠들어 어느덧 편안하게 아침을 맞이하게 만든 그런 책이다. 한 달여 그렇게 스님의 말씀으로 사사로운 것들을 허허롭게 던지려 노력했던 책인데 이번에 다시 읽기 한 것은 남편이 출퇴근길에 오가며 읽은 귀절들에 감동하고 끝없는 찬사를 던지며 인간이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그런 상위의 글이라 예찬하는 소리에 다시금 손길이 닿았다. 순간 마음에 번지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들어온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인데 같이 살면서 겪게 되는 어떨 땐 말이 되고 어떨 땐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게 된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으로 마음에 병이 드는 그런 나약한 한 사람들이기에 스님의 말씀 한 마디가 마음의 호수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연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고 하고 차를 좋아하셨고 파블로 카잘스의 첼로 연주를 즐기셨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야기와 캘리포니아 부겐벨리아와 거하셨던 곳의 산수유와 매화이야기를 글 속에서 매번 접할 수 있었다. 너무나 찬란한 봄날의 이야기와 내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눈부신 이 순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나 자신이 바로 한 우주임을 생각하라 하셨고 모든 것들은 행복하라고 하셨다.
일상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그리운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꼭 만나야 한다고 하셨다.
소로우의 월든 생활은 아니더라도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이야말로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나는 몸소 실천함으로 알게 되었다. 숲에 다녀오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진 기분이 들고 그로 인해 지친 육신은 지친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쉬라는 알림이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가벼워지길 기대한다. 머릿속이 무겁지 않기를 바라고 마음속에 돌덩어리가 자리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고 누구나 겪는 힘든 시기에 나를 잡아 준 스님의 글들이 이제는 이해와 공감은 물론 마음 한 켠에 으슬으슬 몸살기가 느껴지면 바로 내 옆을 채워주는 역할까지 해준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이리도 잡아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세계에 안계시지만 한 세계속에 언제나 머물러 계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