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하루
- 작성일
- 2011.10.10
조선 왕을 말하다
- 글쓴이
- 이덕일 저
역사의아침
성공한 왕 실패한 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드라마 연출자의 기록이었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읽었다. 딱딱한 시선보다는 익히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고증기록과 흥미요소가 들어있던 책으로 기억된다.
학창시절 국사수업은 시작종이 울리면 칠판 왼쪽 윗언저리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맨구석끝까지 판서로 일관했고 그러면 종료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에 이 판서의 내용 설명을 듣고 시험보기 전까지 열심히 외우고 또 외우면 그러저럭 괜찮은 점수를 받곤 했다. 외우는 것 외에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당대의 판단을 이해한다거나 지금 배우는 학생들이 가져야 할 역사적 관점은 수업중에 학습할 수 없었다. 질의응답시간을 갖고 고민의 흔적을 찾기엔 수업진행방식이 무척이나 진부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엔 당시의 학습방식은 거의 육체노동수준이었다. 몸이 피곤한데 머리는 굴려서 뭐할까, 어여 외워 좋은 점수 받아서 내신성적이나 올려야지 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우리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꽤 되는데 제대로 설명을 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기는 꺼려한다. 사지선다 객관식 질문에 익숙하기에 그렇다. 전체를 파악하는 법도 외워서 학습했다. 국사는 외우는 과목이라는 생각은 정말 지배적이었고 지금도 그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안그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늦게 결혼한 덕분에 아들녀석이 아직까지는 귀엽다. 그 친구를 올여름에 만났고 학교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억울한 부분이 있었는지 쌈닭으로 소문난 내 친구가 울적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내 친구와 다른 학부형들을 앞에 두고 기선제압용 멘트를 날렸는데, " 아이가 독일에서 뭘 배웠나요?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독일이 그렇게 후진국인가요? 그리고 얘가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해대는지, 수업중에 집중은 안하고 질문만 해요"
다른 학부형에 비해 내 친구가 나이도 지긋해서 기가 셀 것 같아 담임선생님이 미리 선수를 친 것 같다고 다른 학부형들이 나름 평가하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차체에 두더라도 그 선생님의 말씀중에 "질문"이라는 단어가 내 귀를 화악 잡아당겼다. 아이가 하는 질문이 장난으로 여겨졌을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말을 듣고 의문이 생기거나 호기심이 생기면 질문해야한다. 무조건 터무니 없는 질문일지라도 참고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독일식 교육에 물든 아이는 수업중에 말을 해서는 안되는 현상이 기이하게 보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독일교육은 입만 살아있는 교육이라 할까.
본연의 독일 역사는 실제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60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시대 풍성한 역사적 산물을 가지고 논하거나 세계대전을 뚜렷하게 파헤치는 교육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의 역사들은 유럽의 역사와 맞물려 보는 편이 일반적이어서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육이 먼저고 그 다음에 분석과 파헤침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일은 문서이전에 학생들에게 텍스트가 부과되고 스스로 읽은 다음 담당선생님의 질문사항에 일일이 입으로 그리고 질문과 대답으로 설명하고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시험방식은 말과 글, 두 가지를 합산하지만 말이 먼저다. 글로 쓰는 시험은 시험문제 테마에 대한 설명과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점수가 나온다.
이 덕일님의 <조선 왕을 말하다>를 읽어가면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글 초반부에 길게 자리를 잡았다. 조선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가 받아왔던 역사교육과 지금 한 어린 아이가 받고 있는 학습의 방식이 몇 세대가 지났는데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면 좁은 시각을 지닌 내 불찰일 것이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왕이 있었고 그 왕들에게 테마를 부여한 방식이 저자의 의도라 생각한다. 역사학자의 개인적 가치관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 테마와 합당한 내용들을 읽어보면 공감과 동조도 할 법하다.
조선은 왕이 아닌 양반사대부의 나라였다. 왕도 한낱 제1의 사대부로 여겼으니 당쟁과 암투와 모반은 망국까지도 불사하는 괴력까지 과시한다. 조선 건국초 태종 이 방원이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업적들을 모두 악한 일로만 돌려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은 국사나 국어시조시간에 이 방원을 악의 인물로 몰아가는 선악의 교육만 주입한 나머지 역사가 아닌 윤리교육이 되버린 일은 참말로 웃다가 울 일이다.
폭군으로 알고 있고 제호도 아닌데 폭군 연산군이라 당연히 부르는 한때 왕이었던 그의 스토리들은 역사드라마의 단골메뉴이자 자극적인 주제로 일관해왔다. 교육도 그렇게 받았는데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는 말해 뭐할까 싶다. 당대의 고증기록들은 그래서 값진 가치를 발하고 당시의 속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역사 접근법으로 고정되기보다는 이제껏 오류를 범하며 알고 있다고 단정짓던 팩트에 대해서 사실검증및 추측에 대한 상황들이 어두운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알아야 만 할 사항들로 정리가 되는 장점이 있는 역사서이다.
전란을 겪은 왕중의 한 명인 선조는 시대를 넘어서도 연구대상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압박받으며 읽은 부분이었다. 유 성룡과 이 순신이 아니었더라면, 유 성룡이 운명을 달리하며 이 순신마저 죽음으로 나아가는 부분의 기록은 참으로 슬펐다. 역사란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사건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마법의 거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와 권력의 역학관계를 알게 하는 역사서이다. 아울러 객관적 시각을 갖추었지만 읽는 이에 따라 비판의 시각도 충분한 역사평설이다. 다양한 비판과 의견들이 공유될 때 내용은 더 풍성해지고 역사의 내면은 더 깊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쪼록 제도권내 국사교육도 겉핣기 그만하고 주입식 삼가고 주장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학습의 광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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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